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진 교수, "가능한 약제 모두 써본 환자에서도 강력한 효과 보여"
국내 심부전학회, 글로벌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베르쿠보' 사용 권고

최근 심부전 치료 분야는 새로운 기전의 약제들이 속속 등장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뇨약으로 시작한 'SGLT-2억제제'가 심부전 1차 치료제로 자리 잡으며, 심부전 표준치료는 기존의 'ARNI/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Angiotensin-Converting Enzyme Inhibitor, ACEI)', '베타차단제(Beta-Blocker, BB)', '염류코르티코이드 수용체 길항제(Mineralocorticoid Receptor Antagonist, MRA)'와 더불어 SGLT-2억제제로 구성된 '4 pillars' 전략이 확립됐다.

하지만 이러한 표준치료에도 불구하고 질병이 진행돼 입원을 반복해야 하는 환자에서는 여전히 약물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는 상황.

이런 가운데 작년 11월 국내에도 심부전으로 인한 입원 또는 외래 정맥용 이뇨제 투여를 경험한 좌심실 박출률 45% 미만인 증상성 만성 심부전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베르쿠보(성분명 베리시구앗)'가 도입되며, 그간 열악했던 중증 심부전 치료 환경에도 개선의 여지가 생겼다.

이에 대한심부전학회 학술이사를 역임하고 있는 정욱진 교수(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를 만나 '베르쿠보'의 임상적 가치와 현 심부전 치료 환경에서의 치료적 위치, 중증 심부전 환자의 치료 환경 개선 필요성에 대해 들었다.

대한심부전학회 학술이사 정욱진 교수(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대한심부전학회 학술이사 정욱진 교수(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최근 심부전 치료 분야에 '베르쿠보'라는 전혀 다른 기전의 치료제가 등장했다.

베르쿠보는 세포내 고리형 일인산 구아노신(cyclic guanosine monophosphate, cGMP)의 합성을 촉진하기 위해 이에 관여하는 수용성 구아닐산 고리화효소(soluble guanylate cyclase, sGC)를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기전을 갖고 있다. 즉, sGC를 자극해 cGMP 합성을 촉진함으로써 산화질소(nitric oxide, NO)의 생체이용률을 증가시켜 '혈관 확장' 및 '혈관 증식 억제'에 효과를 보인다.

베르쿠보는 VICTORIA 연구를 통해 심장 혈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cGMP 합성을 촉진하는 효과를 입증했다. VICTORIA 연구는 심부전 악화로 입원했거나 외래에서 정맥용 이뇨제 투여를 경험한 좌심실 박출률(Left Ventricular Ejection Fraction, LVEF)이 45% 미만으로 저하된 총 5,05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글로벌 3상 임상 연구로, 우리나라 환자도 참여했다(83명, 약 1.64%). 여기서 핵심은 좌심실 박출률이 45% 미만이면서 입원 경험이 있는 심부전 환자, 즉 고위험군 환자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심부전이 오래 지속돼 중증 심부전(advanced heart failure)으로 진행되면 예후가 좋지 않다. 폐고혈압과 같은 또 다른 심혈관 위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심부전으로 인해 좌심실이 정체되면 폐혈관계가 멈추게 돼 우심부전(right ventricular failure)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갑자기 심장이 멈춰 사망하게 되는 것(sudden death)이다.

-최근 '4 pillars' 중심의 심부전 치료 패러다임이 확립됐다. '베르쿠보'는 새로운 치료 환경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현재 심부전 1차 치료에는 'ARNI/ACEI', 베타차단제, MRA, SGLT-2억제제, 이렇게 4가지 약제가 쓰인다. 베르쿠보는 1차 표준치료에도 불구하고 심부전 악화를 경험한 좌심실 박출률 45% 미만의 심부전 환자에서 2차 치료제로 사용된다. 국내도 2차 치료제로 적응증을 받았지만, 아직 급여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대한심부전학회가 올해 발표한 심부전 가이드라인이 가장 '최신의'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이다. 유럽은 작년 9월, 미국은 올해 4월, 그리고 국내 심부전 가이드라인은 올해 7월에 발표됐는데, 작년 9월 발표된 유럽심장학회(ESC) 가이드라인에서 베르쿠보는 'Class Ⅱ(b), Level of Evidence B'로 권고됐다. 하지만 국내 가이드라인에서는 유럽 가이드라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Class Ⅱ(a), Level of Evidence B'로 권고됐다.

