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NHS 정신건강국 Tim Kendall 교수, 지역단위 조기관리 시스템 중요성 강조

전 세계적으로 정신건강서비스에 대한 국가차원의 지원과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 호주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개선과 정부 지원을 위해 기초연구와 R&D투자를 강화했고, 미국은 환자단체 등 시민단체가 나서서 관련 제도 개선 등 국가를 움직이고 있다. 특히 영국은 정신질환자 케어를 지역단체 차원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5개년 정신보건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월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국민 정신건강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조기 관리에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3일 국립정신건강센터가 개원 1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국제심포지엄에서 영국 NHS(National Health Service) 정신건강국 Tim Kendall 교수는 기조강연을 통해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영국의 국립정신건강센터(NCCMH, National Collaborating Centre for Mental Health)를 15년간 이끌고, 지난 4월 NHS 정신건강국의 National Clinical Director로 임명됐다.

인격장애 등 정신보건 분야의 주요 30개 NICE(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and Care Excellence)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으며, 현재 여러 국가에서 사용하는데 기여하는 등 NCCMH와 NICE, OECD 등에서 정신보건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본지와 만난 Tim Kendall 교수는 “1930년대 흑인이 차별을 받았던 것처럼 오늘날 정신질환자가 차별을 받고 있다”며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보다 오히려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차원의 보호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최근 한국에서는 조현병 환자가 ‘묻지마’ 살인사건을 저지른 사례가 발생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은 좀처럼 사라지기가 어려운 것 같다.

정신질환자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영국에서는 정신질환자에 의한 폭행이 발생하면 뉴스 등에 크게 보도된다. 하지만 정신건강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같은 정신질환자의 범죄는 실제로 일반 범죄와 비교했을 때 많은 편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1년에 60명에서 100명의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는데 일반 범죄 발생률보다도 적은 편이다. 굳이 정신질환자들의 범죄가 두드러질 이유가 없지만 이슈화 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한국은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의료기관을 이용하기 꺼려한다. 정신질환자의 사회활동에도 제한이 있다. 일종의 차별이 사라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영국에서는 정신질환자를 차별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적발이 된다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폭행이나 직장 내 승진에 제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 등 장애인 차별처럼 정신질환자를 차별하면 처벌을 받도록 하고 있다.
특히 정신건강에 대한 캠페인을 통해 차별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이를 테면, 영국 왕족들이 가족의 섭식장애에 대한 경험을 대중 앞에서 말하기도 한다. 이 캠페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언제나 힘이 들 때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NHS에서는 정신보건서비스의 어떤 점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가. 최근에 5개년 계획을 발표했는데 핵심 내용이 궁금하다.

영국도 정신질환자의 병원 의존율이 아직까지 높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신질환과 신체 건강을 따로 분리하는 것이 아닌 하나로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

정신건강은 소아들에게 많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정신질환 문제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아직도 소아정신질환자들의 75%가 정신건강서비스를 받지 못하는데 우울증의 경우 과거 경험이 있다면 향후 재발 가능성이 높다. 산모들 또한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가 있으면 15년 후에 그 증상이 두드러지는 만큼 이들에 대한 정신건강서비스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이처럼 소아청소년이나 산모들의 정신질환을 조기에 파악해 NICE 가이드라인(Tim Kendall 교수는 2002년 조현병에 대한 NICE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으며 이후 소아, 정신, 청소년 등의 정신보건 주요 분야의 30개의 NICE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도 했다)에 따라 치료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외 정신질환자의 치료 대기 시간을 줄이는 등 쉽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3년 전 한국에 왔을 때도 OECD 차원에서 한국이 정신건강서비스를 1차 의료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정신질환도 심장질환이나 암과 같다고 생각하여 접근한다면 많은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정신건강서비스를 1차 의료에서도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말하는가.

영국에는 ‘지역정신건강팀’을 만들어 초기 정신질환자들이 장기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지역단위에서 1차 치료를 받고 이후 필요한 치료를 단계적으로 받도록 하는 것이다. 비용은 국가에서 지역별 상황에 따라 지원하고 있다.

지역정신건강팀은 성격장애, 정신증, 그 외 정신질환 등 크게 3가지 그룹으로 구성돼 1차 케어와 재난, 응급, 성격장애 등에 대비하는데, 지역별로 환자의 구성이나 규모 등에 따라 팀의 인원, 예산 등이 다르다. 사실 정신건강은 사회적 낙인 때문에 예산 집행이 잘 안되는 부분이 있는데 영국은 예산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투명하게 공개해 낙인을 극복하고, 지역 재량권으로 예산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의 정신건강서비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정신질환자들이 조기에 치료를 받아 스스로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병원이 아닌 자택에서 치료를 받고, 스스로 운동을 하는 등 자기관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한 경찰과 사법부, 의료, 응급, 정신건강의학 등 다같이 협력해서 지역 내 그룹을 만들어 그들을 케어해 줘야한다. 응급실 케어 시스템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영국은 의료기관과의 거리가 멀어 입원이나 치료를 받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환자가 전화를 하면 신체질환인지 정신질환인지를 분류해서 위기대응팀이 즉각 출동해 처치를 한다. 이때 정신질환자의 범죄 등으로 인해 경찰에 수용되지 않도록 협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경찰도 환자를 이동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고 병원에 정신건강관련 위기대응팀이 상주해 조기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향후에 영국의 모든 병원에 이러한 응급실 케어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한국도 최근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정신보건법 개정 등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 정신의학과 의사들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일단 사람들이 병원을 가기 편하도록 해줘야 한다. 직장 내 직원을 대상으로도 정신질환에 대한 교육을 잘해야 한다. 영국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직장 내 정신질환자 등에게 상담을 한다. 행복한 일 환경은 정신질환자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의사들이 지역 내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을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이 나아질 수 있도록 역할을 더 하길 바란다.

또 일반인들에게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정신질환을 포함한 합병증이 있다면 더 치료를 해야 한다. 정신질환을 부수적인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치료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정신질환 치료부터 해결하고 신체질환을 치료해야한다.
실제로 당뇨병과 우울증을 동반한 경우 당뇨치료비용이 50%가 더 늘어나는데 비해 3가지의 만성질환을 가진 이가 우울증부터 치료하면 치료비용의 45%가 절감한다는 보고도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새롭게 문을 연 지 1년이 됐다. 과거에도 여러 번 방문했던 적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센터의 변화에 대해 한말씀 부탁드린다.

(한국의 정신건강서비스가) 터닝 포인트의 시점에 있다는 것에 희망을 가진다. 2013년부터 한국에 3번 왔다. 한국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2013년에는 그러한 점을 느끼지 못하고 영국으로 돌아갔는데 이제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특히 한국은 문화적으로 열심히 일을 하는 반면 휴식 등 편하게 사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살률이 높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들이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다는 것일 텐데 미디어가 정신건강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해소시켜줘야 한다. 긍정적인 미디어 보도가 이어지면 반대로 정부가 정신질환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만큼 재정적인 지원도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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