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10년 [上]...인정조사부터 사후관리까지 문제 산적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대한 만족도가 90%로, 열에 아홉은 만족하는, ‘사회적 효(孝) 보험’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했다.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만의 성과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유독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잇따라 열렸다. 간호인력, 수가, 서비스, 의료전달체계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정부와 공단, 보호자(가족)들만 만족하는 제도일 뿐이라며 이대로 둬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해마다 정부가 내놓고 있는 설문조사 결과 역시, 수급자가 아닌 그들의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일 뿐, 정작 서비스를 받는 당사자의 목소리는 빠져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말 공단이 공개한 만족도 및 국민인식도 조사도 공단이 리서치전문기관 (주)글로벌 리서치에 의뢰한 것으로, 장기요양서비스 이용자는 단 500명일 뿐 보호자 1,000명, 일반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매년 수치가 늘어 90%를 넘었다는 ‘전체 만족도 조사’ 역시 수급자의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조사문항도 ‘제도를 통해 보호자들의 사회·경제적 활동변화’를 묻거나 ‘부양부담이 줄었는지’ 등이다. 어르신 방문면접조사는 그동안 없었다가 지난 2015년부터 두번 조사됐고 85.6%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한 전문가는 “수급자의 인정조사부터 기관평가까지 도맡아하는 공단이 주도한 설문조사가 신뢰성이 있겠느냐”면서 “실제 수급자들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대다수가 제도에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늘어나는 수요와 공급, 반복되는 공단 관리 부실

이 같은 불만은 서비스 제공자인 공급자, 학계, 의료종사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제도를 총괄하고 있는 공단이 기본 업무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곳곳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단은 2008년 7월 1일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된 이후 장기요양 인정조사부터 등급판정, 급여비용 지급 및 관리, 기관 평가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기요양시설은 해마다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해 2015년 기준 5,085개소에 달하고, 장기요양등급을 받아 서비스를 실제 이용하는 65세 이상 노인은 43만명이다.

이에 공단이 보험료 징수 업무를 제외하고 장기요양업무에 투입한 직원만 3,335명이며, 공단이 운영하는 서울요양원에는 80명의 인력이 배치됐다.

하지만 공단의 내부 감사 자료를 보면 장기요양기관 관리, 급여비 착오지급, 장기요양등급판정위원회(등판위) 관리 부실 등의 문제가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공단 종합감사’ 결과 휴·폐업한 장기요양기관에게 급여비를 제공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고, 공단에서 현지조사를 해서 부당행위를 적발했음에도 시·군·구청이 행정처분한 결과를 입력하지 않아 5개소에 급여비 총 1,589만원이 지급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수급자의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등판위가 유명무실하다는 조사도 나왔다. A지역 운영센터에서만 한 번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위원이 193명이었는데 해촉을 한 경우는 17명 뿐이었고, 사전에 심의자료를 아예 검토한적 없거나 절반도 검토하지 않는 위원이 60%에 달하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공단 직원의 인정조사 결과가 뒤바뀐 경우가 전체 신청건수 중 1% 내외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공단에서 진행하는 장기요양기관 평가에서도 결과가 좋은 곳에는 가산금을 주지만, 하위 기관에 대해서는 어떠한 행정조치도 취하지 않아 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정작 공단은 (하위기관에) 감액을 하면 그 기관의 수급자에 대한 서비스 질이 오히려 떨어질까 우려된다거나, 각 지사별로 지도·감독해야 할 사업장 수가 많고 인력이 한정돼 있다 등의 핑계를 대고 있을 뿐이다.

양적 확대에 치중, 서비스 개선 노력 부족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 제도가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조차 구식이 되어버린 지금,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은 노인장기요양보험 뿐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단 쇄신위원회 활동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장기요양보험은 제도 시행이후 장기요양 인정유효기간 연장(2010년 1월), 단기보호기간 입소기준 조정(2010년 3월), 방문간호 및 주야간보호 서비스 활성화 방안 시행(2011년 3월), 경증치매 노인 등급향상(2011년 6월) 등 수혜자 대상자 확대에만 집중돼 왔다.

반면, 일본은 2000년 4월 장기요양(개호보험)을 도입한 이후 5년 만에 예방서비스 개념을 도입해 지역종합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지역 내 요양개호 예방계획을 수립하고 노인 및 가족에 대한 상담, 노인층 권리 보호 및 노인학대 조기예방 등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12년에는 지역종합지원센터 체계를 만들어 노인들의 생활지역에서 의료서비스, 요양개호, 가사 및 생계 수단 보조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완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노인들을 위한 시설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등 꾸준히 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백석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서동민 교수는 “장기요양보험 과제는 정부와 공단, 공급자, 가족 등 각각의 관점에 따라 다 다르고 다양하다”면서 “하지만 정작 이 제도가 도입되기 전과 후 과연 노인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지금은 수급자들이 혜택을 받을 대상자가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한다. 그리고 가족들은 제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요양원을 현대판 고려장으로 여기고 있다”면서 “제도 도입당시 대상자를 늘리고 서비스 개수를 늘리는 등 양적 인프라를 확대하는데 치중하고 정작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단은 질 개선과 보장성 확대를 위한 노력보다 보험료의 법정준비금 적립 등에 집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장기요양은 지난해 예산이 4조6,976억원으로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당기흑자 210억원을 기록했다. 그간 누적 적립금만 2조3,734억원으로 준비금 적립률 50%를 충족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장기요양보험료도 단기보험이다. 그런데 이를 적립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치매케어학회 황재영 상임이사도 “장기요양보험 누적 적립금이 2조원이 넘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면서 “사회보험제도인데 보험료가 남으면 다음해 보험료를 인하하던가 보장성을 확대하든가 해야 한다. 이를 저축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단이 업무과다로 관리하기 어렵다면 공단이 도맡고 있는 노인장기요양제도의 업무를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건강보험처럼 심사와 평가는 전문 기관이 맡고, 서비스 제공은 지자체가 맡아 지역 내에서 장기요양서비스가 체계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매케어학회 황재영 상임이사는 “현재 장기요양은 공단에서 모든 업무를 다하고 있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는 현장에서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단의 일자리를 만드는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기관평가도 서류평가 수준으로 실질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나라도 보험자가 전체 기관을 평가하는 곳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건강보험에서도 심사와 평가는 심평원이라는 별도 기구가 없이 공단이 다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냐”면서 “공단 직원에 대한 교육을 통해 공단도 전문화가 돼야 한다. 현재는 보호자와 가족들, 공단만 만족하는 제도”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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