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Pex 2022에서 비결 공유하는 '고기리막국수' 김윤정 대표
"'내 가게' 꾸리며 '손님' 맞는 식당, 병원과 통하는 점 많을 것"

"우리가 진심을 담아 만든 막국수를, 손님이 진심을 담아 맛있다고 할 때 행복합니다."

하루 평균 손님 1,000명 이상, 하루 평균 매출 1,000만원, 연매출 30억원. 지표만 나열하면 몇 층짜리 커다란 음식점 건물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가게, '고기리 막국수'는 나무로 만든 테이블 8개를 놓고 부부 한 사람은 면을 삶고 한 사람은 손님을 맞는 작은 가게다.

서울 압구정에서 7년간 운영하던 이자카야를 경영난에 접은 후 살 길을 찾던 부부는 경기도 외진 마을을 찾아 작은 막국수 집을 열었다. 평소 좋아하던 막국수라면 진심을 다해 대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외진 길 옆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부부가 마주 앉아 묵묵히 그날의 메밀을 맛보던 가게는 이제 '들기름막국수'의 선구자로 전국에서 몰려온 손님을 맞고 있다. 이런 부부의 경험을 담아 지난 2020년 펴낸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다산북스)'는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바로 이야기의 주인공, 고기리막국수 김윤정 대표가 청년의사 주최로 오는 10월 26일부터 28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열리는 'HiPex 2022 (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2022)'를 찾아 작은 가게를 크게 키운 비결을 나눈다.

"병원과 막국수집이라니 다소 엉뚱한 묶음 같지만 모두 '내 가게' 꾸려나가며 '손님'과 교감하는 사람들이니만큼 이번 강연이 모두 함께 공감하는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

김 대표는 거창한 마케팅이나 신들린 자산운용이 아니라 손님에게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주겠다는 진심이 작은 가게를 꾸려온 가장 큰 비결이라고 말했다. 손님 한 명 한 명 소홀히 여기지 않고 눈을 마주치며 칭찬도 불만도 귀담아듣는 과정이야말로 성장의 밑걸음이라는 철학은 현재 '환자경험'을 생각하는 의료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이펙스를 한 달 앞둔 지난 24일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고기리막국수를 찾아 김윤정 대표에게 진심경영의 비결을 들었다.

​지난 24일 고기리막국수에서 만난 김윤정 대표는 작은 가게를 크게 키운 비결은 손님을 생각하는 진심경영에 있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고기리막국수에서 만난 김윤정 대표는 작은 가게를 크게 키운 비결은 손님을 생각하는 진심경영에 있다고 말했다.​

- 책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에서 식당 경영 전략으로 맛있는 메뉴를 내는 비결 외에 손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많은 비중을 할애했다. 그 이유는?

압구정에서 식당을 했을 땐 이렇게 생각했다. 음식이 맛있으면 손님이 많이 오고 손님이 많이 오면 매출이 오른다. 이게 너무 당연했다. 그렇게 7년을 장사했는데 기억에 남는 손님 하나 없이 장사를 접었다. 나 스스로 손님에 관심이 없었던 거다.

고기리막국수를 열면서는 손님에 집중했다. 음식보다 음식을 먹는 손님이 중요하다. 그 손님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고, 나와 내 가족이 행복해진다는 걸 깨닫자 자연스럽게 손님을 보게 됐다. 손님이 음식을 어떻게 먹고 어떤 말을 하는지에 집중했다. 그렇게 손님을 보고 귀기울인 지 올해로 11년째다.

- 한 가게의 대표로서뿐만 아니라 손님 입장에서 다른 업장을 찾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흥미롭다. 이것도 하나의 경영 전략인가.

손님이 우리 가게 외 또 어느 가게를 방문하는지 유심히 본다. 의사나 식당 주인이나 내 가게만 홍보되면 좋겠고 내 가게, 내 병원만 잘 됐으면 좋겠는게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꼭 내 가게만 오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주인이고 너는 손님'이라는 식에서 벗어나 사람을 관찰하고 다른 가게를 경험하는 게 필요하다. 막국수집을 연 뒤에도 10년간 손님이 돼 다른 막국수집을 찾아다녔다. 원래 막국수를 좋아해 먹으러 다니던 시절까지 합하면 20년 정도다. 그렇게 얻은 통찰을 우리 가게에 적용하고 손님의 후기를 보고 고쳐나갔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고기리막국수 전경. 11년 전 처음 연 가게를 키워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하루 1,000명이 넘는 손님이 이곳을 찾는다(사진 출처: 다산북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고기리막국수 전경. 11년 전 처음 연 가게를 키워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하루 1,000명이 넘는 손님이 이곳을 찾는다(사진 출처: 다산북스).

- 요즘 후기라면서 자기 입맛에 맞지 않다거나 조그만 불만에도 '별점 테러'를 하고 모욕적인 표현을 쏟아내는 악플 문제가 심각하다. 의료계도 이런 악플 때문에 경영과 평판에 해를 입는다는 목소리가 크다. 악플 때문에 무서워서 후기를 못 보겠다며 차라리 리뷰 시스템을 없앴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오는데.

제일 무서운 손님은 악플을 다는 손님이 아니다. 아무 말 없이 다시는 오지 않는 손님이 제일 무섭다. 애정이 없으니까 언급도 안 한다. 불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거다. 손님의 말을 어떻게 담아내느냐로 식당의 다음 단계가 정해진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불만을 토로하고 '악플'을 달던 손님을 단골 손님으로 만들 수 있다.

