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없고 ‘워라벨’ 엉망, 법정 분쟁까지 ‘의사 몫’
정의철 진주제일병원장 “수술하기 무섭다고 한다”
외과학회 신응진 이사장 “CCTV 등 필수의료 지원 기피 가중”

30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파르나스에서 열린 ‘The 13th Korea Healthcare Congress 2022’(KHC 2022)의 ‘필수의료와 의료인 확보를 위한 대토론’에서는 필수의료인력 부족으로 인한 의료현장의 한숨이 깊었다(ⓒ청년의사).
30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파르나스에서 열린 ‘The 13th Korea Healthcare Congress 2022’(KHC 2022)의 ‘필수의료와 의료인 확보를 위한 대토론’에서는 필수의료인력 부족으로 인한 의료현장의 한숨이 깊었다(ⓒ청년의사).

진주에서 종합병원 중 유일하게 응급수술 등 필수의료를 제공하고 있는 진주제일병원이지만 의료진은 ‘번아웃’을 호소했다. ‘의료 인력 부족’ 문제가 되풀이 되면서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버티다 못한 의사들은 하나 둘 병원을 떠나고, 이들을 붙잡기 위해 제시한 ‘높은 연봉’은 병원 부담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의사 인력 구조도 고령화에 직면했다. 진주제일병원 외과 전문의 중 ‘막내’는 40대 초반이고, 입원전담전문의는 환갑이 내일 모레다. 젊은 의사 수급은 어려운데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며 언제까지 병원을 운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진주에서 필수의료를 담당하던 병원 3곳이 벌써 인력부족과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30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파르나스에서 열린 ‘The 13th Korea Healthcare Congress 2022’(KHC 2022)에서 진행된 ‘필수의료와 의료인 확보를 위한 대토론’는 의료현장의 한숨이 가득했다. 진주에서 24시간 응급수술이 가능한 곳은 진주제일병원이 유일하지만 이마저도 ‘아슬아슬’하다고 했다.

진주제일병원 정의철 원장은 “최근 주말 야간에 십이지장 궤양 천공 환자 2명을 응급수술했다. 수술이 밤을 지나 아침까지 이어져 의사 1명은 고스란히 일요일을 환자에게 써야 했고 다른 1명은 잠 한숨 못잔 채 월요일 외래진료를 해야 했다”며 “이렇게 일하다보니 번아웃이 온 의사들이 점점 병원을 떠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의료진 번아웃으로 진주제일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외과 전문의는 내년 1월이 되면 16명에서 12명으로 줄어든다. 젊은 의사들의 이탈을 막기 위한 자구책으로 각종 수당을 마련했지만 정부 지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의료인력 인건비 모두 지방병원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다.

진주제일병원 외과 전문의의 당직비는 전체 월급의 29.5%, 병동 당직비는 16.1%를 차지한다. 정부의 수가 지원 조차 받지 못하지만 진주제일병원이 환자 안전과 의료 질 향상을 위해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입원전담전문의 운영 비용은 연간 4억원을 넘었다.

정 원장은 “24시간 수술을 하기 위해 자구책으로 대우를 해주고 있다. 입원전담전문의 비용은 3차 병원까지는 수가가 있지만 2차 병원은 그조차 없는 상황이다. 정부 지원이 없어 오롯이 병원에서 부담하고 있다”며 “지방병원이라고 수가를 더 주는 것도 없다. 수가 보상이 안 되니 병원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정 원장은 “지방병원이다보니 절실한 게 너무 많다. 가장 중요한 게 인력수급이다. 단기적인 해결방법은 수가밖에 없다”며 “의료인력 인건비로 많은 부분이 지불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보상은 전무하다. 수가로 해결되지 않으면 의사들이 이탈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촘촘하게 나눠진 세부분과 시스템도 외과분야 인력수급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진주제일병원은 부산에서 수술할 의사를 찾지 못해 경남 진주까지 온 응급환자도 수술했다. 부산 뿐만 아니다. 전남 순천과 고흥에서도 환자들이 응급수술을 받기 위해 지역을 넘나들고 있다. 정 원장은 필수의료체계가 무너진 증거라고 지적했다.

정 원장은 “서브 스페셜화 돼 있는 시스템이 큰 문제”라며 “지방 A대학병원도 인력 수급이 안 되니 위장관 수술을 할 수 있는 스태프가 딱 1명 있다. 그 분야 환자가 아니면 수술할 의사가 없는 거다. 진주제일병원은 2차 병원이지만 모든 수술을 다 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 시켜 환자들이 이곳까지 와 수술을 받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지방은 이미 필수의료체계는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부가 이걸 왜 모르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법적 분쟁 두려워 수술이 두려운 외과 의사들 “보호장치 필요”

밤낮 없이 울리는 응급 콜로 환자 곁을 지켜야 하지만 자칫 의료분쟁으로 이어져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외과 의사들이 필수의료분야를 벗어나고 싶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워라벨’(일과 휴식의 균형)을 중시하는 젊은 의사일수록 기피 경향은 더 강했다.

