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비뇨의학회, 전공의 적정인원 선발 논의
인력 줄고 있지만 증원은 시기상조 여론 우세
병원은 전문인력 부족, 개원가는 무한 경쟁 내몰려
"필수의료 차원에서 근본적인 정부 지원책 나와야"

전공의 정원 증원을 고민하던 대한비뇨의학회가 현재 정원 규모를 유지하기로 했다. 비뇨의학과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증원 논의는 아직 이르다는 이유다. 비뇨의학과 의사들은 학회를 넘어 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비뇨의학회 고민은 이번 2022년도 전공의(레지던트) 모집 정원 100% 달성과 함께 시작됐다. 비뇨의학과는 지난 2017년 정원을 120명에서 78명으로 감축하고 비뇨의학회 차원에서 50명으로 제한해 모집하고 있다. 모집률이 상승세로 돌아서자 대형수련병원을 중심으로 50명 정원 제한을 풀자는 의견이 나왔다. 비뇨질환 진료 수요는 확대되는데 현장 전문인력은 부족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통합학술대회에서 공개된 '비뇨의학과 적정의료인력 수요추계조사'도 전문의 부족 사태를 예측했다. 연구에 따르면 비뇨의학과가 현재 전공의 정원(50명)을 유지했을 때 오는 2035년 비뇨의학과는 최대 6~11% 수준의 인력 부족 사태를 맞게 된다.

그러나 비뇨의학회는 지난 8월 19일과 9월 22일 두 차례에 걸쳐 '비뇨의학과 적정인원 전공의 선발을 위한 회원 의견 수렴 공청회'를 진행한 결과, 당분간 전공의 정원 증원을 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일부 대형병원을 제외한 병원과 개원가가 증원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증원 반대가 76%에 이른 '회원 의견 수렴 조사' 결과도 영향을 미쳤다.

비뇨의학회 정회원과 전공의 회원을 대상으로 전공의 증원과 비뇨의학회 현황 인식을 물은 설문조사에는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11일까지 2주간 회원 357명이 참여했다.

76% 증원 반대 "환경 개선이 더 급해"…"과 역할 축소된다" 우려도

대한비뇨의학회가 자체 정원 50명을 일부 증원하는 안에 대해 회원 76%가 아직 이르다며 반대했다(자료 제공: 대한비뇨의학회).
대한비뇨의학회가 자체 정원 50명을 일부 증원하는 안에 대해 회원 76%가 아직 이르다며 반대했다(자료 제공: 대한비뇨의학회).

학회가 자체적으로 감축한 정원(50명)을 일부 증원하자는 의견에 회원 76%가 '현 상황을 유지하며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며 반대했다. 섣불리 전공의를 다시 증원했다가 '지난 2000년대처럼 공급 초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64%)'는 이유가 가장 컸다. 감축 후 정원을 처음으로 채웠는데 '곧바로 증원하는 것은 성급하다(24%)'는 의견도 나왔다.

올해 100% 모집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소아청소년과 등 다른 과 기피로 인한 풍선효과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전문의는 "최소 5~10년간 충원에 성공한 후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정원 증원보다 비뇨의학과 인식 개선과 수가 향상 등 환경 개선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지난 4월 비뇨의학과 인력 추계 조사에서 오는 2030년부터 전문의 수급이 어려워지기 시작한다는 전망이 나왔다(자료 제공: 대한비뇨의학회).
지난 4월 비뇨의학과 인력 추계 조사에서 오는 2030년부터 전문의 수급이 어려워지기 시작한다는 전망이 나왔다(자료 제공: 대한비뇨의학회).

반면 찬성 측은 정원 증원으로 수련병원이 겪는 전문인력 부족 현상을 타개해야 한다고 봤다. 장래 전체 비뇨의학과 전문의 부족이 예상되는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원을 그대로 유지했다가 비뇨의학과 정체성과 영향력이 위축된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전공의와 젊은 전임의를 배출하지 못하면 당직 부담 증가와 함께 응급·중증 환자 감당이 점점 어려워지고 결국 종합병원급에서 비뇨의학과 역할이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사에 참여한 또 다른 회원은 "전문의 수 감소가 결국 과 영향력 감소로 이어진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회가 전공의 정원 증원을 결정할 경우 수련 질 향상을 전제로 추진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전공의 증원에 찬성한 회원은 "수련 교육 시스템을 확충해 생산성 있는 전문의 집단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수련 질 향상에 대한 고민 없이 증원하면 "수련의 질이 확보되지 않은 병원은 단순히 노동인력 증가 목적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만성 인력 부족 수련병원, 무한 경쟁 몰린 개원가…'구조적 문제"

한편, 비뇨의학과 수련 현장은 극심한 전문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간 지원 미달에 이어 인원 감축이 겹쳤기 때문이다. 이는 전공의 모집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대부분 수련병원이 겪고 있는 비뇨의학과의 현주소다.

