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한방특위 조사결과, 최근 5년 동안 2배 이상 늘어
한의사 국시 의과 영역 침범…"무면허의료행위 조장"
"복지부가 관계자 문책하고 재발 방지 대책 세워야"

한의사 국가시험이 의과 영역을 침범하고 무면허의료행위를 조장한다며 실태 조사를 통해 출제 범위를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17일 서울 용산임시회관에서 '국시원의 무책임한 한의사 국가시험 관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에 나섰다.

계기는 지난 8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공개한 '직무기반 한의사 국가시험을 위한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다. 보고서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 KCD)를 기반으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한의사 국시가 출제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는 예시로 든 '사상체질의학의 질병(KCD) 진단과 치료하기' 문항에서 80세 남성 환자 뇌 컴퓨터단층촬영장치(CT) 촬영 사진과 심전도 검사 결과를 보여주고 한방에서 중풍 치료에 쓰는 '청폐사간탕'을 정답을 제시했다. 그러나 해당 CT 사진을 본 의료계는 이를 뇌종양 일종인 '교모세포종'이라고 했다(관련 기사: ‘뇌종양에 중풍 한약 처방’ 한의사 국시 개선 연구보고서 논란).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최근 국시원 연구 용역에서 한의사 국가시험에 CT 등 의료기기 영상 분석을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한방특위가 공개한 연구 용역 예시 문항.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최근 국시원 연구 용역에서 한의사 국가시험에 CT 등 의료기기 영상 분석을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한방특위가 공개한 연구 용역 예시 문항.

한방특위는 관련 연구보고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보건의료인 국가시험 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국시원이 의료체계 이원성 근간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에 한의사 국시 관리 실태를 조사해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한의사 국시의 구체적인 시험과목과 출제범위를 상세하게 규정하는 등 재발 방지 대책도 촉구했다.

한의사 국시가 한의사 무면허의료행위를 조장한다면서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했다. 한방특위가 최근 5년간 한의사 국시 필기문제를 분석한 결과 진단검사나 영상의학 관련 검사 등 의과의료기기를 인용한 문제가 꾸준히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가 최근 5년간 시행한 한의사 국시 필기 문제를 분석한 결과(제공: 의협 한방특위)

의과의료기기 포함 문항은 지난 2018년 34문항에서 2022년 73문항으로 급증했다. 지난 2018년 한의사 국시 전체 문항의 27.3%였던 의과 영역 문항이 2022년에는 36.5%까지 늘었다. 2020년 이후에는 신종플루검사나 알레르기 피부검사 등도 인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시원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시원 이윤성 원장은 한방특위 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시험 출제위원에게 영역 침범 문제 등을 주지시켰으나 근절이 쉽지 않다는 요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방특위는 "한방이 의과 침범을 과업으로 삼고 있는 양상"이라고 했다.

의협 이정근 상근부회장은 "본인 학문을 못 해서 의과 영역을 침범한다면 그 학문은 더 이상 존속할 이유가 없다. 한의학은 존폐 기로에 들어선 것"이라면서 "더 이상 한의대생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지 말고 학문 본래 목적에 따라 전통을 이어받을 제자를 키우고 한의학 존재 가치를 가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한의사 국시가 한의사 무면허의료행위를 조장하고 양산하는 시험대로 전락했다"면서 "전수조사를 거쳐 한의사 국시를 면밀히 분석하고 무면허의료행위를 차단해야 한다. 또한 한의사 국시 문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국시원과 관계당국 책임자를 엄중 문책하라"고 요구했다.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한의사 국시가 의과 영역을 지속적으로 침범하고 있다면서 재발 방지와 함께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국시원을 문책하라고 요구했다.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한의사 국시가 의과 영역을 지속적으로 침범하고 있다면서 재발 방지와 함께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국시원을 문책하라고 요구했다.

한방특위 김교웅 위원장 역시 "한의과대학을 더이상 사이비 전문학원으로 만들어선 안된다. 국가가 인가한 교육기관은 그 학문적 배경과 면허제도에 맞춰 교육해야 한다"면서 "지금처럼 연구보고서조차 이론적 배경 없이 영상필름을 무분별하게 사용해 발표하는 작태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의협은 내년 시행하는 2023년도 국가고시 문항도 분석해 발표하겠다고 했다. 개선되지 않으면 추가 대응과 기자회견도 준비하겠다고 했다. 다만 법적 대응에는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김 위원장은 "소송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문제인식이다. 더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인식해야 (의협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배경이 된다"면서 "법적 소송은 이런 토대 위에서 위법성이나 여러 법적 문제를 확인한 후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초점이 의사와 한의사의 영역 다툼으로 가지 않길 바란다.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가져올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나선 것"이라면서 "법적인 부분도 명확히 해야겠지만 그 전에 국민에게 위험성을 빨리 알리는 것이 의협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서울시의사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국시원에 한의사 국시 관리를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의학적 관점에서 극히 비과학적이고 비윤리적인 내용이 국가 예산으로 진행한 국시원 연구 용역 결과로 채택되는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한의사 무면허의료행위를 조장하는 한의사 국시 행태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전문적이고 객관적으로 국시를 운영해 우수한 보건의료인을 배출한다는 국시원 설립 목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시원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시원은 한의사 국시 행태를 즉각 시정하고 정부는 한의사 국시와 연구용역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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