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부터 퇴원까지 심사만 수차례…“실현 가능한지 의문”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 국회통과와 ‘강남역 살인사건’.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신질환자 입원 진료에 대한 정부 정책이 여론에 편승해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제입원 요건과 절차를 강화한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일주일 만에 정부·여당이 모여 조현병 환자에 대한 행정입원명령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논의했다.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된 지 일주일 만에 정부·여당의 논의가 그 반대 방향으로 흐른 데는 조현병이 원인으로 지목된 ‘강남역 살인사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를 임상 현장에 적용해야 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계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인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에 대한 후속조치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정신질환자 장기 입원 까다로워진다

지난 5월 개정·공포된 정신건강증진법은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정부)과 ‘정신장애인 복지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김춘진 의원) 등 4개 법안이 병합심의된 것으로 1년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5월 30일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국회 법안 심의 단계에서부터 정신건강의학계로부터 현실성이 떨어지는 졸속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강제입원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한 진단입원제도와 외부심사제도 등으로 인해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개정된 법은 입원 필요성과 자·타해 위험성이 있어야만 강제입원(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시킬 수 있도록 요건을 강화했다. 특히 2주간 기간을 정해 입원을 한 후 입원치료 지속 여부를 결정하려면 소속이 다른 정신과 전문의 2명 이상이 일치된 소견을 보여야 한다. 입원 기간도 최초 입원을 한 날부터 3개월 이내로 제한해 기존보다 3개월 단축했다.

또한 최초 입원 후 1개월 내 국립병원 등에 설치된 입원적합성심사위에서 입원 적합성을 심사해 입원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입원 적합성을 심사하기 위해 국립정신병원 등에 설치하는 입원적합성심사위는 위원장을 포함해 정신과 전문의, 판·검사 또는 변호사 등 10~30명 이내로 구성된다.

퇴원 여부는 별도 설치하는 ‘정신건강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해 결정한다. 전국 시·도 산하에 설치되는 광역정신건강심의위는 정신건강증진시설에 대한 감독과 재심사 청구 등을 맡으며 시·군·구 산하 기초정신건강심의위는 ▲입원 등 기간 연장 ▲퇴원 또는 처우 개선 ▲외래치료 명령 등을 심사한다. 광역정신건강심의위는 정신과 전문의, 판·검사 등이 포함된 10~20명 이내로, 기초정신건강심의위는 6~12명 이내로 구성된다.

개정된 법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의를 축소하기도 했다. ‘정신병·인격장애·알코올 및 약물중독 기타 비정신병적정신장애를 가진 자’라고 정의하던 것을 ‘망상, 환각, 사고나 기분 장애 등으로 인해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으로 국한한 것이다.

“임상현상 무시한 법, 답답하다”

이같이 개정된 법에 대해 의료계는 임상 현장을 무시한 내용이 많아 혼란만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전국에 130개 이상 존재하는 법원조차 신속성과 접근가능성이 문제점을 제기되는 현실에서 전국적으로 5개에 불과한 국립정신병원이 주관이 돼 입원적합성심사위를 설치하고 연간 수십만건에 달하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의 적합성을 판단한다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며 관련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학회와 의사회는 하위법령을 통해 문제점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보건복지부와 논의를 시작했다.

신경정신의학회 정한용 이사장(순천향대부천병원)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얼마나 보완할 수 있을지 답답하다”며 “개정된 법으로 인해 바뀌는 제도들이 임상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의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신경정신의학회 한창수 홍보이사(고려대안산병원)는 “국회에서 법안을 심의하면서 전문가의 의견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임상 현장에서 실행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내용들도 있다”며 “정신질환자의 인권이나 제대로 치료되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게 전문가들”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조현병학회 이명수 홍보이사(용인정신병원)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절차가 까다롭고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지만 증상이 좋지 않은 환자를 보호의무자가 데리고 와서 입원시키는 데는 문제없을 것”이라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한다. 2주 만에 입원치료 지속 여부를 결정해야 하고 한 달 안에 입원 적합성 심사를 또 받아야 한다. 그 주체가 비슷하기 때문에 중복 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정신과의사회 노만희 회장은 “입원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거나 다른 정신과 전문의가 왕진을 오는 과정에 드는 추가 비용은 고민했는지 모르겠다”며 “입원적합성심사위를 설치할 수 있는 기관도 국립정신병원 등으로 한정하면 얼마 안되는데 수십만건에 달한다는 보호자에 의한 입원을 제대로 심사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노 회장은 “입원적합성심사위를 몇 개 기관에 얼마나 설치할지 모르겠지만 산골에 있는 정신병원들도 이용해야 하는데 그런 현실은 고려했는지 의문”이라며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도 있는데 그 권리를 오히려 헤칠 수도 있다. 강제입원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치료시기를 놓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바뀐 정책 방향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부 정책이 여론에 좌지우지 되고 있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강남역 살인사건 전후 달라진 정부 대응에서 ‘오락가락 정책’의 모습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원인이 조현병에 있다는 경찰 발표가 나오자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26일 당정협의를 갖고 조현병 환자에 대한 행정입원명령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일주일 전 정신보건법이 개정되면서 행정입원명령을 내릴 수 있는 주체에 경찰이 추가(제44조)돼 있는 상태다.