Class Ⅱ(b)는 '사용해볼 수 있다', Class Ⅱ(a)는 '사용하는 것이 좋다'로 권고 수준의 차이가 있다. 이는 베르쿠보가 작년에 미국 식품의약국(FDA, 1월), 유럽위원회(EC, 7월), 국내 식약처(11월)에서 모두 허가를 받은 점, VICTORIA 연구에 한국인이 등록돼 한국인 데이터를 보유한 점 등이 고려된 것이다. 그리고 고위험 중증 심부전 환자에서 베르쿠보가 연간 4.2%의 절대 위험 감소율을 보여준 점도 고려됐다. 1차 표준치료를 받은 상태에서 4.2%의 절대 위험 감소율을 보여줬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데이터다.

VICTORIA 연구는 NT-proBNP 중앙값이 2,816 pg/mL인 상대적으로 예후가 좋지 않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는데, 이는 심부전 연구 중 거의 최고로 높은 수치에 해당하는 환자들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베르쿠보는 추적관찰기간 10.8개월(중앙값) 동안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 또는 심부전으로 인한 입원의 절대 위험을 4.2% 감소시켰다.

이를 '치료필요수(number needed to treat, NNT)로 환산하면 24명에 해당하는데, NNT 24명은 최소 1명에서 치료 효과를 얻기 위해 24명을 치료해야 한다는 의미다. NNT가 100 이하인 약제는 대개 좋은 약제이고, 50명 이하는 꼭 써야하는 약제다. 모든 약이 100%의 효과를 나타낼 수는 없기 때문에 NNT라는 개념은 아주 중요하다. NT-proBNP 중앙값이 훨씬 낮은 PARADIGM-HF 연구에서 NNT가 21이었던 것을 보면, 베르쿠보의 주요 평가항목인 복합 심혈관 위험 감소에 대해 NNT가 24인 것은 굉장히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2차 치료제로서 가능한 약제를 모두 사용해본 환자에서 강력한 효과를 보여주었다.

-VICTORIA 연구를 진행할 당시에는 '4 pillars' 전략이 등장하지 전 아닌가. 지금의 표준치료 환경에서 '베르쿠보'가 임상시험에서 보여준 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을까 궁금하다.

현재도 '4 pillars'에 해당하는 약제라고해서 모든 심부전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다 쓸 수는 없다. 중증 심부전은 혈압도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약제를 사용하다가 줄이기도 하고, 최저용량으로 변경할 수도 있다. 즉, 환자의 상황에 따라 최선의 치료 전략을 세워야 하며, 이것이 바로 심부전 치료를 'state of the art'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베르쿠보와 같은 무기가 많아지면 치료제의 선택지가 넓어지고, 최선의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가능성도 늘어난다.

또한 VICTORIA 연구 당시에는 4 pillars에 해당하는 약제들이 표준치료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환자들이 해당 심부전 치료제를 모두 사용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VICTORIA 연구에 참여한 환자의 기저 특성(baseline characteristic)을 살펴봐도 어떤 약제는 70~80%까지, 어떤 약제는 50%까지 사용한 약제도 있다(73.4% ACEi/ARB, 14.5% ARNI + 93.1% BB + 70.3% MRA). 따라서, 4 pillars가 새로운 지침의 중심이 됐다고 해서 베르쿠보의 효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심부전은 한 번만 입원해도 사망률이 크게 증가하는데, 베르쿠보는 이미 입원을 경험한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베르쿠보는 기전상으로도 기존의 4 pillars에 해당하는 약제들과 완전히 다르다. 4 pillars 약제 중ARNI가 혈관 확장, 후부하(afterload)를 떨어뜨려 주는 효과가 일부 있지만, 나머지 약제들은 혈관 확장 효과가 없다. 반면, 베르쿠보는 혈관 확장의 효과가 있다. 혈관확장이론(vasodilator theory)의 측면에서 베르쿠보는 기존 치료제가 해주지 못했던 빈 자리를 메워주는 역할을 하고, 이에 따라 개선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베르쿠보'는 기본적으로 다른 약제와 병용해 사용하는 것인가.