이 때문에 전공의가 수련 중인 병원에서는 수련 질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인 '빅5'를 제외하면 대부분 수련병원이 전공의 1~2명으로 과를 꾸려간다. 그만큼 전공의 혼자 감당해야 할 업무량이 많아 제대로 수련하기 어렵다. 80시간 근무 시간을 준수하면서 '서류 업무'까지 해야 하니 정작 술기를 쌓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수련병원에 근무하는 봉직의 62.2%가 '(전공의법에 따라) 근무시간 감소로 적절한 수련 질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차팅이나 동의서 작성 등 수련과 관련 없는 업무가 늘었다(28%)'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펠로우(전임의)나 PA가 있어 수련 기회가 박탈됐다(21.3%)'는 의견도 있다. 레지던트 4년만으로 술기 쌓기가 어려워지자 전임의 단계도 '배워가며' 일하는 기간이 됐기 때문이다. 부족한 전문 인력의 빈 자리를 PA가 채우는 형태도 고착됐다. 이는 다시 수련 질 저하로 이어진다. 비뇨의학과 의사들이 '구조적인 문제'라고 하는 이유다.

전공의가 없는 수련병원은 극심한 인력난에 빠졌다(자료 제공: 대한비뇨의학회).
전공의가 없는 수련병원은 극심한 인력난에 빠졌다(자료 제공: 대한비뇨의학회).

전공의를 모집하지 못한 수련병원은 대부분 '야간 응급실 진료 부담(75.7%)'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전문의가 단순 처치 업무까지 담당해야 하는 것(72.8%)도 문제였다. 당직을 맡을 사람이 없어 수술 환자 관리에 문제를 겪고 있다는 응답도 67.1%에 달했다.

조사 결과처럼 전공의가 없는 병원은 응급·중환자 대응에 취약해진다. 수가는 낮고 처우는 열악하다. 봉직의들은 "중환자가 입원하면 휴일을 포기해야 하는데 보상은 없다. 중환자를 서로 미루는 경향이 생겼다"고 했다. 또 "전공의도 없는데 전문의끼리 업무를 다 못해 (진료가) 어려운 환자는 전원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런 구조에서 후진 양성은 그림의 떡이다. 가르칠 제자도 가르칠 여유도 없다.

한 봉직의는 "과를 이어받아 유지할 잠재적 교수 인력 양성이 불가능하다. 지역 특화 질환을 전수하거나 교육할 수도 없다"고 했다. 업무 부담 때문에 "논문 작업이 줄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개원가는 뚜렷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극심한 경쟁에 내몰렸다(자료 제공: 대한비뇨의학회).
개원가는 뚜렷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극심한 경쟁에 내몰렸다(자료 제공: 대한비뇨의학회).

개원가도 녹록지 않다. 수년에 걸쳐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많은 개원의에겐 먼 이야기다. 비뇨의학과 개원의 66%가 현재 비뇨의학과 개원 환경이 열악하다고 봤다. 긍정적으로 보는 비율은 10%에 그쳤다.

개원의들은 비뇨의학과 개원 환경이 열악한 가장 큰 이유로 '좋은 수익 모델 부재(80.7%)'를 꼽았다. 이런 상황에서 비뇨질환 분야 경쟁이 극심한 것도 개원 환경에 악영향을 끼쳤다. '타과가 비뇨질환 진료를 함께하는 경우가 많고(60.2%)' 현재 '같은 분야 개원의가 많아 경쟁이 심하기 때문(48.7%)'이다. '보험구조가 불합리하다(55%)'는 의견도 많았다.

개원의들은 "개원 병원 수가 적지 않은데 절대적인 환자 수가 부족하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의료전달체계 문제로 상급병원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뇨의학과 위기는 필수의료 위기…정부 적극 해결 나서야

비뇨의학과 의사들은 지금의 위기가 '구조적인 문제'인 만큼 정부가 필수의료 선상에서 강력한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비뇨의학과 의사들은 지금의 위기가 '구조적인 문제'인 만큼 정부가 필수의료 선상에서 강력한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이렇듯 현재 비뇨의학과 위기는 필수의료 문제나 수도권 쏠림 현상, 지역 의료인력 부족과 궤를 같이한다. 따라서 비뇨의학과는 과 차원 자구책만으론 한계라고 보고 있다. 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지원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비뇨의학회 박관진 수련이사(서울대병원)는 최근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인구 고령화와 함께 비뇨질환 진료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비뇨의학과의 필수의료적 성격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는 "전공의를 충원하지 못한 수련병원과 중소 규모 종합병원, 지방 병원은 심각한 인력 부족에 직면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당직 등 높은 부담을 떠안다가 결국 병원을 떠나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면서 "젊은 교수들의 이직률이 증가하면서 지역 외과 병원들이 응급실을 폐쇄하고 있는데 비뇨의학과도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고 우려했다.

박 이사는 "모두 구조적인 문제다. 학회가 수련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전공의 정원으로 고민하고 있지만 지금 비뇨의학과가 겪는 위기는 학회가 조정해서 해결하기 어렵다"면서 "결국 정부가 직접 현장의 위기를 목격하고 전면적인 지원 정책을 수립해야만 한다. 지역·의료 불균형과 필수 의료 위기라는 선상에서 비뇨의학과 대책을 고민할 때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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