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가산제, 중증질환자와 난치성질환자 많이 찾는 3차 의료기관에 도입 돼야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임재준 교수가 서울대병원에서 15분 진료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사회적으로도 꽤 이슈가 됐다.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 대부분이 ‘3분 진료’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게 잘못됐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서울대병원 교수가 이를 깨기 위해 독특한 시도를 한다는 것은 참신하게 받아들여졌다.

상황을 임 교수에 한정하면 15분 진료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애초에 신규환자와 재진환자를 가리지 않고 토요일 격주로 진행했던 15분 진료는 임 교수를 찾는 전국의 신환으로 좁혀졌고, 요일도 토요일에서 목요일 오후(기존 외래가 없는 시간)로 옮겼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시작부터 공간과 직원을 배려해준 병원 측의 호의는 계속되고 있지만, 임 교수가 개인 시간을 내서 15분 진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3분 진료의 관행을 깨기 위해 1년 넘게 진행한 15분 진료는 사실상 의료계에 아무런 임팩트도 주지 못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교현 부연구위원은 1차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오래하면 수가를 더 주는 ‘시간가산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이를 통해 1차 의료기관의 진료기능을 강화해 질을 높이고 역할도 활성화하자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에서 3분 진료를 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임 교수는 이같은 주장에 대해 ‘전제부터 잘못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왜일까? 임 교수는 실제 진료시간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수가를 더 받아야 하는 것은 1차 의료기관이 아니라 3차 의료기관이며, 진료시간 가산제를 단순히 1차 의료기관 질 향상과 활성화를 위해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평원 연구엔 어떤 내용 담겼나


우선 심평원이 1차 의료기관 활성화 방안 중에서도 왜 시간가산제를 주장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80여쪽에 달하는 연구보고서에는 해외 각국의 진찰료 수가모델부터 시간가산제가 필요한 이유에 대한 설명까지 빼곡히 적혀 있다.

그 중 심평원이 언급한 진찰료 보상기준별 검토 결과를 살펴보면, 연구진은 진찰시간별 가산제(시간가산제)와 진찰강도별 가산제를 놓고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진찰강도별 진찰료의 제한점을 미국의 메디케어에서 찾았는데 ‘진찰료를 정확하게 청구하고 지급하기 위해 의료제공자와 진료비 심사기관이 지불해야 하는 행정비용이 높고, 청구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불필요한 진료정보가 의무기록에 포함돼 의무기록의 유용성이 감소하고, 실제 환자진찰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진찰강도별 진찰료 도입의 제한점으로 명시했다.

시간가산제의 경우도 ▲진찰의 강도를 고려하지 못함 ▲진찰업무를 지나치게 단순화 ▲비효율적인 진찰에 인센티브 제공 우려 ▲시간가산이 시간구간 별로 산정되는 경우 의도하지 않은 인센티브 발생 등을 단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진찰 업무량은 시간으로 가장 잘 평가할 수 있음 ▲시간은 1차 의료의사의 가장 중요한 자원 ▲진료강도는 진료시간에 반영될 수 있음 ▲충분한 진찰시간 없이는 진찰의 질 담보 제한 등을 진찰시간별 진찰료 도입 필요성의 근거로 들었다.

병상 없는 내과·가정의학과 등 대상

시간가산제를 시행할 수 있는 기관은 ‘병상이 없는 의원 가운데, 새로운 진찰료 수가모형이 제시하는 일정 기준을 충족하고 사업 참여 조건을 수용하는 의료제공자’로 명시했다.

더해 ‘전년도 진료비 중 진찰료 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고, 월평균 진찰 건수가 일정 수준 이상인 의료제공자(또는 그럴 의향이 있는 제공자)로 정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지난 2014년 내과, 가정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일반과의 진찰료 분율이 84%라고 덧붙였다.

시간에 따라 정확한 수가를 지급하기 위해 확인해야 할 부분은 ▲의무기록에 진찰시간 기재(전체 시간 또는 시작 및 종료시각), 심사기구는 의무기록 표본심사 시행 ▲진찰과 진찰 외 행위가 동시에 이뤄진 경우 진찰 외 행위 관련 시간 별도 기재 ▲시간가산코드 청구 시 세부산정 코드 신설 ▲비급여(행위, 약제, 치료재료) 시 또는 비급여 연계 시 시간가산 청구 제한 ▲일 최대 시간가산 횟수 제한 ▲월·연 기준, 총 요양급여비용 중 진찰료 분율 일정 수준 이상 등을 꼽았다.

