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토론회서 보장성 강화 정책 비효율성 도마…재평가 통한 급여목록 재정비 요구 봇물

정부가 20조원이라는 사상 최대치의 건강보험 재정흑자를 쌓아놓고 정작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아닌 금융 투자나 정부지원금 축소 등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날선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을 운영하는 보건복지부가 기획재정부 등의 경제논리에 휩쓸려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25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는 ‘건강보험 20조 재정흑자와 거버넌스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조합과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국민의당 김광수·정의당 윤소하 의원 등 행사를 주최한 이들은 한 목소리로 건보재정 흑자에 반해 제자리 걸음인 건보 보장률을 지적하며, 공보험으로서의 건보 존립자체를 우려했다.

특히 현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강화 정책의 한계와 비급여 진료비에 대한 관리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


먼저 서울대학교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20조원 건강보험 흑자의 원인 및 보장성 강화방안’에 대한 주제발표에서 “정부가 2008년부터 연평균 6,000억원의 재정을 들여 항목별로 급여를 확대했지만 보장성을 강화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면서 “그만큼 비급여 진료비가 빨리 증가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에, 한쪽에서는 보장성을 늘리고 다른 쪽에서는 비급여를 늘려 결국 환자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차이가 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부터 보장성 강화 정책이 바뀌어 선별급여는 추진되고 있지만 새로은 비급여를 억제하지는 못했다”면서 “2014년 자료를 보면 2012년에 비해 4대 중증질환에서 병실차액과 선택진료비의 비용은 줄어든 반면 약과 처치-수술의 비용이 늘었고, 전체 질환에서는 검사가 늘었다. 때문에 4대 중증질환 지원의 수혜가 고소득층에게 돌아간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김윤 교수는 보장성강화를 위해서는 ▲모든 비급여를 포함하는 신포괄수가제를 시행하고 ▲의학적 비급여의 급여화 ▲본인부담 상한제 차등적용 ▲혼합 진료 금지 및 신의료기술 시행 의료기관 지정 ▲1차 의료 보장성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항목별 급여 개선 차원이 아닌 의료체계를 개혁함과 동시에 보장성을 강화할 수 있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윤 교수는 “현재 신포괄수가제에서 커버하지 않는 비급여도 포괄수가로 하고 그 수가를 높여 주면 의료기관에서는 굳이 비급여진료를 늘려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면서 “비급여로 생기는 수익까지 고려한 적정 수가를 만들고, 신의료기술에 대한 제한된 수가를 보전하면 의료계의 반대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는 4대 중증질환에만 초점을 두고 비급여를 급여로 인정하고 있지만 과거에 돈이 없어 (법정)비급여로 둔 CT, MRI를 포함한 약, 재료, 행위 등 필수 의료를 급여화 해야 한다. 대신 신의료기술은 선별급여를 적용해 신의료기술 시술기관 승인제를 적용해 임의비급여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비급여의 성격을 구분해 필수 비급여와 호화 비급여(성형 및 미용 등)를 구분하고, 일본처럼 비급여 진료시 급여 진료를 청구할 수 없는 혼합진료 금지를 적용해야한다”면서 “1차 의료에서 초기 치료나 치료계획 수립, 교육 등의 수가를 확대하고 질 가산금, 진료비 절감시 이익을 공유하는 제도를 통해 1차 의료를 활성화 해야 한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보장성 강화가 잘되려면 충분한 표본을 갖고 6개월 단위 검토를 통해 현재 비급여 가격이 얼마이고 실제 얼마만큼의 비급여를 제공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 있어야한다”면서 “현 정부가 3대 비급여를 해소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의학적 비급여 해소에는 한계가 있었다. 건보 누적 흑자를 이 문제 해결에 써야하고 1차 의료강화와 지불체계 개선을 통해 의료체계의 구조적 모순을 지금 해결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형준 건보 위에 군림하는 기재부, 월권이다

특히 정부가 내야할 지원금은 안내면서 건보의 보장성 부족을 민간보험으로 대체하려는 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무상의료운동본부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건강보험 누적흑자 운용의 문제점과 거버넌스 문제’라는 주제발표에서 “지난 3월 기획재정부가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를 출범시켜 사회보험의 수장을 불러모은 것은 월권”이라고 지적했다.

건보 20조 흑자에 대해서는 “제공해야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거나, 본인부담금을 높여 돈을 남겼을 가능성, 건보료를 많이 걷어 돈을 남겼거나 의료공급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아서 돈이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모든 의료복지의 긴축으로, 많이 쥐어짜서 돈이 남은 것”이라고 했다.

또한 “재활환자 입원을 3개월까지 인정했었는데 최근 1개월만으로도 삭감하더라. 복지부는 장기입원을 막는다고 하지만 이로 인해 절약되는 금액이 100억~200억원이고, 이 또한 기재부에서 하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복지부가 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기재부가 짜라고 해서 남은 20조원을 투자하는데 쓰고 있다. 건보 재정은 투자상품도 아닌데 수익률을 보고 있다. 실제 국회 요청자료를 보면 공단이 15조원의 흑자를 2~3년짜리 국고채에 투자하고 있었고 그 결정도 공단이 입찰한 컨설팅 회사의 의견을 따랐다”며 “보장성 강화를 하나 늘리려고 하면 건정심을 하고 시민단체가 시위까지 하는데 투자는 컨설팅 회사를 통했다는게 황당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가 지급해야할 의무가 있는 국고 지원은 하지 않으면서 마치 선진국처럼 재정의 40%가 국고인것처럼 마음대로 사용하려 한다고 꼬집었다.