처음엔 손님 항의가 거세거나 부정적인 후기를 보면 가게 뒤에 가서 울기도 했다. '내 마음이 그게 아닌데…'하고. 내가 내 일을 너무 사랑하니까 이 음식이 꼭 나 같았던 거다. 그래서 손님의 모든 말이 우리 부부를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음식과 나를 분리한다. 그럼 그 부정적인 내용들 속에서 정말 고쳐야 하는 게 보인다.

- 불만과 악플까지 포용한다는 게 말 처럼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자세가 실제로 큰 도움이 됐나.

우리가 11년 전 처음 만든 막국수와 지금 막국수가 다르다. 손님의 소리를 들으며 수레바퀴 굴리듯 조금씩 진화해온 게 지금 모습이다. 10년 후에는 여기서 또 달라질 수도 있다. '우리 음식이 마음에 안 들어? 그럼 먹지 마!' 이러면 음식이 정지한다. 진화하지 않는 음식처럼 맛없는 음식도 없다.

해외로 유학 다녀온 손님, 먼 지역으로 이사갔던 손님이 몇 년만에 와서는 맛이 하나도 안 변하고 그대로라고 좋아한다. 다 우리가 손님에 맞춰 알게 모르게 진화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먹어도 '여전히 똑같네!'라고 느낀다. 만약 우리가 10년 전 레시피를 고수했다면? 분명 예전만 못하다고 여겼을 거다.

- 손님들도 고기리막국수의 이런 진심을 느끼고 있을까.

손님들이 그걸 모를까. 정말 찰떡같이 다 안다. 여기가 나를 돈으로만 보고 매출로만 보는구나, 자주 오는 사람보다 가끔 와서 한 번에 많이 팔아주는 사람이 더 반갑구나, 내가 빨리 먹고 나갔으면 하는구나, 다 알고 있다. 그게 정말 무서운 점이다.

고기리막국수 대표 메뉴인 들기름막국수와 수육. 물 막국수와 비빔 막국수밖에 없던 시절 단골 손님의 '맛있다'는 말 한 마디에 용기를 내 개발했다. 메밀면을 팔팔 삶아낸 면수도 식전 식후 입가심으로 제공한다.
고기리막국수 대표 메뉴인 들기름막국수와 수육. 물 막국수와 비빔 막국수밖에 없던 시절 단골 손님의 '맛있다'는 말 한 마디에 용기를 내 개발했다. 메밀면을 팔팔 삶아낸 면수도 식전 식후 입가심으로 제공한다.

- 흔히 매스컴을 타거나 입소문 난 맛집은 손님이 늘면서 '예전 같지 않다'는 평을 많이 받는다. 고기리막국수가 유명세를 타고서도 변함 없다는 평을 받는 힘은 어디서 오나.

소위 대박난 집에 가면 너무 바쁘니까 대표가 계산하고 다음 사람 자리 앉히느라 '정말 맛있었다'는 손님 목소리를 못 듣는다. 그렇게 손님과 접점이 없어진다. 우리는 손님을 맞는 '단체 인사' 안 한다. '쇼'를 한다고 손님이 반가워하지 않는다. 병원 문턱을 넘어올 때, 식당 올라설 때 손님이 제일 먼저 느끼는 감정은 낯섦이다. 대체 내가 어딜 쳐다봐야 하나 고민한다. 그 짧은 순간 오직 나를 맞는 따뜻한 눈빛, 반가운 미소를 마주할 때 비로소 손님은 내가 알던 바로 그곳, 내가 찾던 바로 그 가게라는 생각에 안심한다.

이건 애정의 문제고 집중의 문제다. 눈 앞에 있는 한 사람한테 온전히 집중하면 하루에 1,000명이 오든 2,000명이 오든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집중의 힘은 바로 상대방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다. 내가 만든 국수를 소중한 사람과 맛있게 먹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 내 치료를 받고 다시 건강해지고 행복해지려는 환자, 그리고 이들 덕분에 내가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찾아오는 이들에게 애정을 품지 않을 수 없다.

- 고기리막국수 대표로서 앞으로 목표는?

그저 손님과 더불어 좋아하는 막국수를 더 맛있게 먹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매일의 목표다.

- 더 거창한 목표가 있다면?

글쎄, 막국수가 우리 일상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하나의 문화가 되면 좋겠다. 꼭 미술관이나 박물관 가서 보는 것만 문화는 아니니까. 오뚜기와 협업해 밀키트를 낸 것도 그 일환이다. 막국수가 큰 별식이 아니라 집에서 생각나면 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문화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정말 마지막 질문이다. 의료계에도 그렇게 환자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고 '환자경험'을 생각하는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이야기는 이제 강연에서 하겠다. 오늘 한 이야기도 기사에는 반만 실어달라. 나머지는 강연 와서 들으시라고.(웃음)

그래도 하나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진료실에서 환자와 눈을 마주하는 '의사 선생님'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다. 병원 입구를 산뜻하게 꾸미고 키오스크 사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김윤정 환자님 진료실로 들어가실게요'하고 친절히 안내해줘도 막상 진료실에 들어가서 주눅 들고 빨리 나가야 될 것처럼 느껴지면 그 앞의 환대와 친절은 사라져버린다. '내가 의산데 그런 거까지 해야 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진료실에 들어선 환자도 다 안다. 바로 그때 의사의 진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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