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현장 경험 집대성한 비대면진료연구회
찬반 논란 넘어 안전한 비대면 진료 방향 제시
"소외된 의료계 목소리 담아 관련 의제 이끌겠다"

(사진 왼쪽부터)서연주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 이의선 아산케이의원 원장, 정환보 밸러스본의원 원장(회장), 권후정 변호사, 김승범 제너럴닥터 대표. 
(사진 왼쪽부터)서연주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 이의선 아산케이의원 원장, 정환보 밸러스본의원 원장(회장), 권후정 변호사, 김승범 제너럴닥터 대표.

더 안전하고 발전적인 비대면 진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젊은 의사들이 의기투합해 '비대면진료연구회'를 설립했다. 의료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갑론을박만 벌이며 전진하지 못하는 의료계 내부의 틀을 깨기 위해서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출신 의료윤리 전문가인 정환보 밸러스본의원 원장과 제너럴닥터 김승범 대표, 비대면 진료 전문 의원으로 주목받은 이의선 아산케이의원 원장, 의료 현안마다 젊은 의사의 목소리를 내온 서연주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가 핵심 멤버다. 여기에 권후정 변호사도 합류했다. 권 변호사는 제3자의 입장에서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을 비롯해 젊은 의사 8명이 모여 비대면진료연구회를 만들었으며 회장은 정 원장이 맡았다.

비대면진료연구회에 참여하는 젊은 의사들은 의약분업 사태부터 2020년 의사 단체행동을 지켜보며 위기감을 느꼈다고 했다. 중요한 사회 변화마다 의사가 주도적으로 아젠다를 형성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해 실패를 거듭해왔다는 것이다. 젊은 의사들은 비대면 진료 영역에서도 비슷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고 플랫폼 업체가 밀고 있지만 정작 의료제공자인 의사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비대면진료연구회가 첫 번째 활동으로 '비대면 진료 가이드라인' 개발을 선택한 이유기도 하다. 정부도, 업체도 가지지 못한 의사들만의 무기인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비대면 진료 방향을 제시하고 그간 소외됐던 의사들의 목소리를 더 크게 키우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정부와 업체가 산업 발전과 경제 논리 빠져 소홀히 한 '환자 안전' 개념을 첫 번째 가치로 세웠다.

청년의사는 지난 13일 이들과 만나 비대면 진료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게 된 이유와 필요성에 대해 들었다.

의료계 비대면 진료 대원칙 수용

"피할 수 없다면 선도하자는 생각"

일각의 우려와 달리 비대면진료연구회가 정의한 비대면 진료는 전복적이지 않다. 대면진료의 보조 수단으로 일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사용해야 하며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료계 대원칙을 그대로 담았다.

정환보: 비대면 진료는 결국 '정보 기반의 진료'로서 명확한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그 한계 내에서 정보를 제대로 취합하고 진료를 요청한 이용자(환자)에게 더 나은 건강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 연구회가 생각하는 비대면 진료의 개념이다.

김승범: 우리 연구회가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은 '환자 안전'이다.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의료계를 둘러싼 환경도 그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려워졌다. 비대면 진료는 그런 의료 환경 변화의 한 측면일 뿐이다. 따라서 이를 무조건 막거나 외면하기만 하면 오히려 우리가 우려하는 문제를 피할 수 없고 환자 안전도 위협받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제적으로 환자 안전을 지키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게 더 안전하고 발전적인 미래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비대면진료연구회는 온라인 협업 서비스 '노션(Notion)'을 이용해 의견을 공유하고 가이드라인을 개발했다. 젊은 의사들끼리 모여서 가능한 작업 방식이었다고(이의선 원장 제공).
비대면진료연구회는 온라인 협업 서비스 '노션(Notion)'을 이용해 의견을 공유하고 가이드라인을 개발했다. 젊은 의사들끼리 모여서 가능한 작업 방식이었다고(이의선 원장 제공).

