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분당서울대병원 백남종 원장②
적정 인력 수급 위해 의사 증원 필요…공공의대는 반대
의사 파견 급급말고 적재적소 배치 후 지원 뒷받침해야

'무의촌'에 의사 보내기는 필수의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부는 도시 의료 인력을 무의촌에 끌어올 방법을 고심하고 병원은 정부 정책에 따라 각종 센터에 의사를 파견한다. 무의촌 문제는 의과대학 신설이 필요한 주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빈 지도 색칠하듯 무의촌에 의사 인력을 채워 넣는데 집중하는 필수의료 대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구 고령화와 수도권 집중 속에 무의촌은 곧 '무환자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지역 필수의료 대책 문제를 짚던 분당서울대병원 백남종 원장 역시 "오지 않는 환자를 의사가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지금 의료계는 '수요'가 없는 지역까지 의사와 간호사를 파견해 의료 인프라를 유지할 여유가 없다. 백 원장은 "의료 인력 자체가 부족하다"고 했다.

2023년도 전공의(레지던트) 모집을 앞두고 의료계 각계각층에서 전공의 정원 증원 요구가 터져 나온 것도 의료 인력 부족이 원인이라고 했다. 적정 인력을 공급할 풀(pool) 자체가 고갈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인 분당서울대병원조차 이른바 필수의료 전문의 확보에 애를 먹고 은퇴 의사(시니어 의사)를 다시 현장으로 불러오는 현실이 그 방증이라고 했다.

'필수의료 살리기'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정부는 뇌졸중·심뇌혈관질환센터 확대 등 지역 의료 인프라 잇기에 부심하고 있다. 의료계도 최근 대한의사협회가 지역 공공의료기관과 시니어 의사 인력 연계에 나섰다.

백 원장은 이런 대책이 단순히 '인력 채워넣기'에 그쳐선 안 된다고 했다. 지역에 나간 의사가 제대로 의료를 할 수 있는 제반 여건 조성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적재적소에 의사와 의료기관을 배치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라고도 했다. 인구 구조가 변화하고 의료 인력 확보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기회비용'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다만 지역 내 필수의료 인력 확보를 명목으로 정치권이 앞다퉈 내놓는 공공의대 신설은 반대했다. 공공의료(필수의료)는 관련 인력만 확보해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년의사는 백 원장과 만나 필수의료 논의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놓쳐서는 안 될 논점을 짚어봤다. 백 원장은 재활의학과 전문의로 뇌신경재활 분야 권위자다.

분당서울대병원 백남종 원장은 지난 18일 청년의사와 만나 광역 단위로 필수의료 인프라를 짜야 한다면서 의료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국립대의대 중심 의과대학 정원 증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청년의사).
분당서울대병원 백남종 원장은 지난 18일 청년의사와 만나 광역 단위로 필수의료 인프라를 짜야 한다면서 의료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국립대의대 중심 의과대학 정원 증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청년의사).

- 지역과 전문과를 가리지 않고 전공의 정원 증원 요구가 나온 원인이 뭐라고 보나.

의료 인력 부족이다. 적정 인력 수급이 안 되고 있다. 전문의를 더 채용해야 한다지만 채용할 전문의가 없다. 우리도 인력 확보를 못 하는데 다른 병원 사정은 어떻겠나. 시니어 의사까지 다시 불러들이는 상황이다.

- 의대 정원을 확대해 인력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일정 정도 증원은 필요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렇다.

-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두고 정치권은 지역 필수의료 살리기 명목으로 공공의대를 신설하자고 하는데.

공공의대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대학을 하나 새로 만들고 커리큘럼을 꾸리고 학생을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정말 힘들다. 교육 질이 확보된 국립의대를 중심으로 정원을 늘리고 필요하다면 교과 과정에서 공공의료에 무게를 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역에 대학을 만들어 공공의료(필수의료)를 할 인력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필수의료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게 먼저다. 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할 수 있는 조건이란?

단순히 필수의료를 할 사람이 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역에 '센터'를 만들려면 일정 이상 '수요'가 있어야 한다. 인구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수요가 없는 지역에 의사와 간호사를 2~3명씩 보내 놓고 언제 올지 모를 환자를 365일 24시간 기다리라고 했을 때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기회비용은 생각보다 크다.

- 그 기회비용에는 무엇이 포함되나.

의사 그 자체다. 의사들이 처음 한두 해는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3년이 지나고 4년 뒤에도 오지 않는 환자를 기다릴 수 있는 의사가 얼마나 될까. 한창 수술 현장에 참여할 젊은 의사들이 지쳐버린다. 어쩌다 있는 수술만으로는 술기를 연마하기는커녕 유지하기도 어렵다. 수술하는 의사의 의지와 스킬 모두 망가트리는 일이다.

- 경제적 보상을 확대한다면.

환자가 아니라 돈만 기다리게 만드는 꼴이다. 설령 몇 억원을 받더라도 그런 처지를 감내할 의사는 없다.

- 옳은 방향으로 가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하나.

인구 소멸 지역이 늘어나면 도시 기능이 광역 단위로 집적되는 수순에 들어간다. 의료 기능 역시 자연히 대도시와 대형병원에 모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광역 단위를 기준으로 필수의료체계가 작동해야 한다. 지금 설정된 진료권도 잘 살펴봐야 한다. 교통과 인구의 흐름을 살펴 권역을 짤 필요가 있다.

- 시니어 의사 인력 활용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방향 자체는 좋다. 하지만 이미 은퇴한 의사라고 해서 환자를 더 잘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더 감내하는 것도 아니다. 그걸 요구해서도 안 된다. 인력도 시설도 없는 곳에 의사를 앉혀 놓고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무의촌에 의사 채우기식이 아니라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최소 지역 의료원 단위에서 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이때도 의료원에 사람 보내놓고 의사 늘었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이면 안 된다. 수술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팀을 이룰 인력도 필요하고 설비 투자도 이뤄져야 한다. 뒷받침해 줄 배후 병원의 존재도 중요하다. 중증질환이나 응급질환을 다루는 센터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를 신속하게 맡아줄 수 있는 배후 병원이 필요하다.

- '필수의료 살리기' 논의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 말했듯이 의료를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게 먼저라는 사실이다. 의사와 의료기관을 모든 곳에 채워 넣는다는 인식 대신에 변화하는 인구와 지역 구조에 맞춰 적재적소를 찾아내는 분별이 필요한 때다. 지역에 의사가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했다가 사회 전체가 치를 기회비용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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