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이오산업, 현장에서 듣다④ 연구중심병원협의회 방영주 회장

한국이 세계를 놀라게 할 신약을 개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래 유망 먹거리가 될 신산업 중 하나로 꼽히는 바이오제약산업. 그 중심에 10개의 연구중심병원이 있다.

미국이 병원·대학·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움 수십여개를 지원하는 CTSA(Clinical and Translational Science Awards) 사업을 통해 제약강국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면, 중개연구를 수행하는 한국의 연구중심병원들은 이런 제약강국에 대항할 R&D 기초체력을 연마하는 장인 셈이다.

지난 2013년 지정된 연구중심병원들은 연구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1기를 지나 올해부턴 본격적으로 사업화 기반을 조성하는 2기를 맞이했다.

연구중심병원 출발과 함께 정부와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연구중심병원협의회는 실질적인 성과가 나타날 날이 머지않았다고 기대하면서도 글로벌시장에서의 한국의 역량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대병원 방영주 의생명연구원장을 만나 우리나라의 연구중심병원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있어 어려움이 무엇인지, 해결방안은 어떤 것이 있을지 들었다.




-연구중심병원은 왜 필요한가.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겠지만 바이오 분야는 남들이 갖지 못한 최신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아이디어의 상당수는 Academia(아카데미아)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산업계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학계에서 구하고 있는데 이는 학계의 연구자들이 첨단연구를 하기 때문이다. 대학이 기초연구에 집중한다면 병원의 연구는 환자 치료를 위한 것에 가깝다. 이게 바로 중개연구다. 중개연구가 병원에서 많이 이뤄지는 이유는 환자가 있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병원에는 치료제나 진단에 대한 미충족된 욕구가 있다.

(미국 제약산업도) 병원 단위에서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미국 NIH(국립보건원)는 이미 10여년 전보다 나은 치료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중심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바로 연구중심병원이다. 우리가 말하는 이들의 바이오클러스터도 결국 연구중심병원을 중심으로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탈 등이 모여든 것이다.

-한국은 정부주도로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다.

보스톤에선 하버드대병원을 중심으로 클러스터가 자연발생했다. 하버드의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산업계가 쫓아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한국은 오송이나 대구 등 거리가 먼 곳에 클러스터를 만들어 놓고 모이라고 하니 모이겠나. 보스톤이나 샌프란시스코에 산업계가 모인 것은 대학과 병원을 보고 간 것이다. 그런데 국내에는 Physician-Scientist나 Clinician-Scientist가 부족하다. 환자와 병을 모두 아는 과학자, 즉 의사과학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의사과학자가 있어야 R&D와 관련해 원할한 소통을 할 수 있다. 이같은 소통은 단순히 환자를 많이 봤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다시 말해 연구중심병원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우수한 첨단지식과 아이디어를 지닌 의사과학자들인 셈이다.

-의사들이 바이오시밀러 임상연구에 관심이 적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바이오시밀러 개발사들은 의사들이 임상연구에 관심이 적다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는 논문으로써 이점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항암제 허셉틴이 아닌 허셉틴의 바이오시밀러 임상연구논문은 쓰더라도 이를 실을만한 좋은 잡지가 없다. 회사 입장에선 이런 임상시험이 빨리 진행될 수 있으면 제품을 신속히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의사에게는 이득이 될 게 없다. 그 시간에 다른 논문으로 이름을 낼 수 있는데 어떤 의사가 굳이 실을만한 좋은 잡지가 없는 바이오시밀러 연구를 하겠는가.

바이오시밀러 임상연구는 임상시험 인프라 구축 수요가 있는 병원에 니즈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지방대병원의 경우 연구능력이 굉장히 우수한 교수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숫자가 (서울보다)적다보니 임상시험 인프라 구축부터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인프라를 누가 깔아야하겠나. 바로 그 임상연구가 필요한 산업계가 해야 한다. 업체들이 연합을 구성해 바이오시밀러 연구 인프라를 만들고 임상시험자를 교육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면 니즈가 있을 것이다.

-산업발전을 위해선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산업계에 진출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먼저 국내 제약사가 의사를 받아들일만한 능력이 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예를 들면 한 국내 대형 제약사에는 (연구담당) 의사가 아직 한 명도 없다. 제약사가 좋은 조건으로 의사를 채용하면 의사들이 왜 안 갔겠나. 마케팅 담당이라면 몰라도 R&D 분야에선 아직까지 대학교수 등의 경력을 걸고 갈만한 국내 제약사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가 과학자적 소양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의사라고 해서 모두 과학자적 소양이 충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과학자도 필요하지만 의사가 아닌 사람에게 의학교육을 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과거에 개방형 대학원 제도를 제안한 적이 있다. 생명과학을 전공한 학생들에게 의학적 지식의 일부를 가르치자는 것이었다. 미국 등에는 의사가 아님에도 상당한 의학적 식견을 지니고 있는 인력들이 제약사에 많이 근무하고 있다. 의학적 지식을 모두 가르치려면 의대를 나오고 인턴까지 시켜야 하는데 이런 인력들은 의사만큼 의학적 지식을 알 필요가 없으니 걱정할 것 없다. R&D를 수행할 수만 있으면 되는데 굳이 해부학을 12학점씩 이수할 이유가 있겠는가.

-의사과학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연구중심병원 운영은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은 우수대학과 병원, 의사과학자가 굉장히 많지만 한국은 그 숫자가 매우 적다. 따라서 미국과 같이 지역적으로 클러스터가 구축되기보단 일부의 우수병원에 벤처들이 모여드는 미니클러스터가 한국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서울대병원 연구소에는 현재 2개의 벤처가 들어와 있다. 우수한 벤처가 있다면 좀 더 받고 싶은데 (공간적으로) 한계가 있더라. 서울시나 정부가 세제혜택 등 행정적 지원으로 대학로 근처에 바이오벤처들이 입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벤처캐피탈이나 제약사 담당자들도 더 자주 오게 될 것이고 결국 병원과 밀접하게 일하게 돼 발전된 클러스터가 될 것이다.

-10개의 연구중심병원이 지정돼있는데 적정한 숫자라고 보는가.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신약과 새로운 의료기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느 대학병원이든 시간과 돈을 투자해 역량을 올릴 수 있으면 그만이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다만 혜택을 주는 데에 있어선 기준·조건이 있어야 한다. 혜택을 받기 위한 기준을 낮추면 더 많은 병원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일부는 (기존보다) 노력을 덜 하게 된다.

글로벌 경쟁에서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엄청난 강적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때문에 최첨단의 아이디어가 결집돼야 하는 만큼 기준을 낮출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평가는 절대평가가 돼야 한다고 본다. 절대적 기준을 만족한다면 연구중심병원이 5개면 어떻고 20개, 30개면 어떻겠나. 지금 연구중심병원은 10개지만 향후에는 경쟁을 통해 이중 우수한 곳들만 남게 될 것이다.

-연구중심병원에 있어 오픈이노베이션도 강조되고 있다.

연구중심병원도 오픈이노베이션의 큰 프레임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연구중심병원은 오픈이노베이션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오픈이노베이션의 출발은 말 그대로 오픈마인드다. 상대의 마음을 열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먼저 마음을 여는 것이다. 특히 오픈이노베이션에는 리더십이 필수인 만큼 CEO가 오픈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평소 윈윈할 수만 있다면 누구하고도 일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한다. 학력도 사회적 위치 등도 중요하지 않다.

-연구중심병원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연구중심병원의 궁극적인 목표는 연구역량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새로운 신약이나 의료기술을 만들어 국가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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