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편의 봐준 탓에 돌아온 건 '법을 어겼다'는 오명…'정신과 봉직의협회' 구성 통해 정면돌파

정신질환자의 입·퇴원 당일 서류가 미비했다는 이유로 무더기로 검찰에 기소당한 봉직의들이 결국 반발하고 나섰다.

환자 및 보호자들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서류 제출 시기를 좀 미뤄주고 수일 내 자료를 구비하도록 했음에도, 더욱이 서류 미비로 인한 법적 책임은 봉직의가 아닌 정신의료기관장에게 있음에도 검찰이 봉직의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검찰로부터 약식기소 된 31명의 정신과 봉직의들은 공동대응팀을 꾸려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봉직의 비상대책위원회는 24일 “입·퇴원 등 관련 서류를 확인하는 절차와 책임은 병원장에게 있음에도 그 혐의를 개인 정신과 전문의에게 씌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봉직의들이 법적으로 공동대응하기로 하고 비대위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비대위는 특히 오는 29일 광주에서 열리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를 창립하고 이번 검찰조사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대응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의정부지방검찰청이 공개한 A병원의 '퇴원명령 불이행(정신보건법위반)' 증거 자료.



서류미비하면 입원시키지도 말고, 갈 데 없어도 퇴원시켜라?

지난달 29일 의정부지방검찰청은 보호의무자 동의로 강제 입원한 정신질환자들에게 비대면진료 입원, 퇴원명령 불이행, 관련 서류 미구비 입원 등을 했다는 이유로 경기 북부 일대 16개 정신의료기관의 운영자 및 정신과 전문의 67명을 적발했다.

치료가 끝난 정신병 환자를 일부러 퇴원시키지 않거나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강제 입원시켰다며 정신보건법 위반죄로 53명을 기소(불구속 공판 6명, 약식기소 47명)하고, 13명은 기소유예, 1명은 기소 중지했다.

검찰은 "다수의 정신의료기관들이 보호의무자 증빙서류는 입원 후 7일 이내 제출받으면 된다거나 재입원은 대면진료가 불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등 관련 법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퇴원명령 이후 최장 273일까지 퇴원이 지연됐음에도 불구하고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퇴원명령 관련 중요서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등 관할 보건소에서도 정신의료기관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점이 발견돼 기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정신의료기관 및 정신과 의사들은 왜 입원하는 날 서류가 미비함에도 입원결정을 내린 걸까.

그동안 상당수 정신의료기관들의 경우 입원 당일 필요한 서류를 다 제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경우, 통상 1주일 이내 제출토록 했다.

보호자가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환자를 병원에 데려오는 것도 어려운데 입원이 필요하다는 결정이 내려진 당일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서류까지 완벽하게 구비해오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적발된 경기 북부 일대 정신의료기관들의 경우에도 입원 당일 필요한 서류를 완비하지 못했을 때 1주일 가량의 시간을 주고 서류를 구비토록 했고, 이 기간 안에 서류를 완비해 놓은 사례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발단은 검찰이 의료현장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그 책임을 병원장이 아닌 봉직의에게 두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서류 미구비’를 이유로 약식기소를 당한 봉직의만 31명에 달한다.

신경정신의학회·의사회 "의료현실 무시한 처사"…제도 미비 보완 요구 방침

의료현실을 무시한 채 검찰의 무더기 기소로 봉직의들이 피해를 입자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까지 나서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학회와 의사회는 지난 20일 보도자료를 내고 “개인별로 기소 사안은 조금씩 다르지만, 검찰의 이번 기소는 법적 기준이 모호하고, 정신보건 현장의 여러 난제 속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정신의료기관과 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에 대한 과도한 처사”라고 유감을 표했다.

신경정신의학회 박종익 법제이사(국립춘천병원)는 “검찰은 법률적으로 입원 당일 필요한 서류를 다 갖춰야한다고 하지만 이는 현실적이지 않다”면서 “의료취약지의 경우 보호자가 병원을 찾아 환자를 데려오는 것도 어려운데 언제 가족관계증명서까지 다 가지고 올 수 있겠느냐. 따라서 대부분의 정신의료기관들은 행정적으로 1주일 내 필요한 서류를 보강하도록 해왔었다”고 설명했다.

박 이사는 “서류 미비도 억울한데 그 책임을 병원장이 아닌 봉직의에게 지게 한다는 것은 이중으로 억울한 일”이라며 “법률가 자문을 구해봤을 때도 무리한 기소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퇴원명령을 즉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수의 정신의료기관을 처벌하는 것도 문제라고 반발했다.

검찰은 기초정신보건심의위원회의 퇴원명령서를 송달받은 다음날부터 길게는 273일까지 정신질환자를 퇴원시키지 않았다며 최초 입원일부터 6개월 초과해 지연 퇴원시킨 경우 형사처벌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퇴원명령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거처할 곳이 없거나 보호자가 동행하지 않는 환자의 경우 무리하게 퇴원을 시킬 수는 없지 않냐는 지적이다.

박 이사는 “환자가 입원한 기간이 6개월이 되면 퇴원명령 심사청구를 하는데 퇴원 명령 이후 며칠간 병원에 더 입원하는 경우는 보호자가 오지 않아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보호자들이 많아서 생업을 뒤로하고 바로 오기 어려워 당장은 못 온다며 며칠 기다려달라고 하면 관행적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지 않냐”고 말했다.

또한 “심판위의 퇴원 결정이 났다고 해도 보호자 없이 환자를 퇴원시키면 이동 중 사고가 날까 걱정돼 입원을 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사고 등을) 신경은 쓰지 말고 심판위 결정을 따르라고 하는 (검찰의)말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엄동설한에 옷도 없이 거처가 없는 환자를 내보내란 말인가”라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이들 의료기관은 퇴원명령 불이행으로 인한 처벌 이외에 입원 기간 동안 청구한 요양급여비용도 환수, 부당청구로 행정조치를 받게 됐다.

박 이사는 “환자가 입원해 있는 기간에 제공된 식사 등의 비용을 급여비용으로 청구를 한 것인데, 이를 마치 부당하게 급여비를 청구하기 위해 퇴원을 안 시킨 것으로 보도돼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서 “입원한 환자에게 밥을 굶길 수 없는 노릇인데 이런 병원들이 허위청구로 행정처분을 받게 됐다”고 억울해했다.

이에 따라 학회와 의사회는 검찰의 무더기 적발로 선의의 피해를 입게 된 정신과 봉직의들의 행보를 지지하며, 이들의 법적 대응에 필요한 변호사 선임비용 지원을 위해 모금 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특히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정신보건법 등 제도적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에 명확한 기준을 수립해줄 것을 요구하고, 학회 차원에서도 행정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방침이다.

박 이사는 “봉직의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법적 대응을 한다고 하니 이들을 돕기 위해 모금 운동을 하려고 한다”면서 “학회 차원에서도 반박자료와 행정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는 한편, 그동안 관행적으로 해온 것을 이번 기회에 명확히 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모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는 그동안 정신의료기관에서 환자들의 편의를 봐주었던 관행이 문제가 된 것"이라면서도 "일부 부도덕한 행위를 한 정신의료기관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규정만 적용해 현실을 감안하지않고 처벌할 경우 앞으로는 피해를 보는 건 환자들이 될 것이다. 애매한 규정 때문에 환자들이 치료를 받을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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