특히 김 연구원은 “(시간가산제는) 의료제공자의 수용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 요인인 진료과목 차별, 수가 감소, 사업 미참여로 인한 손실 우려가 적은 반면, 환자-의사 간 치료적 관계 강화, 진료인원 예측으로 인한 의원 경영의 유연성 제고 등 의료제공자의 수용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 있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이에 따라 진찰 및 상담 중심의 일차의료를 제공할 의향이 있는 의료제공자는 수가모형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며 “다만 신규 진찰료 모형은 기존 의료체계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적 이익을 확보했던 의료제공자에게는 수용성이 낮은 모형일 수 있다. 의료제공자별로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수가모형 시범적용 시 이 부분은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시간가산제, 의원급에 적합할까

임재준 교수는 이같은 주장에 대해 ‘전제부터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애초에 진찰시간이 오래 걸리는 환자는 중증질환이나 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기 때문에, 시간가산제를 도입한다면 1차 의료기관이 아니라 3차 의료기관 도입을 목표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심평원 연구처럼 1차 의료기관의 질 향상이나 활성화라는 목표로 시간가산제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긴 시간 진료가 필요한 환자를 제대로 진료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제도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심평원 연구를 보면 1차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외래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는 게 중요한 환자가 어떤 환자인지 생각을 못하고 있다. 실제 진료시간이 많이 걸리는 환자는 경증질환자가 아니라 중증이나 난치성질환자다. 이런 환자들이 찾는 곳은 결국 대학병원이고 지금 절박하게 진료시간이 더 필요한 곳은 대학병원”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3차 의료기관에 시간가산제를 도입하는 대신 경증질환자가 외래 이용을 하지 못하게 제도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의료전달체계 개선에도 영향을 준다는 입장이다.

임 교수는 “3차 의료기관에서 중증과 난치성질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경증환자의 3차 의료기관 이용을 제한한다면 자연스럽게 경증환자들이 1차 의료기관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며 “그러면 1차 의료기관도 활성화되고 의료전달체계도 개선된다. 이런 탑다운 방식도 괜찮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3차 의료기관의 모든 외래를 시간가산제가 가능한 형태로 바꾸자는 것은 아니다. 시간가산제를 원하는 기관이 특정과에서 시행하면, 해당 과에 시간가산제를 적용하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며, 이를 확인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임 교수는 “일단 시범사업이 필요하다. 원하는 기관에서 특정과를 선택해 시간가산제를 해보고 일반 진찰료에 비해 얼마를 더 줘야 하는지, 방문 환자 풀은 어떻게 바뀌게 되는지, 의사들의 진료 양상은 어떻게 변화가 오는지 등을 봐야 한다”며 “사실 환자들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은 설명과 공감이다. 15분 동안 설명하면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돌아가는 분들이 많다. 이런 리퍼백 환자 수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3차 의료기관에 시간가산제를 도입해 15분 진료를 할 경우 경증환자를 1차 의료기관으로 보내는 효과도 있지만 소위 빅5로 대표되는 대형병원을 이곳저곳 다니는 환자들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원가도 시간가산제 현실성 비판

시간가산제가 실제 필요한 곳은 1차 의료기관이 아니라 3차 의료기관이라는 점은 비단 임 교수만의 생각은 아니다. 개원가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노만희 회장은 “3분이 짧다고 해서 늘리는 게 7분이라면 눈 가리고 아웅이다. 3분이든 7분이든 의사가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했으면 그건 수가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노 회장은 3분진료가 주로 문제가 되는 곳은 대형병원이라며, 임 교수와 비슷한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노 회장은 “(3분 진료가 문제가 되는 곳은) 주로 대형병원 문제 아닌가. 환자 진료체계를 바꿔서 대학병원 수익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며 “구조적으로 의사가 환자를 많이 보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시간만 정해놓고 의사가 알아서 하라고 하면 그건 못하는 것이다. 단순히 시간만 가산해 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복지부가 운영 중인 의료전달체계개선협의체에서도 시간가산제는 논의 주제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협의체 위원장인 차의과대학전문대학원 전병률 교수는 “협의체 논의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해) 진찰료를 시간대별로 차별화하자는 이야기는 없었다”며 “협의체에서 논의된 의견을 정리해 복지부에 제출하면 복지부에서 우선순위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3분 진료를 깨는 방안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여기저기서 단발적으로 각각의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메르스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의료전달체계 개선 목소리가 큰 지금이 어쩌면 3분 진료의 틀을 깰 수 있는 적기일 수 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는 복지부가 다시 한 번 의료계의 다양한 주장을 살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임 교수에 따르면, 그가 15분 진료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었지만 복지부 관계자 누구도 그에게 15분 진료가 어떤 형태로 진행되는지 묻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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