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연 기자의 히포구라테스

당뇨병 치료제로 쓰이는 메트포르민과 글리벤클라마이드, 숯가루, 사용기간이 지난 한약재, 그리고 성분을 알 수 없는 원료들. 서울 강남 유명 한의원 등 3곳에서 판매해 온 한방 당뇨약에 들어간 것들이다. 이를 ‘순수 한방 당뇨약’으로 믿고 1개월분에 23만~35만원씩 주고 복용해 온 환자만 1만3,000여명에 달한다. 이 숯가루 한방 당뇨약은 지난 2005년부터 올해 1월까지 10여년 동안 한의원에서 ‘순수 한방 당뇨약’으로 둔갑해 당당하게 팔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겠지만 현재 우리나라 의료시스템 하에서는 가능하다. 현행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신고에 관한 규정’에 따라 동의보감 등 한약서에 수재된 처방 품목 등은 안전·유효성 심사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과 숯가루, 성분을 알 수 없는 원료 등을 섞은 가짜 약이 ‘순수 한방 당뇨약’으로 둔갑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한의사마다 처방이 다르고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를 공개하지 않는데도 오히려 ‘비방(祕方)’이라고 포장하는 현실도 문제다. 그러니 ‘골수를 보충하는 약’이나 소두증이나 뇌수종을 고치는 한약, 눈 피로 한방 안약 등이 안전성 유효성 검증 없이 환자들에게 처방되고 있는 것 아닌가.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구조의 위험성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또 다른 숯가루 한방 당뇨약이 존재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만 이를 걸러낼 장치는 전혀 없다.

지난 2월 한국을 방문했던 세계의사회 오트마 클로이버(Otmar Kloiber) 사무총장은 비방이 존재하고 한약에 대한 검증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한의원을 이용한 모든 사람들에게 ‘Good luck’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인데 어떤 성분이 얼마나 들었는지 모를뿐더러, 이마저도 표준화돼 있지 않다는 건 말이 안된다. 한국의 한의사들처럼 비방이 허용되는 시스템은 그 어떤 나라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상황인데 그 심각성을 우리 정부만 모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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