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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뮤지엄, 정신병원과 지역사회 잇는 ‘다리’가 되길"[인터뷰]용인정신병원 리빙 뮤지엄 코리아 김성수 디렉터
유행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퍼져나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그 유행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회복을 돕고 예술가를 만든다면? 미국에 이어 스위스, 네덜란드로 퍼져 나간 리빙 뮤지엄(Living Museum) 열풍이 한국에 닿았다.

설립된 지 45년된 용인정신병원에 한국 최초로 '리빙 뮤지엄 코리아(Living Museum Korea)'가 문을 열었다. 정신질환자들이 자유롭게 미술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병원 안에 마련한 것인데, 외국에서 이미 증명된 것처럼 환자들의 회복과 예술적 자질을 키울 것으로기대되고 있다.

지난 3일 리빙 뮤지엄 코리아 개관식에서 만난 용인정신병원 김성수 디렉터(정신과 전문의, 해뜰날센터장)는 “정신질환은 치료과정도 힘들지만 그보다 자신이 정신질환자가 됐다는 사실이 환자를 더 힘들게 한다”면서 “리빙 뮤지엄은 정신질환자의 정체성이 치유자 또는 예술가로 바꿀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리빙 뮤지엄’은 미국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외국의 성공적인 리빙 뮤지엄 사례가 궁금하다.

리빙 뮤지엄은 최근 세계적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그 출발은 미국 뉴욕 크리드무어(Creedmoor) 주립 정신병원의 작은 방에서 비롯됐다. 지금은 병원 건물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리빙 뮤지엄이 확대됐는데 이는 기존 치료로는 회복이 잘 안 되는 난치성 환자들이 이 공간을 통해 회복되고 치료되는 등 획기적인 모델이 됐기 때문이다.

리빙 뮤지엄은 정신질환자들의 작업공간이자 전시공간으로, 이곳에서 나온 작품 중에는 소위 아웃사이더 아트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고액으로 판매된 것도 있다. 작가 중에는 작품을 판매한 수익으로 사회로 복귀한 이들도 있다.

이처럼 뉴욕 리빙 뮤지엄(관장 Janos Marton 박사)은 정신건강 관리, 홍보, 인식개선에 기여한 공로로 기슬랭박물관과 얀센 R&D가 주관하는 ‘2015 Dr. Guislain Breaking the Chains of Stigma Award’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 모델이 매력적이라 2014년에는 스위스에서도 정신병원의 한 켠에 리빙 뮤지엄 스위스라는 이름으로 들어섰고, 지금은 3층 건물 전체가 리빙 뮤지엄이 됐으며, 하루에 120여명이 다녀간다. 지금은 네덜란드에서도 리빙 뮤지엄이 만들어지는 등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 한국에서는 오히려 저수가 등의 문제로 정신질환자의 입원치료에 집중하면서 강제입원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리빙 뮤지엄을 만든 용인정신병원은 상황이 다른가.

우리 병원은 의료급여 환자들이 많이 입원했던 곳이다. 난치성 환자들 중에 치료와 재활사업을 통해 탈원화를 한 분들도 많지만 가족이 없어서 아직도 퇴원하지 못한 분들이 있다. 특히 의료급여 수가가 너무 낮다보니 폐쇄병동을 닫는 대학병원이 늘고 있다. 또한 전문적으로 정신과 입원병동을 운영하는 병원도 줄고 있다. 환자들은 여전히 발생하는데 말이다.

우리까지 그럴 수는 없어서 요즘은 급성기 환자를 받고 있다. 급성기 환자를 받다보니 병상구조를 리모델링하게 됐다. 그러면서 유휴공간도 생겼고, 기존의 재활사업과 다른 진보적인 모델 도입을 고민하게 됐다. 우연히 미국 등의 사례를 접하게 되어 치료공동체로서의 해뜰날 센터와 리빙 뮤지엄이 더해지면 좋겠다고 판단해 도입하게 됐다.

- 해뜰날 센터와 리빙 뮤지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되나. 미술 창작이 기존의 미술치료와 무엇이 다른가.