정 위원장은 “현재 건보 총 재정에서 국고 비율은 13% 밖에 안된다. 정부가 돈을 내지않아서인데 법조항을 들어 준비금으로 두려고 한다. 준비금은 적어도 보장성 강화에 써야하지만 올해 처음 국고지원이 줄어드는 기이한 현상이 생겼다”면서 “정부가 누적적자라는 공포감을 주면서 의료비 절감과 의료기관 쥐어짜기로 흑자를 만들어 국고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건보를 고사시키고, 국민 80%가 가입한 민간보험으로 이를 커버하는 기형적인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정부가 건보 흑자에 관여하고 싶으면 정부의 부담률을 더 높여야 한다. 또 부과체계 개편이라는 중요한 논의를 할때도 직장과 지역가입자의 형평성만 논의할 게 아니라 국고지원도 당연히 논의해야한다. 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국가의 부담도 의무다”라며 “흑자는 보장성 강화뿐만 아니라 공단 일산병원의 의료취약지 건설, 저소득층 건보료 인하 등 할게 많다”고 강조했다.




건보 흑자 20조원, 비정상거버넌스를 바꿔야

이에 대해 토론자로 참여한 민주노총 제갈현숙 정책연구원장도 동조하며 “건보 흑자 20조원을 투자에 쓰려면 적어도 건보 보장성이 OECD 기준 80% 이상 도달했을 때나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여전히 건보를 이용하지 못하거나 보험료를 체불하는 계층이 있는데 이를 간과한 채 투자를 한다는 게 기가 찰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대표도 “건보 흑자가 국민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서 “재원조달에서 쥐어짜고 보장성은 정작 목표보장률을 제시하지 않아 어느 정도 개선했는지 효과도 알 수 없다”며 보장성 강화에 대한 평가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비급여가 급여로 진입하면 퇴출할만한 기전이 없다. 건보 내에서 급여를 재평가해서 목록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민간의료보험에서 급여대상을 건강보험 비급여로 범위를 제한하는 등 민간의료보험도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현실적인 급여기준 개선을 위한 일정한 재정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 서인석 보험이사는 “보장성 강화로 비급여가 급여로 전환됐는데 비급여의 관행가보다 못한 수가가 나오면 1분도 안되는 진료를 하면서 행위량을 늘려 수입을 올리는 상황이 발생한다”면서 “의료서비스의 고유 가치가 진료가 아닌 검사와 수술로 바뀌면서 상급종합병원이나 종합병원처럼 고가의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진료로 진료의 문화가 바뀌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재활난민이라고 말하는 재활치료 환자의 퇴원문제나 재료대 3가지 이상 넘어가면 청구도 못하는 비현실적인 급여기준을 개선하는데 일정한 재정 투자를 해야 한다”면서 “비급여 문제도 모든 비급여를 통칭할 것이 아니라 필수의료의 비급여는 건보에서 확실하게 수가를 보전한 급여로 인정해주고 로봇수술이나 1인실 입원비 등 선택적 비급여를 구분해 보장해야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건보 흑자가 공급자에게 갈 돈이 덜가서인지 가입자가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못해서인지 등의 문제는 넌센스다”라며 “가입자와 공급자가 싸우는 패러다임에서 결국 좋은 것은 정부일 것이다. 적어도 의료비 지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급여화로 인한 비정상적인 행위 발생을 막고 진료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건강보험노동조합 이문희 정책위원장은 “보험자에 대한 비정상화”를 언급하며 “거버넌스 구조에서 보험자인 공단이 해줄 게 없다. 모든 결정권은 복지부에 있다. 건정심에서 가입자를 위해 보험자가 해줄 것은 그들의 대표성을 강화시키는 것이지만 정작 보험료를 결정하는 데에서는 가입자가 빠져있다. 가입자의 권리찾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건보 흑자에 대한 보장성 강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복지부 보험급여과 변루나 사무관은 “최근 5년간 건보 보장률이 상승한 결과가 서서히 나오고 있어 보장률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는 2014년 말에 시작된 과제가 많아 그 결과는 2년이 지난 2018년이 돼야 제대로된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변 사무관은 “보험자의 건보 보장 목표치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할 것이며 4대 중증질환 이외의 비용이 많이 드는 비급여는 추가적으로 보장을 강화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 “8월부터 비급여 관리 TF를 운영해 비급여 가격 공개 근거에 따른 하위법령 개정을 추진중이고 비급여 명칭, 코드 표준화 등을 위한 연구용역이 끝나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날 토론회에서 건보 재정이 20조원의 흑자를 기록한 데에 대한 이유를 묻는 김연명 교수(중앙대 사회복지학과)의 질문에는 이렇다할 답을 하지 못했다.

변루나 사무관은 “내부적으로는 재정이 누적되는 이유나 요인, 내용, 사용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고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면서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그러자 김윤 교수는 “지금의 거버넌스에는 복지부가 힘이 없고 기재부가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면서 “정부가 통제하지 않은 비급여가 늘고 있는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대책이 무엇인지를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 눈을 감으면 안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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