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10년[下]...노인이 중심이 되는 제도 필요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가 밥은 잘 먹는지, 학대라도 당하지 않는지 부모들이 수시로 확인한다. 하지만 요양시설에 입소한 부모가 잘 지내는지 자녀들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전체 인구의 13.5%가 65세 이상 노인인 시대. 2026년에는 20% 이상이 노인으로 초고령화 사회가 온다. 일부 학자는 이미 초고령사회의 문이 열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맞이할 준비는 아직 미흡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 10년을 맞았지만 ‘저비용, 저서비스’ 수준에 그치지 않고 있으며, 노인들의 인권이 무시되고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베이비부머가 노인이 되는 시대에는 현행 제도로는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고 결국 더 큰 혼란이 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떠한 모습의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만들어가야 할까.

장기요양보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와 제도를 만들고 수행하는 정부, 국민건강보험공단, 종사자, 수급자, 수급자의 가족들, 지자체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그만큼 의료전달체계부터 수가, 평가, 질관리 등 개선의 목소리도 다양하다.




경계 모호한 시설과 병원, 예방도 치료도 어렵다

그 중에서 공급자인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역할이 모호해 시설을 기피하는 경증 환자는 요양병원에, 중환자가 요양시설에 입원하는 등 환자군이 혼재돼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관계자는 “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된 이후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도 비용이 적게 드는 요양시설로 입원해 新고려장이 되고 있다”면서 “공단이 시설과 병원의 역할을 명확히 해서 이들 간의 경쟁 구조를 없앨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설과 병원에 대한 명확한 역할 정립만 된다면 장기요양보험 문제의 상당부분이 해결될 것”이라면서 “인정등급에 따라 입소기준을 명확히 하면 그에 따른 시설과 병원에 필요한 인력 기준 또한 달라져 적정 배치가 가능해 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국너싱홈협회 김현주 회장도 “요양시설과 요양병원, 대학병원을 구분해 입원하는 등 의료연계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면서 “요양시설도 간호중심과 보호자들의 요구에 따른 다양한 요양시설을 마련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특히 “간호중심 제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장기요양 수가를 인상하고, 시설 내 정규간호사가 촉탁의의 처방 하에 간호처치를 할 수 있도록 해 환자가 불필요하게 병원을 이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서비스 현장에 있는 간호조무사를 장기요양위원회에 포함시켜 다양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하고 장기요양기관의 관리책임자 및 시설장으로서의 자격도 부여해야 한다”며 “입소시설에는 방문간호조무사 자격을 가진 이들을 배치해 독자적입 업무를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노인을 위한 장기요양보험,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무엇보다 이러한 시스템 개선을 통해 적정 의료 및 요양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어야 하고, 지역단위 통합서비스체계로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노인간호사회 이금재 회장은 “처음 제도가 생길 때는 요양(수발)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고령화로 인해 외과적 질병을 동반한 환자들이 많아 건강관리에 기반하지 않으면 질 관리가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하지만 현재의 체계로는 제대로 된 간호인력조차 확보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노인학대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이에 노인이 병들고 미약할 때 그들의 삶의 질을 생각해 적정 인력이 배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단 또한 2018년 장기요양 2차 기본계획을 준비하는 등 양적 확대가 아닌 서비스 향상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공단 요양운영실 관계자는 “시설에 대한 평가를 통해 기본 인프라는 어느 정도 자리 잡혔으나 서비스제공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평가하위기관에 대한 재평가 및 관리도 시작하도록 체계를 마련하고 있고 2차 장기요양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도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지역 내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통합서비스모형을 구축하게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한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요양기관에서 평가를 위한 행정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클라우드 시스템을 활용한 자료제출 간소화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이 서로 다른 법의 적용을 받아 연계에 한계가 있지만 사회적 합의를 통해 촉탁의제도의 내실화를 기해 불필요하게 노인들이 병원으로 가는 일들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도의 중심이 돼야 할 수급자인 노인의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금재 회장은 “가족들은 노인(부모)이 요양시설로 가면 이후 집에 잘 데려가려 하지 않는다”면서 “간호사가 건강관리를 더해주려고 하면 가족이 막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지금도 현장에서 노인은 소외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치매케어학회 황재영 상임이사도 “현재 요양원에서는 노인들이 4인 1실을 쓴다. 이들 중에는 쪽방이라도 독립된 공간에서 사는 게 좋았는데 노인이 되더니 다인실을 쓰라고 한다. 적응도 어려운데 자식들에게 말을 못하고 참고 살고 있다”면서 “이 사회가 아직도 노인에 대해서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 생애 마지막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제도가 장기요양이다. 사회 연대적 책임의식을 갖고 사회가 성숙해야 할 시기다”라고 강조했다.

백석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서동민 교수는 “일본의 개호보험법 제 1조(목적)에는 ‘존엄 유지와 자립적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보건의료서비스 및 복지서비스에 대한 급여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1조(목적)에는 ‘노후의 건강증진 및 생활안정, 가족의 부담 경감’ 정도만 담고 있다. 노인의 인권은 어디에도 담겨있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 교수는 “노인들이 어떠한 서비스를 원하는지 알고 고민한다면 시설 기준은 물론 평가, 서비스 등의 기준 또한 명확해질 것”이라면서 “과연 이 제도가 노인들을 위한 제도가 맞는지,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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