[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환자-의사 관계의 재정립을 위한 문화, 윤리적 고찰

1. “의사-환자관계”와 “환자-의사관계”


김옥주(서울의대 의사학교실) 교수

“의사-환자관계”와 “환자-의사관계”는 단순히 순서만을 바꾼 용어인가? 1970년대에만 해도 “의사-환자관계(doctor-patient relationship)”라는 용어가 주로 쓰였으나, 미국의 경우 현재는 “환자-의사관계(patient-doctor relationship)”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의과대학에서 개설하고 있는 교과목의 이름도 “환자-의사관계” “환자-의사-지역사회”, “환자와 사회”, “환자중심의 의료” 등으로 표기되고 있다.

문화를 “한 사회 내에서 우세하게 발현하는 가치, 태도, 신념, 지향점 그리고 전제조건 등”으로 보고, 널리 쓰이는 용어를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본다면, “의사-환자관계”와 “환자-의사관계”가 나타내는 가치, 태도, 신념, 지향점 그리고 그 전제조건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의사가 주도하고 환자가 순응하며 따라오는 가부장적인 “의사-환자관계”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서구에서는 수십 년에 걸쳐서 이루어진 이 과정이 우리 사회에서는 비교적 단기간에 걸쳐 일어났다.

게다가 2000년의 의사파업은 그나마 유지되어 오던 의사-환자관계에서 의사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사회와 환자들이 변했는데, 의료인들의 사고는 반세기 전과 같다면 의사와 사회와의 사이, 의사와 환자와의 사이에 벌어진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현실의 진료 환경과 조건이 얼마나 척박하고 어려운지에 상관없이, 아니 오히려 “한국 의료의 최대 위기”의 이 시점에서, 환자를 중심에 두고 의사-환자관계의 회복을 논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환자를 중심에 두는 사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지향하기 위해 “환자-의사관계”라는 용어가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2. 의사파업-얻은 것과 잃은 것

2000년 의사파업에 관한 평가는 사람마다, 집단마다 상이한 차이를 보인다. 의사파업을 주도했던 의료계의 한 원로 지도자는 건강보험 재정 위기만 없었으면 “아주 좋은 그림으로 끝났을 것”이라며, 2000년 의사파업은 “전체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누적되어왔던 의료문제에 대해 대국민 홍보를 할 수 있는 기회였으며, 의사들의 단결된 투쟁을 통해 의료 수가를 인상했다는 것이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보건의료문제는 언론의 주요 이슈가 아니었으나, 이제는 사회에서 의료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파업으로 인한 긍정적인 측면의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손실이 생겼음을 예상할 수 있다. 외국의 의사파업 사례를 성찰한 논문들은 의사들의 자아상의 손상과 환자들로부터 신뢰감을 상실한 것이 가장 큰 손실이라고 보고한다.

캐나다 McGuill 대학의 내과 주임교수 McGregor는 1970년 퀘백 시에서 의료보호프로그램의 도입과정에서 일어난 의사파업으로 의사들이 “자아상의 손상”을 입은 것이 가장 큰 손실이라고 분석했다. 파업 이전에 의사들은 스스로를 인체를 고치는 기술자이기보다는 성직자에 가깝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의사들의 자아상은 치료과정 자체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의사들의 파업은 필연적으로 전문직으로서의 자아상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또한 개별 의사들은 환자에 대한 의무와 동료들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의사들은 응급실 진료를 유지했지만 정부와의 타협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진료 중이던 환자들의 치료가 불가능함을 통보해야 했고, 이는 환자-의사관계와 의사들의 자아 이미지에 불가피한 손상을 입혔다. McGregor는 의사들의 자아상과 자존감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 파업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한국의 경우 오래 전부터 의사들의 직업적 자부심이 조금씩 훼손되어 오다가 의약분업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손상되어 이것이 장기 파업의 원인이 되었다. 동시에 파업하는 기간 동안 사회의 냉담한 반응, 언론의 부정적 보도 등으로 자긍심과 자존심이 더욱 훼손되었으며, 환자들의 신뢰를 잃게 되었다.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는 한 환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파업 이후로는 의사들을 믿지 못하게 되었어요. 파업 이전에는 리베이트나 약가 마진 같은 관행은 우리 사회에 널리 존재하고 있어서 의사들만 특별히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그리고 의사가 호르몬을 권하면 치료를 위한 것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의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집단적으로 파업을 하는 것을 보고 ‘병을 고치는 의사선생님’이 아니라 ‘장사꾼’으로 생각되는 거예요. 아프면 할 수 없이 병원에 가긴 가지만 의사가 처방해 주는 약이나 검사가 정말로 나를 위한 것인지, 의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의심이 나서 자꾸 여러 병원을 돌아다녀서 확인을 하고 싶어져요.”

