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요구에 48차례 식욕억제제 처방한 의사
재판부 "양심 저버려 죄질 불량하지만" 벌금형 유지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무분별하게 처방한 의사가 면허 취소 문턱에서 돌아왔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최근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의사 A씨에 대한 원심 판결이 가볍다는 검사 항소를 기각했다.

의사 A씨는 지난 2016년 1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48차례에 걸쳐 식욕억제제 등 향정신성의약품 구매에 필요한 처방전을 무분별하게 발급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이 과정에서 진료기록부 작성을 소홀히 해 의료법 위반 혐의도 받았다. A씨가 작성한 진료기록부 일부는 의료행위 내용 없이 처방 내역만 존재했다. A씨는 지난 2017년에도 처방전 없이 향정신성의약품을 환자에게 제공해 벌금형을 받았다.

원심 재판부는 의사 A씨 사정을 참작해 실형으로 인한 면허 취소는 가혹하다고 보고 벌금 2,000만원 선고에 그쳤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죄질이 무겁다"면서 원심 판단을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의사 A씨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을 위반해 의료인으로서 직업적 양심을 저버렸다. 또한 의료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했으므로 그 죄질이 불량하다"면서 "의사 면허 취소가 가혹하다는 원심 판단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40년 넘게 의사로 활동해온 의사 A씨의 경력과 사정 등을 참작해 "A씨의 나이와 범행 경위, 방법, 기간과 횟수는 물론 범죄 전력이나 범행 후 정황 등을 종합했을 때 원심 선고가 부당할 정도로 가볍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처벌이 가볍다는 검사 항소를 기각했다.

의사 A씨처럼 환자 요구에 따라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하는 사례가 만연하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최종윤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 환자 162만명이 마약성 식욕억제제 2억5,370만정을 처방받았다. 1년 동안 처방일수가 3,700일이 넘는 환자도 있었다.

문제는 이런 '환자' 대부분 '치료' 목적으로 의료용 마약류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사 A씨에게 48차례 식욕억제제 등을 처방받은 환자 역시 치료 목적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의사들의 경각심을 요청하는 한편 단속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관련 기사: “의료용 마약류 문제, 의료인 각성과 이해 필요한 시점”).

마약류관리법상 의사 처벌 수위도 높다.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고 실형이 선고되면 면허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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