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감염관리 강화됐지만 저수가는 그대로
감염관리료 산정 기준에 ‘슬쩍’ 추가된 ‘환경관리’
“감염관리료 적정한 수준인지 재평가 필요”

2,890원. 감염관리 인력 기준 1등급인 상급종합병원이 입원 환자 1명당 받을 수 있는 하루 감염관리예방료다.

2,341원. 환자 1명이 하루 입원하는 동안 소독, 세척, 멸균에 필요한 소모품을 구입하는데 드는 최소 비용이다. 이 비용은 감염관리료에 반영돼 있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감염관리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가 지급하는 감염관리료는 의료 현장과 동떨어져 있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이 때문에 의료기관 내 감염관리를 강화하려면 감염관리료부터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병원협회가 30일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파르나스에서 개최한 ‘The 13th Korea Healthcare Congress 2022’(KHC 2022)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감염관리 수가 체계 개편’을 주제로 진행된 세션에 참석한 감염관리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

현재 의료기관들은 감염관리를 위해 감염관리실과 격리병실을 운영하고 선별검사를 하고 있다. 또 일회용 개인보호장비와 손소독제, 소독제와 멸균제 등 소모품도 주기적으로 구입한다. 하지만 이중 감염관리실과 격리실 운영비와 선별검사비 정도만 일부 보상되고 있다.

(왼쪽부터)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정선영 부회장과 엄중식 부회장, 이혁민 정책이사는 30일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파르나스에서 열린 ‘Korea Healthcare Congress 2022’(KHC 2022)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감염관리 수가 체계 개편’에 대해 논의했다(ⓒ청년의사).
(왼쪽부터)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정선영 부회장과 엄중식 부회장, 이혁민 정책이사는 30일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파르나스에서 열린 ‘Korea Healthcare Congress 2022’(KHC 2022)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감염관리 수가 체계 개편’에 대해 논의했다(ⓒ청년의사).

안 그래도 낮은 감염관리료에 ‘환경관리와 청소·소독’ 기준 추가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정선영 부회장(건양대 간호대학)은 지난 2021년 11월 발표된 ‘우리나라 병원의 소독, 세척, 멸균 등에 필요한 비용 조사 연구’ 결과와 의료기관에 지급된 연간 감염관리료, 전담 인력 인건비 등을 비교해 발표했다.

정 부회장에 따르면 600병상인 상급종합병원이 1등급 감염관리료 2,890원를 받으려면 최소 전담간호사 4명과 감염관리 의사 2명이 필요하다. 이 경우 1년 동안 받을 수 있는 감염관리료는 총 6억3,291만원이다. 반면 소독·세척·멸균에 드는 비용은 총 5억1,267만9,000원이다(환자 1인당 하루 2,341원 기준). 물론 소독·세척·멸균 비용은 수가에 반영되지 않아 모두 병원 측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지만 너무 낮게 책정된 감염관리료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게 정 부회장의 지적이다.

정 부회장은 “올해 감염관리료 산정 기준에 ‘환경관리 및 청소와 소독’이 슬쩍 들어갔다. 하지만 수가에는 반영되지 않았다”며 “소독·세척·멸균 비용만 놓고 봐도 연간 지급되는 감염관리료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필수 인력 인건비를 1인당 5,000만원으로 계산해도 (지급되는 감염관리료를) 훌쩍 넘긴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감염관리 수가 현실화 논의가 필요하다. 의료관련감염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운영하는데 시설과 구조 개선 등 시스템 변화를 위한 수가가 필요하고 감염관리 대상과 활동 증징에 따른 물품 비용 증가를 반영해야 한다”며 “2022년 이후 감염관리료 지급 조건에 추가된 환경관링 대한 수가 반영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의료기관은 의료관련감염예방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국가는 이를 지원하고 보상할 책무가 있다”고도 했다.

“감염관리료 적정한 수준인지 재평가 필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감염관리 요구도 높아진 만큼 기존 수가를 재평가해 적정 수가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의료관련감염학회 엄중식 부회장(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은 “처음 학회에서 제시한 감염관리료 수준은 환자 1인당 하루 재원 시 5,000원 정도였지만 결국 2분의 1 수준인 평균 2,600원 정도로 산정됐다”며 “지난 2015년 메르스(MERS) 유행에 이어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유행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발생했으므로 감염관리료가 적정한 수준인지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엄 부회장은 “손 위생, 개인보호구, 격리 등에 필요한 소모품과 일회용품 등 감염관리 물품 공급도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며 “요양병원은 감염관리료 지급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엄 부회장은 감염관리료가 감염관리 인프라 구축에 쓰일 수 있도록 모니터링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병원에 따라서는 감염관리료가 임상과 진료 실적으로 반영되고 감염관리 비용 보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며 “병원이 감염관리료 추계에 따라 감염관리 예산을 독립적으로 편성하고 집행하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감염관리에 참여하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감염관리료로 얻어지는 재원 분배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의료관련감염 유행 관리하도록 비용 보전해야”

감염관리 고도화 필요성도 제기됐다. 병원에서 발생하는 의료관련감염을 예방하고 감시하는 체계가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없다는 지적이다. 감염관리료 개선 논의에도 항생제 내성균 등 의료관련감염이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비용은 빠져 있다고 했다.

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이혁민 정책이사(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는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methicillin-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MRSA)’이나 반코마이신내성장알균(VRE), 카바페넴분해효소 장내세균(Carbapenemase-producing Enterobactericeae, CPE) 등이 병원 내에서 유행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정책이사는 “외국에서는 MRSA 등이 병원 내 유행하면 이를 관리하는 프로세스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관리하기 위한 수가가 없으니 관련 비용과 프로세스가 활성화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정책이사는 “MRSA 보균자가 2명 나오면 그 뒤에 12명의 보균자가 숨어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CPE도 마찬가지”라며 “의료관련감염을 관리하기 위한 진단검사가 필요하다. 검체는 무증상 보균자나 환경에서도 나올 수 있다. 배양이나 PCR 검사 등 선별검사와 환경 검사가 필요하다. 이런 부분에 대한 수가가 보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감염관리를 활성화하려면 수많은 비용을 생각해야 하지만 그중 일부만 보상되고 있다. 현 의료체계에서 산정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우리나라는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관리를 받고 그 안에서 행위별 수가로 강력한 제어를 받고 있다”며 “형태는 민간병원이지만 공공병원으로 운영되면서 정부가 컨트롤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환자 자신보다는 주변 다른 사람이 이득을 보는 감염관리 수가를 개발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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