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upload/news/2001/조한익.jpg조한익(서울의대 교수)

왜 해부학과로 해도 될 것을 '해부학교실'로 표시하고 있는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왜 '교실'이란 일반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혼란스런 용어를 의과대학은 사용하고 있는가?

관습과 전통 때문인가? 아니면 영문학과처럼 다른 대학의 과 단위와 차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인가? 교실이라는 말을 쓰면 좀 다르게 보인다든가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부칠 수 있지만 어쩐지 궁색하다.

한마디로 교실제도는 일제 시대의 잔재이기 때문이다. 실상 그 잔재는 껍데기만 있다. 나름대로 장점이 있어 보이고, 일본의 의학과 의료산업을 세계 일류 수준으로 끌어올린 현재 일본의 교실과는 성격이 다른 교실을 가지고 있다. 전국의 모든 의과대학이 심지어는 신설 대학들까지 이 교실 제도를 금과옥조처럼 지키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 많은 단체들 심지어는 대학들까지 살아 남기 위해 조직을 점검하고 있는데도 의과대학은 이 교실 제도를 바꿔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교실 조직이 의과대학 나아가서 전 의료계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효과적인가? 개인간, 집단간 나아가서 국가간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조직 체계인가? 최근 같이 다양하고 빠르게 발전해 가는 학문을 진료 교육 및 연구에 적용하는데 적절한 제도인가?

본래 교실 제도는 도제식 의사 훈련 과정을 위한 것이다. 교수가 있고, 교수가 채용한 조교수 및 강사 그리고 그들이 훈련시키는 젊은 의사(조교 와 레지던트)들로 구성된 것이 교실이다.

교수의 절대 권위 밑에서 일사분란하게 연구와 교육 및 진료를 해나가는 조직 단위이다. 절대 권위 밑에 일사분란한 운영이 교실의 상징이다. 학문 연구 분야는 교수의 개인 경력이나 성향에 의해 결정된다. 다른 구성원은 따라가야 한다. 교육 내용 방법도 교수의 철학(?)에 의해 결정된다.

교실원들은 서로 끈끈한 유대로 얽혀 있다. 상하 좌우 모두 한 집안 같다. 서로 끌어 준다. 교실에서 훈련을 받고 의료 일선에 나가 있는 사람들까지도 교실 동문이라는 굴레에 묶어 취직과 연구까지 관리하려는 무모한 일까지 관습화되어 있다.

좋게 보면 효율적인 집단이지만 나쁘게 보면 마피아 집단 같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집단이 갖는 경직성과 획일성이 21세기 의학 발전과 사회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현재 의과대학들을 살펴보면 교실 체제로 꽁꽁 묶여져 최근에 발달된 학문 분야를 수용하는데 늦거나 대학 내의 여러 교실에서 중복해 인력과 시설도 중복 투입하기도 한다.

의과대학이 새로운 교육제도나 학문 연구 분야를 발전시키고 싶어도 교실 제도와 각 교실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교수들에 발목을 잡혀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 각 의과대학의 교실 제도는 일본식의 전통적인, 그래도 나름대로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교실제도도 아니다. 교실의 주임교수는 일본처럼 종신이 아니고 대부분 2~4년마다 바꾸니 교실제도의 최대 장점인 주임교수의 입김에 의한 강력한 조직관리 조차도 안된다.

교실제도의 장점도 살리지 못하면서 교실 및 동문이라는 이상한 연대 속에 푹 빠져 안주하면서 허우적거리게 한 것이 우리나라 의대 교실제도이다. 머리 좋은 젊은이들을 모아 놓고 생산성에 의문이 가는 조직체계로 운영하는 것이다. 대학은 교실제도에 발목이 잡혀 발전이 더디고, 교수들은 교실의 굴레에 묶여 있거나 경쟁 사회에서 피난처로 활용하는 꼴이다.

이제는 교실제도에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특히 최근 BT 및 의료산업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그 동안 의료사회로 끌어들인 고급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들 인력을 잘 관리해 생산성을 높여야 의학도 의료도 살릴 수 있고 BT 산업도 크게 발전시킬 수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각 의과대학의 교실을 흔들어 놓는 일이다. 각 대학이 학문 발달이나 교육제도의 변화에 맞추어 교수들을 이합집산 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실 대신 과로 바꾸고 매 5~10년마다 과 분류 및 교수 분류도 다시 하고 대학원 전공 분야도 신설 및 폐지를 융통성 있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 의사들을 교실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어떻게 변하는 것이 좋으냐에 자신 있게 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의학과 의료, 그리고 BT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교실 제도보다는 좀더 효과적이고 생산성이 높은 조직 체계를 모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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