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저인망식 방문확인, 털면 나온다는 식 아니냐” 공분

의료계에 또 다시 표적 조사 논란이 일고 있다. 대상은 국가건강검진 당일 실시한 대장내시경 검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산과 울산, 경남에 이어 대전 지역에서도 검진 당일 청구한 대장내시경 검사 진료비에 대한 방문확인을 대대적으로 실시하면서 의료기관과 충돌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전체 환자의 자료를 요구하는 등 ‘요양기관 방문확인 표준운영 지침(SOP)’을 지키지 않은 사례들이 발견되면서 의료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방문확인은 민원제보, 요양기관 관련자 신고, 급여사후관리 등으로 요양기관이 청구·지급받는 요양급여 비용 등에 대해 확인이 필요한 경우 공단이 요양기관을 방문해 사실관계 및 적법 여부를 확인하는 업무를 말한다. 공단 지역본부장은 방문확인 후 부당금액이 확인되면 자체환수하거나 보건복지부에 현지조사를 의뢰할 수 있다.



공단 대전지사, 명부 없이 전체 환자 진료기록 요구

대전 지역에 있는 A의원은 최근 공단 대전지역본부로부터 팩스 한 장을 받았다. ‘요양기관 방문확인 및 자료제출 협조 요청’ 공문이었다. 공문에는 방문일시, 방문자와 함께 진료기록부와 본인부담금 수납대장 등을 제출해 달라고 적혀 있을 뿐이었다. A의원이 전화로 문의하니 그때서야 공단 대전지역본부는 검진 당일 대장내시경 검사 급여 청구 부분에 대해 적법 여부를 확인해야 하니 6개월치 자료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그동안 대장내시경 검사 관련 민원을 받은 적이 없었던 A의원 측은 문제가 되는 대상자를 알려주면 관련 자료를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공단 대전지역본부는 전체 환자의 진료기록부와 본인부담금 수납대장을 요구했다. SOP에 따르면 공단이 방문확인 시 자료제출을 요청할 때는 그 사유와 요청자료 목록, 범위 등을 명시해야 한다. 특히 요양기관에 보내는 자료제출 요청 공문에도 자료제출 대상자 명부를 함께 보내도록 했다.

A의원 원장은 “자료가 필요한 대상자 리스트를 달라고 했지만 공단 측은 채용건강검진 부당 청구 부분도 확인해야 한다며 모든 환자들의 자료를 다 달라고 하더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인정한 기준대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공단은 마치 범죄자 취급한다”고 분개했다. 그는 “대장내시경 검사 관련 민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지역 내에서 대장내시경 검사 청구 건수가 많은 의원들을 방문확인 대상으로 선정한 것 같다”며 “민감한 개인정보가 다 담겨 있는 진료기록부를 모두 다 달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도 했다.

3일 동안 공단 대전지역본부 방문확인을 받은 B의원은 검진 당일 대장내시경 검사 등 160여건이 부당청구로 지적돼 관련된 진료비 6개월치를 환수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전 C의원도 비슷한 이유로 200여건이 부당청구로 환수조치 결정을 받았다.

한 원장은 “대장내시경 검사로 대장암을 진단한 사례도 있지만 검진 당일 실시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청구라며 환수하겠다고 한다”며 “공단은 검진 당일 대장내시경 검사는 무조건 부당하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민원이나 부당청구 관련 신고가 접수되지도 않았는데 대장내시경 검사를 하고 있는 의원들을 대상으로 표적 조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공단 방문확인, 털면 나온다는 식으로 진행”

검진 당일 대장내시경 검사 급여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단 지역본부들이 무리하게 방문확인을 실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의사가 사전에 진찰해서 대장내시경검사가 필요하다고 임상적으로 판단해 장 정결제까지 처방한 경우에는 검진 당일 대장내시경 검사를 했더라도 급여로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준 자체가 모호해 복지부와 심평원, 의료계는 대장내시경 검사 급여 기준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평원 관계자는 “의사가 진찰을 해서 환자 상태에 따라 선행 검사를 해서 대장내시경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면 검진 당일 실시한 대장내시경 검사도 급여로 청구할 수 있다”며 “질환에 대한 치료 개념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련 급여 기준이 따로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검진 당일 대장내시경 검사 급여 기준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한 개원의는 “증상이 있으면 검진 당일 대장내시경 검사를 해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만 그 기준이 명백하지 않아 현장에서는 혼란스럽다”며 “검진 당일 실시한 대장내시경 검사를 무조건 비급여로 환자에게 전액 청구해도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사의 임상적인 판단을 공단이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심평원은 문제가 없다고 하는 부분을 공단이 문제 있다며 나중에 방문확인을 하는 상황 자체가 황당하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개원의는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 검진 당일 대장내시경 검사가 문제가 돼서 급여 청구 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동료 의사들끼리 공유했지만 공단이 저인망식으로 방문확인을 나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며 “지금 공단은 털면 나온다는 식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부산시개원내과의사회 이광욱 회장은 “지금 대전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단 방문확인을 보면 부산과 똑같다. 통계상 청구 건수가 많으면 방문확인을 나오는 것 같다”며 “문제가 발견되지도 않은 곳에 방문확인을 나온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공단 “복지부, 관련 기준 개정 추진 중…본부 차원 아니다”

대전 지역 의료기관 대상 검진 당일 대장내시경 검사 방문확인은 보건복지부나 공단 본사와 상관없이 대전지역본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 차원에서 현지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건은 없다”며 “대전 지역에서 진행하는 방문확인은 복지부와 관련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공단 본사 측은 대전지역본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일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요양급여비 사후관리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공단 본사 관계자는 “지사에서 업무를 하다보면 급여사후관리 차원에서 요양급여기준에서 벗어났는지를 판단한다. (이번 대장내시경 검사 건은) 기획조사는 아니다”라며 “복지부가 관련 기준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라 본부 차원에서 더 하려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심평원은 청구한 내용만 보고 심사하고 우리는 사후관리로 그 성격이 다르다”며 “(심평원은) 진료를 하지 않고 청구해도 급여 기준만 맞으면 통과되지만 사후관리 차원에서 실제 진료가 이뤄졌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연말이 되자 성과를 올리기 위해 공단 지역본부가 마구잡이로 방문확인을 진행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반감이 커지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방문확인은 문제가 있어야 나오는 것 아니냐. 그런데 최근 검진 당일 대장내시경 검사를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방문확인을 보면 표적 조사 같다”며 “급여 기준도 명백하지 않은 부분을 털려고 하는 것 보면 인력이 남아도는 것 아니냐. 그 시간을 사무장병원 적발에 쓰는 게 효율적”이라고 했다.

그는 “공단 본사가 지시한 사항이 아니면 지역본부를 컨트롤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아니면 연말에 맞춰 성과를 올리기 위해 방관하는 것 아니냐”며 “상황이 이러니 의사들 사이에서 공단이 실시하는 방문확인은 전면 거부하자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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