최근에는 정신질환자들의 정체성을 바꾸는 ‘회복(Recovery)’ 패러다임이 정신의료서비스를 변화시키고 있다. 외국에는 ‘동료전문가(Peer Specialist)’ 제도가 활성화 돼 그들 간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뉴욕주에서는 1,000여명의 동료전문가를 양성해 자격증을 주는 등 제도권 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우리 병원에도 2명의 동료전문가가 있다. 이들도 정신질환자이지만 치료를 받고 회복된 이후 다른 정신질환자의 회복에 도움이 되도록 상담 등을 해주고 있다. 내년에는 병원에서 동료전문가학교를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회복여정에서 얻는 새로운 정체성’을 주제로 한 정신보건재활 국제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여기에 리빙 뮤지엄 운동까지 더해지면 환자가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환자는 이 두 가지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환자가 아닌 치유자 또는 예술가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리빙 뮤지엄은 미술이라는 방법을 쓰긴 하지만 미술치료와는 완전히 다르다. 치료가 아니라 자유롭게 정신질환자들이 느끼는 직관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어떠한 규칙이나 요구를 하지 않고 최대한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하게 한다는 데 차이점이 있다.

- 규칙도 없고 가르치지도 않는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된다는 의미인가.

굉장히 놀라운 일이긴 하다. 정신질환자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직관을 증상을 통해 느끼고 표현하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자기 자신을 발휘하고 동기가 생기고, 자기 효율성을 느낀다. 그러면서 자기 스스로 무언가 하려고 하는 주도적인 성향을 키운다. 나아가 일상생활로 회복이 되고 정체성이 바뀌는 과정을 겪는다.

실제 지난 2주 동안 2명의 네덜란드 정신장애인 활동가가 리빙 뮤지엄 코리아 개관 준비를 도왔다. 그들과 함께 건물 외벽 그림을 그리면서 그들의 파워풀과 자신감에 놀랐다.

그 외에도 거동이 불편해 수년간 타인의 도움에만 의존했던 한 정신질환자가 이번 리빙 뮤지엄 개소 준비에 참여 할 때 이동을 도와 줄 사람이 없다고 하자, 스스로 걸어서 오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기존의 재활치료에서는 되지 않았던 것이지만, 언어가 다르고 사정이 다른 정신질환자들이 한 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치료적 공동체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 리빙 뮤지엄 코리아가 자리한 이 공간은 원래 어떤 곳이었나. 이 공간은 향후 어떻게 운영되나.

사실 이곳은 병동이 아니었다. 병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병동이 아닌 보안실이었다. 병원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환자들의 이동을 확인할 수 있도록 CCTV 등이 설치돼 있었다. 일종의 팬옵티콘(원형감옥)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을 과감하게 병원의 가장자리로 옮기고 리빙 뮤지엄으로 바꿨다. 더 이상은 감시하는 공간이 아닌 언제든 방문해 그림을 그릴 수도, 볼 수도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자유롭게 자기 성찰을 하고 창작할 수 있는 공동모임의 장소로 바꾼 것이다.

이곳은 모든 정신질환자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데 미국의 풀뿌리 운동처럼 도네이션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우리 병원은 카페, 식당, 해뜰날센터 등 정신장애인을 고용하기 위한 표준사업장이 운영되고 있어서 뮤지엄에도 정신장애인 1명을 직원으로 두고 있다. 외래환자는 주5일 편한 시간에 이용하고 입원환자는 정해진 시간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 리빙 뮤지엄 코리아 개관 이후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리빙 뮤지엄이 안전하게 성장하면 정신병원과 지역사회를 이어주는 일종의 ‘다리(Bridge)’가 될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예술을 좋아하듯이 머지않아 지역주민에게도 리빙 뮤지엄을 오픈해 자연스럽게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게 하고 싶다. 리빙 뮤지엄이 정신병원 자체의 문화를 바꾸고 지역사회를 이어주고 편견을 없애주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머지않아 회복된 정신질환자가 흰 가운을 입고 열쇠를 들고 가서 동료전문가로서 재활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그 날이 오지 않을까.

*김성수 디렉터는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Essex대학원에서 문학 석사, 정신분석학을 전공한 정신과 전문의다. 2004년부터 용인정신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 회복지원부장과 낮병원 해뜰날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다.

양금덕 기자  truei@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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