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문화재단·청년의사 공동주관 전시 ‘아르스 롱가’
소화기내과·산부인과 등 진료과별 예술작품 150여점 전시
구혜원 이사장 “의술과 예술 공통점…인간 치유와 위로”

서울 용산구 갤러리SP에서 열리는 전시 '아르스 롱가'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간호스테이션이다. '의술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병원 콘셉트로 꾸며졌다(ⓒ청년의사).
서울 용산구 갤러리SP에서 열리는 전시 '아르스 롱가'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간호스테이션이다. '의술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병원 콘셉트로 꾸며졌다(ⓒ청년의사).

갤러리 속 작은 진료실이 문을 열었다. 그 이름도 ‘아르스 롱가(Ars Longa)’ 병원이다. 문을 열고 마주하는 접수 데스크나 각 진료실 입구에 걸어 놓은 ‘팻말’도 여느 병원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 병원에는 ‘의사’가 없다. 각 진료실에는 인간 치유와 위로를 담당할 ‘예술 작품’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 특별한 병원은 지난 11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서울 용산구 갤러리SP에서 열리는 전시 ‘아르스 롱가’ 전시 현장이다. 전시회 주제인 ‘아르스 롱가’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명언 ‘아르스 롱가, 비타 브레비스(Ars longa, Vita brevis)’, 즉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에서 따왔다.

히포크라테스는 이 문장을 ‘인간을 치료하는 의술을 익히고 베푸는 길은 끝이 없다’는 의미로 사용했지만, 근대에 이르러 ‘Ars’가 테크네(technē)가 아닌 예술(art)로 더 많이 알려졌다. 이번 전시는 아르스 롱가의 중첩된 의미처럼 의술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 주목했다.

의술과 예술이 인간을 치유하고 위로할 수 있다는 콘셉트에서 출발해 25명의 작가가 ‘처방’한 예술 장신구와 가구·오브제·설치 등 예술 작품 150여점을 진료실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의술’이라는 주제에 맞춰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청년의사와 공동주관 했다.

아르스 롱가 병원에 마련된 진료과는 ▲소화기내과 ▲혈액내과 ▲의학사 연구실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용품보급실 ▲의료용품개발부 ▲약제과 ▲치과 ▲행동과학연구소 ▲정신의학연구소 ▲유방외과 ▲의철학연구소 ▲청소년정신과 ▲세포연구실 ▲소아과 ▲한의학과 ▲신경안과 ▲내분비대사내과 ▲피부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이다.

'소화기내과'에 전시된 이재익 작가의 작품(ⓒ청년의사).
'소화기내과'에 전시된 이재익 작가의 작품(ⓒ청년의사).

병원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소화기내과’에서는 재활용 가죽을 활용해 만든 ‘장기’ 모양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재익 작가의 작품이다. 재활용 가죽을 잘라 다양한 형태의 패턴을 만들어 이어 붙인 작품은 세상을 살아가는 원초적인 생명체의 모습을 표현했다.

맞은 편 ‘호흡기내과’ 진료실에는 특수 플라스틱으로 둥글게 부풀어 오른 호흡의 순간을 보여주는 ‘숨 시리즈’를 전시했다. 들숨과 날숨의 반복으로 지속되는 생명체를 부풀어 오른 둥근 조각들로 표현해 보이지 않는 숨에서 시작되는 생명의 히스토리를 담아냈다.

환자의 환부를 고정하거나 보호하는 석고붕대를 활용해 자궁을 표현한 작품은 ‘산부인과’에서 만나볼 수 있다. 얇고 부서지기 쉽지만, 물에 닿으면 단단하게 굳는 석고붕대를 통해 연약하지만 강한 여성의 이미지, 따뜻하지만 엄격한 어머니 등 이중적인 여성 내면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내분비대사내과’와 ‘뇌신경과’에서는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을 각각의 캐릭터로 표현한 작품이 전시됐다. 인간의 뇌 가운데서 뿜어져 나와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과 달콤한 유혹 속에 빠진 인슐린 등 호르몬들을 브로치로 재치 있게 표현했다.

'의료용품개발부'에 전시된 전지현 작가의 작품들(ⓒ청년의사).
'의료용품개발부'에 전시된 전지현 작가의 작품들(ⓒ청년의사).

병원의 아래층에 있는 ‘의료용품개발부’에서는 걱정과 두려움이 지배하는 병원이라는 공간을 ‘삶’이라는 희망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미니어처’라는 매개체를 활용했다. 미니어처 주사기와 청진기 등 우리 몸을 치료하는데 사용하던 수술도구와 진료도구들은 장신구와 공간 오브제로 재탄생해 마음을 치료하는 ‘의료용품’이 됐다.

불량 의료도구 등 버려진 의료용품을 작품으로 재활용한 이미리 작가의 작품은 ‘행동과학연구소’에 전시됐다. ‘영(靈)’이 깃든 재활 의료용품 등 100개의 장신구 연작으로 마치 성황당을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모든 물체에는 각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

흰 가운을 걸치고 직접 큐레이터로 나선 구혜원 이사장은 "인간 치유와 위로라는 공통점을 가진 의술과 예술 모두 삶에 풍요를 더하는 고귀한 가치를 지녔다는 점을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고 설명했다(ⓒ청년의사).
흰 가운을 걸치고 직접 큐레이터로 나선 구혜원 이사장은 "인간 치유와 위로라는 공통점을 가진 의술과 예술 모두 삶에 풍요를 더하는 고귀한 가치를 지녔다는 점을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고 설명했다(ⓒ청년의사).

이번 전시를 기획한 구혜원 이사장은 “의술과 예술 모두 육체적·정신적 질병과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고, 삶에 풍요를 더하는 고귀한 가치를 지녔다는 점을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며 “의술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을 통해, 양 분야를 새롭게 발견하고 공감하고 교류하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르스 롱가 병원은 진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월요일은 휴진이다.

'아르스 롱가 병원' 한켠에는 관계자만 출입할 수 있는 음압격리병동도 마련됐다(ⓒ청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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