이렇듯 환자-의사관계가 비치료적이고 왜곡되게 된 다양한 원인과 측면 중에서 문화적, 윤리적 측면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3. 의사 윤리에 대한 각기 다른 기대들

환자-의사관계에서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는 데 있어서의 문제는 사회에서 의료문제 및 의료전문인 윤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의사들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환자들은 의사와 간호사, 행정직원들의 권위주의적 태도와 불친절을 큰 불만사항으로 꼽고 있다. 또한 의사가 환자의 질병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환자를 단시간에 진료해야만 하는 현재의 진료환경에서 의사들은 환자의 호소나 설명을 충분히 귀담아들을 만한 여유가 없고 의사 위주의 진료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진료관행은 높아진 환자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간에는 갈등이 조성될 여지가 많다.

오늘날 환자들은 더이상 과거처럼 의료서비스를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제대로 된 진료를 받는 것인가를 따져보게 되었다. 과거 20세기의 근대사회를 특징지었던 의학적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에서 벗어나 탈 권위적인 의료문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건강에 대한 주체는 의사가 아닌 자신들이며 의사는 다만 의학적 시술이 필요할 때에만 협력을 받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면서, 과거에 의사에게 주었던 맹목적인 신뢰나 의사-환자간의 수직적인 관계를 무조건 수용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 일반인들은 의료를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상품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의료공급자인 의사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의료라는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의료소비자인 환자는 의사로부터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대가로 진료비를 지불한다는 소비자주의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의료인과 국가의 의료에 대한 시각의 차이 역시 의료윤리적 문제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어 의료인들은 자신의 전문적 판단에 따라 환자를 치료하고 또 이에 대한 치료비를 청구하는 것에 대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의료를 사회통합의 한 수단으로 파악하고 있는 정부는 의료인이 의료보험 법제에 규정한 대로 환자를 진료하지 않는다면 이는 의료의 분배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행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는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중심으로 한 저보험료, 저수가, 저급여 체제이다. 그 동안 정부는 국민의 부담이 증가되는 것을 우려하여 의료보험수가를 무리하게 묶어 놓았다. 정부는 저수가의 보전책으로 병원에 지정진료제도를 도입하였고 약가마진을 묵인하여 왔다.

또한 저수가는 수진량 증가와 비급여 진료의 확대라는 또 다른 의료의 왜곡현상을 낳게했다. 환자입장에서는 환자에게 가장 최선의 진료를 요구하여 최대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으며 의사는 의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려고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는 근본적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충실하게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점들은 의료제도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 것이지만, 이의 해결을 위해서 의료계와 의사 개인의 책임과 직업윤리를 강조하는 모순에 처해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는 국가주도의 강제보험체제 아래 행위별수가제를 통해 지불되고 있다. 이 두 가지 조합은 의사들로 하여금 안정된 의료체계 아래 전문가적 소신을 가지고 진료에만 충실하도록 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제공하게 되었다. 국가의 공공적 통제와 민간 시장경제의 불균형적 조합이 가져온 문제점이 실제 의료현장에서 의료인을 윤리적 딜레마나 진료의 어려움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와 관련된 여러 가지 법과 제도는 기본적으로 의료를 공공재로서 파악하고 있으나, 의료인을 양성하는 과정이나 의료기관의 개설은 민간과 개인의 책임아래 진행된다. 따라서 대다수의 의료인들은 이 두 가지 관점 사이에서 균형 있는 의료윤리적 자세를 갖는 것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의료는 공익성이 매우 높은 분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의료선진국과는 달리 이러한 공익성에 걸맞은 투자는 없었으며 규제 위주의 정책이 주된 흐름이었다. 또한 뚜렷한 사회보장책이 없는 상황에서 각종 의료제도는 의학·의료기술·의료산업의 발전보다는 사회통합과 사회보장책의 수단으로서 이해되어 왔다.


또한 시민운동이 성장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가는 시민을 대신하여 강력한 통제 위주의 정책을 펴왔으며 이상주의적이며 과도한 법문화도 이러한 흐름을 강화해 왔다. 이러한 의료정책은 시민의 의료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의료보험재정의 고갈, 민간의료보험의 만연, 의료분쟁의 증가 등에서 보여지는 각종 현상들은 지금까지와 같은 규제와 통제 위주의 패러다임이 그 한계에 이르렀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의료제도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비현실적인 규제와 통제규범이 존재한다. 또한 이러한 규제와 통제가 의료를 왜곡시킴으로서 상당수의 의료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대부분의 시민들은 알지 못하며 의료인들 역시 수동적인 자세로 이를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의료인이 윤리적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와 통제가 의료인을 윤리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합리적이고 정당한 규제가 아닌 비현실적이며 과도한 규제는 오히려 의료인이 갖고 있는 특유의 직업윤리를 파괴하고 새로운 편법과 부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윤리적인 의료인은 현실에 근거한 합리적인 제도, 타율적 통제가 아닌 자율적 규제 아래에서만 실현 가능한 것이다.

