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출두요! 수많은 장정이 함께 외치며 들어오는 소리에 강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개벽하는 듯하였다.”

조선시대 대하소설 <암행어사의 행적>의 한 구절이다. 당시 왕명을 받은 사신이 암행을 하며 지방관의 공적과 비리를 탐문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는 일을 했다.

오늘날에는 감사원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공공기관을 비롯한 민간 기업에서도 저마다 암행어사가 있다. 내부 감사가 그것이다. 자체감사를 통해 업무가 잘 수행되는지, 회계 관리는 잘되는지 내부를 통제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도 마찬가지다. 한해 57조원의 예산을 운용하며 5,056만명의 가입자를 관리하는 공단의 감사실은 건강보험의 전권을 수행하는 공단의 내부 사찰기관이다.

그런데 공단의 내부감사 보고서를 보고 있으면 답답한 마음만 든다. 한 달에 많게는 3번까지도 감사를 하는데도 개선은커녕 오히려 감싸기 식에 그치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다음에 잘하면 된다며 달래주는 듯한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아마도 공단이 해야 할 기본 업무조차 제대로 못한다는 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체납보험료를 안내하지 않거나, 고지서만 보내놓고 전화로 징수독려를 했다고 서류를 꾸미고, 소송까지 해서 이겼는데 정작 강제집행을 안한 경우도 있다.

심지어 이번 감사에서는 고액체납자의 부동산 압류 등 강제집행을 하지 않아서 소유권이 이전된 경우도 있었다. 더는 채권을 확보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발견한 감사실은 “압류 가능한 물건을 보유한 체납사업장은 채권을 확보하라”, “향후 동일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도·관리하라”고 통보하고 말았다.

물론 한두 번의 실수라면 직원들을 징계하는 것만이 해답은 아닐 수 있다. 1만3,000명의 거대 조직에서 이런 일은 다른 기관에 비해 더 많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전체 인원대비 비율을 따지면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체납관리 부실은 한두 지사에 국한해 한두 번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수년전부터 반복되고 있다. 감사실이 똑같은 사례를 발견하고, 똑같이 처분하고,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면 감사 자체의 의미가 무색할 뿐이다.

오히려 다년간의 감사를 통해 고질적인 체납관리 부실문제가 발생한다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내부적으로 직원들 관리가 안되면 차라리 해당업무의 인력을 줄이고 전산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낫다. 1조원의 인건비를 들여 공단 본연의 업무인 보험료 관리를 못한다면 그 돈을 떼서 관리프로그램 개발에 투자하는 게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이다.

아니면 외부 감사를 더 강화해서 개선을 하지 못하는 감사실부터,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도 고액체납자가 버젓이 보험혜택을 받는 반면 보험료 낼 돈이 없어 아픈 것을 참는 국민이 있다. 새는 돈 막고, 백성의 가려움을 긁어주게 암행어사의 진면모가 발휘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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