그렇다. 한 번 입원했던 사람에서 악화가 보이면 추가해서 사용할 수 있다. 베르쿠보는 1차 치료제는 아니기 때문에 1차 치료제를 먼저 사용한 후, 심박수(heart rate)가 충분히 떨어지지 않으면 2차 치료제로 사용하게 된다. 심부전 2차 치료제가 많지 않다 보니, 1차 치료제에 효과가 없으면 대체할 약이 거의 없다. 그만큼 2차 치료제의 빠른 도입은 중요하다. 베르쿠보는 2차 치료 라인에서 쓸 수 있는 약으로, 그 중에서도 효과가 뛰어닌 편이다. 최근에 개발된 약제들 중에서 베르쿠보만큼의 효과를 입증한 약제는 없다. 베르쿠보의 급여 적용이 시급한 이유다.

-병용 약제로 쓰이는 만큼 약물상호작용이나 안전성 프로파일이 중요해 보인는데 베르쿠보의 내약성은 어떠한가.

대한심부전학회 학술이사 정욱진 교수
대한심부전학회 학술이사 정욱진 교수

VICTORIA 연구에서 베르쿠보 투여군은 위약군과 비교해서 양호한 안전성 프로파일을 보였다. 특히, 심부전에서 주요하게 여기는 '증상성 저혈압' 발생률이 인상적이다.

심부전 치료제는 심장 활동을 정상화하는 데(심장을 쉬게 해주는데) 사용되기 때문에 혈압이 떨어지기도 한다. ARNI, 베타 차단제 등 4 pillars에 해당하는 약제들도 대개 그렇다. 그래서 이 약제들을 추가적으로 투여하면 혈압이 더 떨어질 수 있다. 혈압이 높은 사람은 당연히 혈압을 낮춰야 하지만, 보통 중증 심부전 환자들은 혈압이 낮기 때문에 혈압을 너무 떨어뜨리면 안 된다.

때문에 증상성 저혈압은 실신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중요한 안전성 프로파일 중 하나다. 실신하면서 골절이 생길 수도 있고, 골절은 환자의 이동성(mobility)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환자로 하여금 감염에 쉽게 노출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결국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심부전 환자는 특히 증상성 저혈압을 주요하게 살펴봐야 한다.

VICTORIA 연구에서 증상성 저혈압 환자의 비율을 보면, 베르쿠보 투여군은 9.1%, 위약군은 7.9%로 통계적 차이가 없었다. 이는 베르쿠보가 임상적 유효성뿐만 아니라 양호한 안전성 프로파일을 확인했음을 뜻한다. 위약군이 7.9%로 높은 이유는 심부전 환자는 다른 약제를 사용해도 증상성 저혈압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베르쿠보'가 국내 심부전 치료 환경에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이 더 개선돼야 할까.

미국과 유럽은 시판 승인이 되면 약제를 바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급여가 적용되지 않으면 환자 개인의 비용적 부담이 크다. 그래서 급여가 꼭 필요하다. 실제 임상에서도 기존에 사용하던 치료제가 효과가 없어 다른 약제를 사용해야 하는데 급여 적용이 안 돼서 쓸 약제가 없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베르쿠보는 기존 치료제와는 다른 기전으로 중증 심부전 환자에게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약제이고, 근거(evidence)상으로도 한 번 이상 입원했던 중증의 심부전에 좌심실 박출률 45% 이하의 환자에서 효과를 입증한 치료제다. 따라서 1차 치료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대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VICTORIA 연구에 등록된 환자에 맞춰 국내 보험기준이 설정된다면, 베르쿠보 치료가 적용될 환자수가 많지 않고, 그만큼 재정 영향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심부전 환자 수는 많지만 베르쿠보를 사용할 수 있는 중증 심부전 환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급여 기준에 따라 수치적 차이가 있겠지만, 국내 중증 심부전 환자수만 놓고 본다면 약 2만명 정도로 희귀질환 기준 숫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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