의사들은 일반적으로 의료에 대하여 독점적인 지식과 정보를 소유하고 있다는 인식과 더불어 이에 의한 전문가적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전문가인 까닭에 그 만큼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사람의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교육기간과 많은 노력과 돈이 투자되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의료계는 현행 저수가의 의료제도하에서는 질 좋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에서는 병·의원의 불친절이나 서비스의 질에 대한 책임이 병·의원에 있다고 본다. 의사가 전문직 고소득자이고 사회에서 기득권층이라는 것은 언론이나 시민단체 및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공통적인 사항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전공의들은 ‘하루 15시간 근무, 5시간 수면, 이틀에 한번씩 당직’이라는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묵묵히 본연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왔으며, 그 동안 타 근로자에 적용되는 월차, 연차 휴가 및 시간외 근무 수당이나 연월차 수당 등도 받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반인들은 전공의들이 피교육자의 신분으로 타직종에 비하면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인식하고 있어 시각의 차이가 크게 존재한다.

한편 이러한 인식과는 달리 사회에서 의사들의 사회적 의무나 도덕성, 윤리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높다. “의술은 곧 인술”이라는 경구는 의사 집단 내부에서보다 사회에서 더 자주 쓰고 있다.

4. 의사들의 문화 및 직업윤리

사회와 의사들의 의사 윤리에 대한 기대들이 큰 차이를 보이는 현실에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의사 및 환자의 의료관련 문화를 살펴보자. 환자-의사관계의 중요한 축인 의사들의 문화와 직업윤리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비교적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된 집안 출신이다. 또한 의대입학은 여러 전공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분야 중 하나이므로 의사들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공부를 잘했던 집단이다. 이들은 의대 입학 후 10여년에 이르는 의학교육 및 수련기간 동안 혹독한 지식습득 과정을 걷는다.

수련과정이 끝난 후 이들은 의대 임상교수, 개업, 중소병원 취업 순으로 일자리를 선호한다. 의대 기초의학교실이나 정부 보건분야 공무원, 보건소 등은 의사의 직업시장에서 우선 순위가 가장 낮은 자리이다. 의대졸업자는 대부분 임상의사로 활동하며 다른 분야 종사자는 극히 드물다. 의사들은 일반적으로 의료업무 이외에 다른 사회활동에도 관심이 없다.

의사는 사회와 단절된 채 ‘의사’라는 직업적 이념과 가치만을 체득하고 또 임상을 통하여 그것을 실현하는 데에만 관심을 보이는 직업집단인 것이다. 의학공부가 어렵고 공부를 게을리 하여 ‘돌팔이’가 되지 말고 최고수준의 의술을 갖는 의사가 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섣부른 ‘사회참여’보다는 공부에 전념하도록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도 분명히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족적, 사회적 기대에 충실하게 부응해 온 것이 의사들이다. 또 이러한 기대 속에는 의사직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직업이고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라는 점이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정치권력이나 경제적 부, 아니면 연줄에 의거하여 그러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한 것이 아니고 오로지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의하여 달성하였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의사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하여 매우 높은 자부심을 갖는다.

이러한 직업자부심은 긍정적으로 볼 때는 의사의 성취동기와 직업적 책임감을 높여서 양질의 의료를 만들어 내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의사사회와 사회전반과의 교류가 없었고 사회변화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의사들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다른 직업에 비해 한 단계 높은 윤리의식이 필요하다는 데 대체로 공감하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포함한 의사윤리 강령이나 선언들을 일찍이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의료시장에서 동료 의사들끼리의 과도한 경쟁에 몰두한 경우가 많았고 스스로의 정화와 함께 의사집단 내부에서의 자체 자정의 노력을 경주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한편 현재의 의료관행이 갖고 있는 의료윤리적 문제점에 대한 의료인의 도덕적 감수성(moral sensitivity)이 너무 낮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한마디로 의사들은 선언적 윤리에 대해서는 수준 높은(그래서 때로는 비현실적인) 윤리 강령을 채택하고 있으나, 의료현장에서는 관행이 추상적 윤리 선언을 지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치료나 치료중단이 윤리적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경우에 주치의가 단독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과정은 분명 개선되어야 하며, 병원윤리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설치하여 이와 같은 사안들을 협의하고 결정하는 등의 신중한 조처가 필요하다. 또한 의료계 전체적으로 의료현장에서 진료 및 처방의 peer review 강화 및 이에 대한 내부규제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5. 우리 사회의 의료관련 문화 및 환자 윤리의 부재

