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현 서울시의사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

퇴근길 라디오를 켰다. 시행을 앞둔 ‘김영란법’이 화제였다. 한 학부모와의 전화 통화였다. 아이 담임 선생에게 감사의 표시로 커피 한잔 사는 것도 위법이냐는 질문이었다. 실제로 국민권익위원회는 불법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학부모나 학생이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 또는 의례, 부조라는 목적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상황에서 교사에게 커피 등 음료나 꽃을 전달하는 것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속칭 김영란법에 위반된다. 이외에도 정부는 3·5·10만원 이내의 음식물·선물·경조사비라고 해도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 또는 의례, 부조라는 목적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청탁금지법 위반이라고 했다. 법 위반의 판단 기준이 되는 직무관련성 개념에 대해서는 직무 내용과 금품 제공자와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1차적 판단은 해당 기관의 청탁방지 담당관이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어느 날 시대가 바뀌었다. 관례 또는 관행들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됐다. 선의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도 위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국민들이 알고 있다.

사적 이익과 공적 의무가 충돌하는 상황을 ‘이해상충(COI: Conflict of Interests)’이라 한다. 사적인 이해 관계가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 또는 공공이나 타인의 이익과 서로 상충되는 상황은 종종 발생한다. 금번 정부 들어 이해상충이 무척 우려되는 정책들이 쏟아졌다. 의료계에서는 대표적으로 원격의료와 관련된 정책과 한의사들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가 그랬다. 이른바 창조경제와 의료산업화라는 미명 하에 경제부처 관료들이 의료기기 제작업체 등 업계 대표들을 모아놓고 보건의료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은 지금 돌이켜봐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

특정 지역에는 시민의 안전을 위한 규제조차 사라지는 ‘규제 프리존’이 만들어진다고도 했다. 정부가 국민 건강을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경제 논리를 앞세우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좀처럼 납득이 되질 않았다.

요즘 사람들은 몹시 화가 나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매주 끊임 없이 타오르는 촛불 시위의 열기를 보면 더욱 그렇다.

‘정의론’으로 유명한 존 롤스는 이해상충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어떤 특정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런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보다 큰 사회적 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노력함으로써 누리게 될 사회적 선에도 큰 관심을 가진다. 아울러 사회적 선의 분배 방식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즉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유리한 분배 방식을 통해 더 많은 몫을 원하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상충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해상충을 방지하려면 권력자에게든 일반 시민에게든 동일한 잣대가 주어지는 것이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만일 누군가 룰을 어기고 더 큰 이득을 보고자 했고, 그것을 은폐하려는 시도를 했다면 마땅히 사회정의에 따라 단죄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런 생각들이 ‘광장의 분노’를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공자는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사무사(思無邪)라 했다. ‘논어로 논어를 풀다’의 저자 이한우 선생은 사특하다는 뜻의 사(邪)를 사사로울 사(私)와 같다고 풀이했다. 과거의 위정자들은 사심이 없다는 뜻의 사무사 경구를 벽에 붙여 틈틈이 보고 되새겼다.

헌법재판소는 통진당 해산을 선고하며 사무사(思無邪), 무불경(毋不敬)이라 했다. 사심을 배제하고 공정한 자세로 임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제는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게 됐다. ‘무지와 오판’이라는 제목의 시론을 통해 무지(無知)한 리더가 조직을 망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언젠가는 분노의 감정이 가라앉고 이성이 눈뜰 시간이 올 것이다.

참으로 겨울바람 만큼이나 엄혹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무사 시대에 모든 이들에게 평등한 잣대가 주어지는 것 또한 어쩌면 새로운 시대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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