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한전공의협의회 강민구 회장
"의료계 의사결정 구조 바꾸고 젊은층 목소리 반영해야"
"사회적 의제 발맞춰야 의료계 현안 공감대도 쌓인다"

젊은 의사 전성시대다. 각 학회와 병원은 이른바 'MZ세대' 마음을 사로잡을 묘수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젊은 회원들을 위한 별도 협의체 구성을 고민하는 의사단체들도 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최근 '젊은의사TF'를 만들어 의료계 현안을 공유하고 젊은 의사들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젊은 의사들을 비추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는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불확실한 미래와 눈앞의 부담 때문에 전공의는 진로를 포기하고 과로에 지친 젊은 전임의들은 병원을 떠나고 있다. 임상 현장은 물론 의료계 현안을 논하는 공론장에서도 젊은 의사를 찾기 힘들다.

이를 지켜보는 '기성세대'는 외국 의사회 해체 소식을 '남 일'로 치부하지 못한다(관련 기사: 젊은 의사 외면에 뉴질랜드의사협회 없어졌다…"남 일 아냐"). 출생률 급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소멸'한다는 경고처럼 고개 돌린 젊은 의사들을 잡지 못하면 한국 의료 공동체도 소멸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됐다.

2020년 의료계 단체행동을 선봉에 섰던 젊은 의사들은 왜 2년 만에 공론장을 떠났을까. '어른'들이 만들어준 발언대에 왜 올라서지 않을까. 대한전공의협의회 강민구 회장은 의료계 의사 결정 구조를 지적했다. 젊은 의사들이 목소리를 내도 최종 결과물에 담기지 않으니 '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기성 의료단체는 물론 대전협에도 적용된다. 이 때문에 강 회장은 회원 참여 정책 제안 제도를 도입하고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설립 등 회원 소통 강화와 참여 기회 확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간 대전협 집행부는 공약 사항을 이행하면서 회원들에게 '참여하면 바뀐다'는 믿음과 기대를 다시 돌려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를 위해 의료계 '필수의료 살리기'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젊은 의사들의 근로 환경을 개선하고 전공의들의 수련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전공의법과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며 정부·국회와도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청년의사는 대전협 강민구 회장과 만나 젊은 의사들이 의료계 내부 정책 결정 구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강민구 회장은 지난달 18일 청년의사와 만나 의료계 현안 해결에 젊은 의사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강민구 회장은 지난달 18일 청년의사와 만나 의료계 현안 해결에 젊은 의사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필수의료 살리기' 논의가 활발하다. 필수의료 분야에서 대전협 당면 과제는.

당연히 전공의와 젊은 전문의 처우 개선이다. 필수과가 '기피과'로 불리면서 세부 전문의조차 병원을 떠나고 있다. 젊은 의사가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늘어야 한다. 병원에 전문의 인력이 확충되면 장기적으로 의료인력 근무 강도 자체가 완화된다.

당직 환경도 바꿔야 한다. 수당 지급은 물론 체계 자체도 손봐야 한다. 전공의는 물론 젊은 전임의가 느끼는 부담이 굉장하다. 당직 문제 해결이야말로 젊은 의사 처우 개선으로 곧장 연결된다.

-전공의와 당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같다. 부담이 크지 않나.

전공의도 사람인데 당연하다. 야간 근무 부담은 어디나 클 수밖에 없다. 주간보다 사람은 없고 수련받는 입장에서 응급 상황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크다.

-필수과 인력 문제를 거론할 때면 '전공의가 없어 교수가 당직을 한다'는 말이 자주 한다.

한국 의료계에 입원 환자 진료나 야간 근무는 전공의 일이라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게 당연시되다 보니 전공의가 없어서 교수가 당직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걸 바꿔야 한다. 입원 진료는 기본적으로 전문의 담당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전공의가 없어서 교수가 당직한다는 말 대신 전문의가 부족해 야간 의료 공백이 생긴다는 말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필수과 문제 초점도 정확히 맞춰진다. 기본적인 인식이 전환되지 않으면 필수과 문제도 풀 수 없다.