또한 조현병 환자들의 사회복귀 시설을 대폭 늘리고 이런 시설에서 제대로 약물을 투여하고 있는지를 관리·감독할 ‘인신보호관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날 당정협의에서는 조현병 환자 실태 파악을 위한 전수조사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같은 당정협의 결과에 모든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자 나흘 뒤(5월 30일) 경찰청은 당정협의보다 수위를 낮춘 대책을 발표했다. 경찰은 ‘흉기를 소지하거나 다른 사람을 지속적으로 폭행·협박하는 등 명백하고 긴급성이 인정되는 정신질환자’에 한해 보충적으로 정신병원 응급입원 요청 등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경찰관들에게 입원 요청 기준 등을 제시한 매뉴얼도 마련해 배포하기로 했다.

경찰이 이날 발표한 정신질환자 보호·관리강화 대책에는 당정협의에서 나왔던 조현병 환자 전수조사와 인신보호관제도는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가 정신질환자에 낙인 찍어”

당정협의와 경찰의 발표를 지켜본 전문가들은 법이 공포(5월 29일)되기도 전에 달라진 정부 정책 방향에 어이없어 했다. 정부가 나서서 정신질환자들에게 사회적인 낙인을 찍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정신과의사회 노만희 회장은 “정신보건법이 개정된 지 일주일 만에 그와 상반된 정책을 정부가 발표한 셈”이라며 “정책을 마련할 때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다보니 이런 황당하고 답답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노 회장은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의사들이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권리는 지켜줘야 한다”고 했다.

신경정신의학회 한창수 홍보이사는 “당정협의 등에서 나온 대책들은 개정된 정신보건법과 상충되는 내용들로 오히려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세계보건기구(WHO)도 환자 인권과 사회 안전 간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이사는 “당정협의와 경찰 발표를 보면서 돌연변이를 무조건 격리시키려했던 영화 ‘엑스맨1’이 떠올랐다”며 “발표를 위한 발표, 면피용 대책이 돼선 안된다. 전문가들과 꾸준히 논의해 환자와 사회의 안전을 모두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현병학회 이명수 홍보이사는 “경찰이 발표한 대책은 기존 법에도 명시돼 있던 내용들로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정신질환자가 발생하면 경찰이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오히려 현장에서는 경찰이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불만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는 “당정협의에서 나온 내용 중 문제되는 것은 인신보호관제와 조현병 환자 전수조사다. 모든 정신질환자들을 등록해서 관리하겠다는 것인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며 “정부가 나서서 정신질환자들에게 낙인을 제대로 찍으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있는데 거기에 정부가 기름을 부은 꼴”이라고도 했다.

9년째 동결인 의료급여 외래 진료비

정신질환자들의 입원 문제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제대로 치료 받을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저소득층인 의료급여 정신질환자의 경우 건강보험에 비해 수가가 너무 낮게 책정돼 있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의료급여 환자의 1일 정신과 외래 진료비는 2,770원(정액 수가)으로, 건강보험 환자의 10% 수준이다. 지난 9년 동안 한번도 인상되지 않았다. 외래 진료비보다 입원 진료비가 상대적으로 높지만 의료급여는 건강보험의 70% 정도 밖에 안된다. 이 때문에 의료급여 정신질환자 10명은 지난해 12월 29일 현행 의료급여법이 환자들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현병학회 이명수 홍보이사는 “정신질환의 경우 건강보험과 의료급여 환자의 치료 수준이 다르다. 똑같은 질환인데도 건강보험 환자인지 의료급여 환자인지에 따라 수가가 다르기 때문”이라며 “정신질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는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한두번 입원하면 보호자들이 세대분리를 해서 정신장애 등록을 하는데 2급 이상 받으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버린다”며 “그렇게 의료급여 환자가 된다. 의료급여의 경우 수가가 낮기 때문에 좋은 약을 쓰고 싶어도 못쓰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불공평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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