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자살 허용한 네덜란드, 의사 50% 감정 부담 호소
문재영 교수 “연명의료결정법 이후 제도만 발전”
김명희 원장 "개정안 자체 허술…논의 필요하다”

25일 한양의대에서 열린 한국의료윤리학회 추계합동학술대회에서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조력존엄사법안’에 대한 의료 현장의 우려가 쏟아졌다(ⓒ청년의사).
25일 한양의대에서 열린 한국의료윤리학회 추계합동학술대회에서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조력존엄사법안’에 대한 의료 현장의 우려가 쏟아졌다(ⓒ청년의사).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조력존엄사법안’이 발의된 가운데 의료 현장에서는 우려가 쏟아졌다.

조력존엄사법안 시행 주체가 되는 의료진의 감정적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전무하다는 지적과 함께 해당 법안을 사회에서 요구하는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고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세종충남대병원 중환자의학과 문재영 교수는 25일 한양의대에서 열린 2022년 한국의료윤리학회 추계합동학술대회에서 ‘의사조력자살과 의사의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문 교수는 “의료인의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전제는 의료인이 윤리적 갈등을 인지하고 경험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하고 의료진이 느끼는 윤리적 갈등을 일반인들도 문제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며 “우리 사회는 연명의료결정법 이후 죽음에 대해 철학, 윤리적으로 발전해 온 경험이 있는지, 제도만 발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그간 환자 고통과 가족 돌봄, 법 제도에 대해 어긋나지 않게 법을 만들어 시행하기 위한 고민이 많았지만 의료진이 현장에서 느끼는 정서적인 문제와 부담에 대해서는 집중이 안 되고 있다”며 “환자를 살리는 책임을 갖고 있는 의사의 정체성과 진실성을 위협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의사조력자살'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네덜란드 의사들도 그 시행 과정에서 감정적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 교수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서 최근 1년 사이 의사조력자살 요청을 승낙하거나 거절한 경험이 있는 의사를 대상으로 한 구조화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응답자 500명 중 250명이 의사조력자살 경험이 있었으며 이들 중 50.1%가 감정적 부담을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의료진의 심리적 부담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현장에서는 연명의료 중단 등록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껐음에도 심리적 부담으로 기도삽관 튜브를 발관하지 않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이에 현장 의료진의 감정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문 교수는 “연명의료 중단을 해온 의사로서 현장에서 느낀 감정적 부담도 적지 않다”며 “더불어 간호 윤리의 첫 번째가 환자를 지켜주는 사람, 환자의 권리를 위해 병상 옆에서 옹호해주는 사람이기 간호사들이 느끼는 도덕적, 감정적 부담은 상상 이상이다. 내가 이만큼 눈물을 흘릴 때 간호사들은 뒤돌아 펑펑 운다”고 전했다.

문 교수는 “국가 차원에서 제도로 지원을 해주든, 의과대학에서 교육으로 제공하든 현장 의료진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해줄 수 있을지 제도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시각도 필요하다”고 했다.

문 교수는 “(연명의료 중단을 해오면서)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를 옆에서 보면서 아름답고 멋진 일을 한 건데 그 과정 자체가 눈물 나고 힘든 경험인 건 사실”이라며 “그런 경험이 쌓이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쌓여 가는 감정적 부담이 있다. 이런 법 제도를 사회에서 왜 요구하는지 분명히 알고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조력존엄사법안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 김명희 원장은 플로어에서 “발의된 연명의료법 개정안에는 조력존엄사와의 정의와 대상, 윤리위원회를 통한 결정 등 3가지 내용만 들어있지 실제 프로세스에 대한 디테일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환자의 의사조력자살 요청에 대해) 의사의 거부 조항이 없다. 좀 더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개정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개정안 검토를 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근본적으로 개정안 자체가 허술하기 때문에 그대로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대로 시행 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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