-최근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들이 저조한 젊은 의사 참여율로 고민하고 있다. 이러다 의사단체들이 '소멸'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들린다. 젊은 의사들이 회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현재 활동 의사 수가 8만명이고 그 중 전공의가 1만5,000명 선이다. 지금 전공의 등 젊은 의사들이 의협이나 여러 단체에서 '인구 수'에 비례한 의결권을 가지고 있나. 그렇지 않다. '최종 결정 과정'에 젊은 의사 권한이 너무 작다. 이게 근본적인 문제다.

-의협은 젊은의사TF를 구성하고 의료계 현안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 다른 의사단체들도 젊은의사협의체 구성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협의체가 실제 도움이 될 거라고 보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젊은의사협의체가 최종의사결정체는 아니다. 여기서 논의해도 그 윗단계에서 막히면 소용없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많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없던 게 새로 생긴 점은 긍정적이다. 젊은의사협의체 결성이 다른 의사결정 단계에서 젊은 의사 권한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젊은 의사들이 먼저 의료계 현안 논의 과정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다루는 의제와 그 목표가 젊은 의사한테 직접적으로 효용이 있어야 한다. 지금 논의되는 의료계 의제 중 젊은 의사 입장에서 와닿는 의제는 그렇게 많지 않다. 노력 대비 효용이 크지 않으니 적극적인 참여로 이어지지 못한다.

-불과 2년 전인 2020년에는 젊은 의사들이 먼저 거리로 나서고 현안을 주도했다. 이때는 왜 가능했을까.

지난 2020년 단체행동 때는 '내가 참여하면 바뀐다'는 믿음과 기대가 있었다. 참여가 곧바로 영향력으로 이어졌다. 참여자가 한 명 한 명 늘 때마다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고 기대가 커지는 게 눈에 보였다. 그 점이 젊은 의사들을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가 이 점을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꼭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대전협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관심과 참여가 내 삶을 바꾼다고 회원을 설득하는 건 모든 단체의 책무다. 대전협도 단체행동 이후 회원의 믿음이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기도 했다. 지금은 조금씩 신뢰를 회복해 나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최근 공공의대 신설 등 의대 정원 증원 문제가 다시 고개 들고 있다.

정부 정책 목표와 수단이 일치했으면 한다. 중증의료 분야 필수인력난 해소가 정책 목표라면 그 수단은 전문의 채용 확대가 돼야 한다. 한국은 전문의 비율이 높다는 말과 중증 분야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말이 동시에 나온다. 한정된 재원 속에서 기존 인력을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해야 한다.

-의사들이 일반 국민 정서와 유리됐다는 비판도 꾸준히 나온다. 최근 의대생 '몰카' 사건을 비롯해 성범죄 등 의료계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그런 목소리가 더 커졌다.

각자 경험과 상황이 천차만별이고 의료계 전체를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 노동과 젠더 문제는 물론 여러 사회적 의제 논의 수준도 성숙해지고 있다. 의료계가 사회 일반 인식을 앞서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보조는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자를 대면하는 건 사회 일반의 사람과 대면하는 일이다. 사회 흐름과 괴리가 생기면 그만큼 환자와의 관계도 멀어질 위험이 커진다. 일반 사회와 소통이 잘 돼야 의료계 현안도 해결하고 정책을 만들어갈 힘이 생긴다. 의료계 내 부조리와 불합리를 없애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임기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대전협 부회장에 이어 회장직을 맡았는데 그간 달라진 점도 있나.

하는 일 자체는 거의 똑같다. 회의 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근무 환경 개선하고 수련 환경 보호하자고 이야기한다. 대신 이전보다 더 많은 전공의가 집행부에 참여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선뜻 발걸음해줘서 고맙다. 대전협은 앞으로도 전공의 근무 환경 개선과 수련 환경 보호, 환자 안전 확보에 대해 꾸준히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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