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훈정 원주성모의원 원장

프롤로테라피(Prolotherapy)라는 것이 있다. 고농도 포도당을 손상된 힘줄이나 인대 근처에 주사하여 가벼운 염증을 일으키면서 신체의 자연회복력을 도와 치료 효과를 보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공인되어 널리 쓰이는 치료법이고 그 효과도 증명됐으나 아직 건강보험 급여행위로 등재돼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비급여 시술이다.


필자 역시 근골격계 환자 진료 시 종종 사용하는 치료법인데, 효과가 나쁘지 않지만 비급여인 관계로 적극적으로 권하지는 않는다. 가격이 비싸서 그런 건 아니다. 환자 상태나 시술 부위 등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개 2만~3만원 정도 받으니까(요즘 외식비용을 생각해봐도). 하지만 왠지 비급여라면 환자가 거부감을 가질까봐 선뜻 권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지난 13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비급여 진료비 현황과 국외 사례를 통해 본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여기서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모든 의학적비급여를 급여화하면서 그 원가를 100% 보상하겠다는 신포괄수가제를 제안했다.

우선 듣기엔 의학적 비급여를 급여로 포함시키겠다고 하니 나쁘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원가를 보상하겠다고 하고, 또한 미용 목적의 비급여와는 달리 질병 치료에 도움 되는 비급여는 건강보험 재정 형편상 급여에 포함되지 않았을 뿐, 언젠가는 급여에 등재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가(原價)의 분석’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의사들이 생각하는 원가와 공단이나 정부 등이 생각하는 원가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프롤로테라피의 경우를 보자. 그 재료가 되는 건 20~25%의 고농도 포도당인데, 시술시 몇십 밀리리터를 사용한다고 해도 포도당 자체의 가격은 몇백원 밖에 안한다. 곁들여 필요한 주사기나 국소마취제 등을 감안하더라도 재료대는 천원을 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프롤로테라피의 원가는 그것이 아니다. 그 시술을 하려면 먼저 환자의 상태를 잘 파악하고 충분한 해부학적 지식을 토대로 정확하게 시술돼야 한다. 시술 과정에서 감염이나 조직 손상 등이 뒤따를 수 있으며, 필연적으로 가벼운 염증이 동반되기 때문에 환자의 불평을 듣고 안심시켜주어야 한다(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이 행위의 원가는 얼마나 되어야 하는가. 현재 급여등재 구조에서 주요 비급여 시술에 대한 의사의 숙련도나 업무량 등에 대한 정확한 가치를 분석할 수 있는 기전이 있는가. 또한 예기치 못한 심한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의사가 물게 될 의료분쟁의 비용은 얼마로 계산해야 하는가.

물론 진료 현장의 의사들이 이를 정확히 계량화하여 비급여 시술의 가격을 매기는 건 아니다. 대신 그 가격 결정의 기능을 맡긴 곳이 ‘시장(市場)’이다. 주변의 병의원들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없고, 비싸게 받는 데도 시술 받은 환자의 만족도가 떨어진다든지 하면 바로 도태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비급여 가격이 결정되고, 낱낱이 분석하지 않아도 의사가 공을 들여 환자를 설득하고 시술할만한 가격이 책정된다.

그럼에도 정부나 공단이 생각하는 ‘원가’는 아마도 포도당 가격에다 주사 수기료 정도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건 불과 몇천원 정도일 텐데, 과연 그 비용을 받고 프롤로테라피를 시술할 의사가 있을까. 또 그것이 올바른 건강보험 급여화의 과정일까.

여기선 프롤로테라피의 예만 들었지만, 그 외의 수많은 비급여 시술과 검사 항목들이 이런 식으로 재단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요컨대 우리 건강보험제도 하 원가분석이란 의사의 전문성이나 노력 등을 거의 인정하고 있지 않기에, 보나마나 싸구려 패대기 급여화가 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억측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지금 이미 급여화가 되어 있는 수가 항목들에 대해서 다시 분석해보기를 권한다. 복지부나 공단, 심평원이 고장 난 녹음기처럼 읊어대는 ‘원가를 충분히 반영했다’는 주장에서 그 원가(原價)가 도대체 무엇을 반영했는지 말이다.

어떤 비급여 항목이 싸구려 급여화가 되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없는 의사들의 외면을 받게 되고, 결국 그 시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의 기회가 박탈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일종의 풍선효과처럼 다른 비급여 항목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다. 진료실 의사들은 주지도 않을 원가타령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의사의 정당한 노력을 제대로 반영해주기 싫다면 차라리 비급여를 그냥 내버려두어 달라. 대신 환자들과 시장의 선택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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