더욱이 내년 9월 시행되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면허관리강화법’(의료법 개정안)도 외과 의사들을 위축시키는 원인으로 꼽혔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공개한 ‘의료행위 형벌화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8년까지 8년 동안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의사는 6,095명으로 연평균 762명에 달했다(관련기사: 매일 의사 2명씩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됐다).

이에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아직 수술실에 남아 있는' 외과 의사들의 바람이다.

정 원장은 “병원 내 외과 전공의들과 가진 심포지엄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외과 의사가 되려고 보니 수술이 무섭다고 한다”면서 “생명과 직결된 수술이다보니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이 있지 않고서는 못 하겠다고 이야기 한다”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 김상일 미래헬스케어위원장은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 문제가 심각하다.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직업에 대한 만족도나 안전성을 느끼는 것에 의사들이 동요하고 있다”며 “형사고발 된 의사들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하고 의사를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외과학회 신응진 이사장(순천향대부천병원장)은 “법적분쟁이 (인력 이탈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며 “젊은 의사일수록 그 경향은 더 크다. CCTV 설치 같은 모든 행동을 속박하게 하는 것들이 결국 필수지원과 지원 기피를 더 가중시킨다”고 했다.

신 이사장은 “우리나라 사회가 ‘주 5일제’로 전환된 지 오래지만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인들은 어쩔 수 없이 야간근무, 휴일근무까지 한다”며 “하지만 야간근무, 휴일근무에 대한 중복가산을 안 되다 보니 이에 대한 적정 보상은 없다. 이에 대한 보상 재원이 있다면 의료인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번 아웃으로 ‘지친 의사’이 향하는 ‘개원가’

번아웃으로 필수의료분야를 떠난 의사들이 선택한 곳은 다름아닌 ‘개원’이다.

김 위원장은 “중소병원은 필수의료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이곳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소진되서 개원가로 이탈하고 있다”며 “제 병원에서 근무했던 중환자의학과 전문의가 탈모 클리닉으로 나갔다. 중환자를 보다가 탈모 환자를 보러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장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응급의학과 의사들도 응급처치나 골절 등 다양하게 진료하는 365의원 개원을 많이 한다”며 “중소병원은 안 그래도 간호사, 의사 등 의료인력 확보가 어려운데 그런 면에서 너무 힘든 상황이다. 의사 증원을 아무리 한다고 해도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했다.

의료 수가를 요구하는 의사들을 ‘돈만 밝히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프레임 씌워 사명감만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의사들을 지치게 만드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로 인해 ‘비급여’ 시장이 탈출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 이사장은 “필수의료는 반드시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하려는 사람은 없다. 정부에서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그보다 사명감을 갖고 일해야 하는 의사를 강조하며 수가 얘길 하면 돈만 밝히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프레임을 씌우는 과정에서 필수의료과들이 소외당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이사장은 “의료가 틀 안에 갇혀 있다 보니 의사들이 비급여라는 틈을 찾아 몰리고 있다”며 “자본주의 국가에서 수가 등 경제적 이득이 뒷받침 돼야 한다. 지금 사명감만 강조해서는 절대 개선될 수 없다”고 했다.

政, 필수의료대책 올해 말 발표…‘의료전달체계·수가·인력’ 핵심

정부는 의료계와 논의를 통해 도출한 필수의료대책을 오는 12월 중으로 발표하고 추진할 방침이다. 필수의료대책의 큰 틀은 ▲지역 내 전달체계 ▲수가 ▲인력 등 3가지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차전경 보건의료정책과장은 “필수의료대책은 한 번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올해 안에 아주 급한 것들에 대한 필수의료대책은 나오게 될 것”이라며 “이후에도 논의를 계속해 나갈가면서 정책적인 노력을 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차 과장은 “그간 26개 학회와 간담회를 갖고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정부가 참여한 의·병·정 필수의료 살리기 협의체를 운영해 왔다”며 “의료에는 필수적이지 않은 게 없다. 정부 정책으로 지원해야 할 것에 대해 우선순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차 과장은 “필수의료대책은 크게 3가지다. 우선 지역 내 전달체계다. 질환이 발병했을 때 30분에서 2시간 내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을 상정하고 지역 내 의료전달체계가 어떻게 이뤄져야 빨리 치료 받을 수 있을지가 첫 번째”라며 “두 번째는 수가 문제다. 새 정부가 공공정책수가 타이틀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필수의료에 투자 하면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보상내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이어 “끝으로 인력이다. 기본적으로 현재 있는 인력들을 어떻게 해야 필수의료 쪽으로 유도할 수 있을지, 또 새롭게 나오는 인력들을 필수의료분야로 갈 수 있게 하느냐에 주안점을 갖고 추진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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