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과학대 보건의료산업학과 이평수 교수

상대가치운영기획단이 지난 해 7월 조정안을 마련했으나 상대가치점수 조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는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재정중립이라는 원칙을 깨고 5,000억원을 추가 투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재정 추가 투입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과 실행 가능한 조정안은 마련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고 편법을 활용하려는 결과로 보인다.

기본원칙은 매우 뚜렷하고 단순하다. 상대가치가 과대 평가돼 있는 행위는 내리고, 과소 평가돼 있는 행위는 올려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만천하가 다 아는 바와 같이 상대가치는 행위 간 투입비용의 상대적 크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재정과 무관하게 조정돼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재정 추가 투입이라는 편법을 제시하는 정부의 고충은 이해하나 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가능하지 않은 방안이다.


현 수가체계에서 재정의 크기는 상대가치점수에 환산지수를 곱한 결과이다. 여기서 상대가치는 개별 행위 간 보상의 균형을 위한 도구이고, 전체 재정의 크기는 환산지수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상대가치 조정을 위하여 재정을 추가 투입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보상에 투입되는 재정은 환산지수계약에서 결정된다. 상대가치 조정에 재정을 추가 투입한다 해도 환산지수 결정과정에서 그 만큼을 조정하면 아무런 효과는 없어진다.

2012년까지 진행됐던 1차 상대가치개편 과정에서도 모두가 아는 기본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올리는 폭은 키우고 내리는 폭은 줄인 결과이다. 2차 개편은 물론 상대가치의 정상적인 운용을 위해서는 당사자 간에 기본원칙을 마련하고 이를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가치는 건강보험 재정과 무관하게 행위 간 투입비용의 상대적 크기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 1997년부터 상대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활용돼온 ‘원가’는 용어부터 재고해야 한다. 요양기관 입장에서 원가는 ‘상대가치 × 환산지수’이다. 상대가치를 평가할 경우 특정 행위의 원가가 115%라 함은 그 행위가 기준행위에 비해 15% 과대 평가돼 있다는 의미이지 절대적으로 원가보다 15% 더 보상받는다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치의 정상화 내지, 균형화를 위한 기본방향이 설정되고, 이를 실행할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 정상화는 행위별 상대가치 크기의 과다와 과소를 최소화한 균형의 상태이다. 지금의 용어로 말하면 원가 100%에 수렴하는 것이다. 대안으로는 정상화 일정과 이를 실행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일정은 정부가 당사자들과 협의해 조정하고, 실행조직은 당연히 의료계를 중심으로 상설조직이 운용돼야 한다. 상대가치는 재정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조정되고 결정된 상대가치는 지속적으로 상시 모니터링되고 조정돼야 한다. 행위의 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의 발생을 상시적으로 점검해 상대가치에 반영해야 한다. 이 업무는 의료계 중심의 상대가치 조정 조직이 함께 담당하면 될 것이다. 주요 요인으로는 기술이나 재료 등의 개발에 따른 구입가격이나 성능의 변화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의료행위 전반의 상대가치 정비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의료행위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기본진료료 특히 진찰료에 대한 상대가치는 조속히 정비돼야 한다. 진찰료는 의료행위의 시작이자 기본일 쁜 아니라 의사들의 업무량이나 건강보헙 재정 측면에서 그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의료계가 진료과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다. 병원 중심으로 의사의 실적을 평가하는 현실은 그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의료행위에 관한 사항을 의료전문가들이 해결하지 못한다면 전문가로서 사회적 역할과 위상에 손상을 입을 뿐 아니라 실리도 챙기지 못하고 내부 갈등만 고조될 것이다. 정부의 위임을 받아 재정적 지원을 받는 상설조직의 운용이 필요한 이유이다.

금번 2차 개편부터 의료계와 정부가 장기적 안목에서 기본방향과 원칙을 설정해 추진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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