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과학대 보건의료산업학과 이평수 교수

의료계를 제외하고는 비급여가 규제(통제)되어야 한다는 데 이의가 없는 것 같다. 비급여의 부정적인 면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비급여에 대한 시각은 다양하다. 건강보험제도 측면에서는 보장성의 저해 요인이고, 상업보험인 실손보험 측면에서는 보험사의 수익성 악화 요인인 반면, 의료기관은 의료의 질 향상과 수익성 확보를 위한 수단이다. 비급여는 왜 규제돼야 하고, 당사자 간의 갈등을 해결할 방안은 없는 것일까.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료행위와 약품 등 의료용 물품이다. 현 비급여는 몇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안전성과 효과성은 인정되나 경제성이 미흡한 경우로 로봇수술, 캡슐내시경 및 고가항암제 등이다. 둘째는 안전성과 효과성도 인정되고 경제성도 인정되나 건강보험재정의 한계로 인한 것으로 초음파 등이다. 셋째는 의료행위에서 부수(파생)되는 것으로 진단서, 병실료 차액과 선택진료비 등이다. 넷째는 급여에 속하나 횟수나 사용량의 제한으로 초과분을 보험적용에서 배제하는 임의비급여이다.

규제의 명분은 시장이라는 경쟁으로부터 국민의 보호이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규제하여야 하는가. 현재 약품과 진료재료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품목 중 급여품목을 목록으로 제시해 급여대상이 명백해서 다툼이 적은 편이다. 의료행위의 경우는 어떤 행위가 의료행위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구분(분류)이 없고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목록만 제시돼 있다. 따라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않는 의료행위는 어떤 행위가 의료행위로 분류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따라서 비급여 여부 이전에 의료행위의 적정성 여부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비급여의 관리(규제)를 위해서는 우선 의료행위의 정의와 목록 그리고 약품 등 의료재료의 목록이 명시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다음으로 이 목록에 대하여 급여와 비급여를 가르는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 이 기준에 따라 국민의 건강보장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행위와 물품은 모두 급여로 분류돼야 한다. 즉, 급여 대상만으로 국민들에게 적정 의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비급여는 그 사유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해당 행위나 물품이 없어도 국민 건강보장에 지장이 없는 경제적이지 못한 경우이다. 의료행위나 의료용 물품으로 인정하거나 허가하되, 경제적이지 못하여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병실료 차액이나 선택진료비 등 제도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적정 원칙과 수준의 도출이 필요하다. 즉, 국민들의 병실이나 의사의 선택이 제한당하지 않는 범위에서 비급여를 인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단서 등 부수적인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상한선(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면허자로서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비급여의 규제는 그 대상과 기준이 명백해야 한다. 대상은 전체 의료행위의 목록과 의료용 물품 목록의 설정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기준은 국민건강을 위해 필요한 부분은 급여로 분류해야 한다. 급여와 비급여의 구분 기준을 명백히 할 경우 급여는 당연히 규제의 대상이 돼하나, 비급여가 규제의 대상이어야 할 것인지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국민의 건강권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지불 능력 있는 자의 선택과 의료기관의 수익성을 제한할 이유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비급여를 정비하기 위해서 의료계는 전문가로서 의료행위를 분류하고 정의해야 한다. 특정 행위가 안전하고 효과적인 의료행위인지 여부와 그 행위를 위한 인적, 물적 및 상황적 여건을 공식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정부는 제시된 의료행위 중 국민건강에 반드시 필요한 행위는 급여대상을 선정하고, 나머지는 비급여로 하되 그 사유를 명백히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비급여는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당사자 간 협의와 협상을 동반하는 사적자치의 대상이 돼야 한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