한 의료인류학자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통속적 유물론자(vulgar materialists)라고 평한 적이 있다. 즉 약제과 같이 눈에 보이는 물건, 물질에 대해서 가치를 부여하고 지불해야할 필요를 느끼지만, 진단·처방과 같이 지식이나 무형의 가치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러한 지적 노동에 대해서 지불해야한다는 인식이 적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판단’이지만, 환자들은 손에 들고 가는 약제 자체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문화 때문에 사회 전제적으로 의사들의 지적 노동의 가치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약을 많이 사용하며 약에 대한 의존이 심하다. 전통적으로 ‘약’은 좋은 것이며 약이 곧 의학으로 여기는 풍토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서양 의학 계통의 제약 생산은 세계에서 10번째로 규모가 크며, 이 이외에도 한약, 대체의학의 각종 건강식품 시장의 규모 또한 크다.

의약분업 이전까지는 의사와 약사 모두 조제권을 가졌고, 사실상 양쪽 모두 진료행위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의사들은 의약분업이 약사들만을 배불릴 것이며, 의사들에게서 진료영역중 하나인 조제권을 완전히 박탈하면서 약사들의 진료행위는 완전 박탈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두 경우 모두 법적으로는 동등하게 박탈되었지만 의사들은 약을 직접 다루지 않음으로써 조제행위가 원천봉쇄 되었으나 약사들의 경우 모든 약을 취급하며 의사들의 처방까지 알게 되어 법적으로 아무리 원천봉쇄를 해도 약사들 개인이 양심적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계속된다고 생각한다.

즉, 약사들의 진료권은 법적으로 박탈되었다 하더라도 문화적으로 박탈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의료인, 정부, 사회 및 환자 전체를 포함한 의료자원 이용행태와 의료문화가 전체적으로 바뀌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의사의 책임과 의무, 직업 윤리만 있고 환자의 윤리와 환자 가족의 윤리는 없는 것일까? 환자의 권리에 대한 선언이 있는 만큼 이에 따른 의무와 윤리 또한 존재한다.

의사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진료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다른 의료인들과 환자들에 대한 관계에 있어 배려도 중요한 것이다. 또한 올바른 의약분업의 정착과 실현에도 환자의 윤리적 판단과 행동이 요구된다.

6. 환자-의사 관계의 재정립을 위한 제언

현 시점에서 신뢰회복을 통한 환자-의사관계의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노력과 의사 집단 및 개개인의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점은 의과대학의 의학교육 및 졸업 후 교육과정 개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들의 교육과정과 사회화 과정에서부터 사회문제에 대해 민감하며 열린 자세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로 키워내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환자-의사관계에 대해 1학년부터 4학년에 걸쳐 각 단계에 맞게 올바른 환자-의사관계에 기초한 진료를 위한 지식·기술·태도를 습득하도록 교육과정이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의료와 사회와의 관계를 이해하고 사회 안에서 의료인의 의무와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의사학, 의료윤리학 등의 의료 인문학 및 의료사회학의 체계적인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졸업 이후에도 수련 과정과 평생교육과정에서 의료정책 및 의료윤리의 주요 과제에 대한 지속적 교육이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의사들은 ‘이기적인 집단’으로 인식되어왔고 특히 의사파업으로 이러한 인식이 더욱 심화·고착되었는데, 이러한 인식을 불식시키고, 사회의 신뢰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의사 개인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고 봉사하는 실천을 꾸준히 장기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적극적인 자세로 국민과 대화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선전이나 선포가 아니라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화가 중요하다. 전문주의의 핵심인 자율성에 근거하여 의사들의 내부 문제에 대한 자율 규제와 설득력있는 정책대안을 갖고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개선책을 제시하고 열린 자세로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현재 의료계가 직면해 있는 여러가지 어려움은 전문가로서의 의료인이 국민과의 의사소통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함을 주목해야한다. 만일 앞으로도 이러한 의사소통이 실패한다면 환자도 의료인도 결코 만족할 수 없는 현행 의료제도에 대한 적극적인 개선책이 마련되지 못할 것이다.

의료인이 국민과 적극적인 대화를 개진하려는 노력을 할 때 비로소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전문성에 대한 존중과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의 이행 사이에 균형있는 조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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