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형곤의 심장압박

아주대병원의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가 13일 공식 개소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아주대병원에는 지난 2011년 초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던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살린 이국종 교수가 근무한다. 그런 병원이 이제야 권역외상센터가 됐다는 것이 사뭇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내가 이국종 교수를 처음 본 것은 2000년 여름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펠로우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학회의 잡무는 펠로우 몫이었고 나 역시 대한외상학회 실무를 맡고 있었다.


학회에서 주관하는 전문외상처치술 연수강좌를 준비하던 중 당시 아주대병원 펠로우였던 이국종 교수를 만났다. 외과 중에서도 세부전공으로 외상을 택한 그는 시쳇말로 ‘똘끼’ 충만한 칼잡이 같았다. 그는 의사로서, 특히 칼잡이로서의 자존심이 컸고, 그가 가진 환자를 위한 원칙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가진 원칙은 환자를 살리는 것이 의사의 의무이기 때문에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앞뒤 재지 않고 뭐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외상외과는, 지금도 그렇지만 외과 의사들에게 3D 업종으로 취급된다. 물론 거의 모든 외과 분야가 밤샘 수술과 응급상황에 익숙하겠지만 특히 그중에서 외상외과는 개인적인 희생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다양한 외상환자들이 응급실을 들어오고 그런 환자는 제대로 된 외상외과 의사의 처치를 받아야만 생명을 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숭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인적인 희생이 따른다, 한마디로 의사의 인생이 피폐(?)해진다는 이야기이다.

솔직히 나는 그의 열정이 참으로 대단하지만 나이가 먹으면 시들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는 외상외과를 제대로 배우려고 미국과 영국에 각각 한 차례씩 장기 연수를 다녀왔고 그 후로 중증 외상환자를 보면서 그의 신념을 계속 지켜왔다. 또한 의협 일을 하면서 몇 번 만났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똘끼가 충만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커다란 결례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기존의 체계나 습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책에 적힌 원칙대로 실천하려고 하는 그의 신념이 내가, 아니 일반적인 의사들이 할 수 없을 것 같기에 그리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던 그가 우여곡절 끝에 그토록 바라던 외상센터를 이제 이루었다. 그가 바랐던 것은 하나의 환자라도 살리 수 있도록 보다 효율적인 외상환자치료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본인의 희생은 기본적으로 하고 말이다.

내가 아는 이 교수는 센터를 만들었다고, 센터장이라고, 매스컴에 얼굴 내밀며 수술 아닌 다른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이전과 똑같이 피가 철철 나는 환자를 수술실로 끌고 들어가 밤새 수술하고 중환자실에서 밤새 피장사를 할 것이다.

의료정치판에서 거의 반 양아치가 되어버린 나로서는 초심을 잃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향해 가고 있는 그에게 진정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이러한 똘끼 충만한 의사가 많을수록 환자는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정부는 명심하고 그에 걸맞은 법적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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