정부 가이드라인은 플랫폼에만 집중

'환자 안전' 첫째로 두고 환자·의사 의무 규정

찬반 논란 벗어나 옳은 방향 설정할 때

사실 비대면 진료 가이드라인은 이미 존재한다. 정부가 지난 8월 공고한 '한시적 비대면진료 중개 플랫폼 가이드라인'이다. 그러나 제목에서 보듯 플랫폼이 준수해야 할 의무와 업무사항만 제시하는데 그쳤다. 일각에선 '안 되는 거 빼고 다 해도 된다'며 플랫폼 고삐를 풀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반면 연구회 가이드라인은 의사와 환자의 의무를 규정하는데서 출발한다. 환자 안전을 첫 번째 가치로 두고 진정한 의미에서 모두가 안전한 비대면 진료 환경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권후정: 민감한 이야기지만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제목부터 '한시적'임을 전제로 한다. 우리 연구회는 그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비대면 진료를 보고 있다. 중간에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든 제도화의 길을 가든 비대면 진료가 '계속 된다면'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하는가를 전제로 만들었다. 정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과 가장 큰 차이점은 의무 주체가 아예 다르다는 점이다. 정부가 중개사업자인 플랫폼에만 가이드라인을 줬다면 우리는 환자와 의사의 의무 설정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비대면 진료의 원칙과 방향을 첫 단계로 먼저 제시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서연주: 환자의 의무를 설정한 이유도 결국 환자 안전 때문이다. 비대면 진료를 하다 보면 환자가 자기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 것은 물론 숨기거나 속이는 상황이 발생한다. 비대면 진료를 받는 입장에서 지켜야 할 사항이 제대로 자리 잡아야 비대면 진료가 정상적인 의료 생태계로 포용될 수 있다.

이의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정부는 지금 비대면 진료를 무조건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올바르게 도입하는 게 더 중요한 시점이다. 정부도 옳은 방향으로 제도가 도입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연구회는 그 옳은 방향을 설정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강조해서 말하지만 비대면진료 '무조건 찬성' 같은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비대면 진료 현장 경험 담은 '사례집'도 개발

실제 사례 통해 비대면진료 장·단점 도출 가능

"'현장 경험'이야말로 의료계 가장 큰 힘 될 것"

노션을 통한 비대면 진료 사례 수집과 사례집 작성 과정. 비대면 진료 경험이 풍부한 정환보 회장과 이의선 원장, 김승범 대표가 자신의 경험을 적극 공유했다(이의선 원장 제공).
노션을 통한 비대면 진료 사례 수집과 사례집 작성 과정. 비대면 진료 경험이 풍부한 정환보 회장과 이의선 원장, 김승범 대표가 자신의 경험을 적극 공유했다(이의선 원장 제공).

가이드라인의 또다른 특징은 '비대면 진료 사례집'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실제 비대면 진료를 해봤고, 하고 있는 정 회장, 이 원장, 김 대표가 현장에서 겪은 사례를 종류별로 나눠 실었다. 연구회는 사례집이 의료진에게 실질적 의미에서 가이드라인이 되고 앞으로 비대면 진료 논의 과정에서 의료계 주장에 힘을 싣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의선: 현재 비대면 진료 시장은 코로나19로 한시적으로 열렸지만 그 덕에 짧은 시간 안에 굉장히 많은 진료 경험이 쌓였다. 그 경험들 속에 비대면 진료의 장점과 문제점이 담겨 있다. 누구라도 나서서 이걸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우리가 먼저 사례 수집의 중요성을 보여주면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다른 의사들도 본인이 가진 사례와 시각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제가 비대면 진료를 많이 했다 하더라도 빙산의 일각이다. 이렇게 비대면 진료 경험을 체계적으로 누적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도 우리 연구회 목표 중 하나다. 사실 정부 주도로 했어야 하는 일인데 아직까지 그런 움직임이 없는 점이 아쉽다.

정환보: 처음 비대면 진료가 무제한 자율 형태로 풀리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약이 무분별하게 처방되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런 부작용 사례가 알려지면서 관련 규정이 조금씩 고쳐졌다. 지금은 우리도 비대면 진료가 처음이라 깜짝 놀랐거나 좋지 않았던 점 위주로 서술했지만 앞으로 좋은 사례도 함께 쌓이면 의사와 환자 모두가 안전하게 진료하고 안전하게 진료받는 환경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승범: 의사가 직접 겪은 현장 사례는 '아마 이럴 것이다'라고 가정하는 수준을 뛰어넘는 힘을 가졌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나. '누구는 이랬다더라, 누구는 저랬다더라'가 아니라 이런 사례가 모였을 때 제대로 된 맥락이 도출되고 의료계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앞으로 비대면 진료의 향방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이 사례집이 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서연주: 주지해야 할 점은 사례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비대면 진료라는 시스템이 환자 안전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거나 이를 촉발한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 시점에서는 비대면진료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우리 연구회의 대전제다. 환자 안전이 위험해진다면 비대면진료의 한시적 허용을 중단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 정비한 뒤 다시 가는 게 더 맞는 선택일 것이다.

중개사업자가 비대면진료 주인공된 현실

환자 안전 위한 역할과 책임 고민해야

김승범: 이전까지 의료법의 '빈틈'을 대하는 정부 태도는 '안 된다'는 규제 일변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가장 이득을 본 것이 이 비대면 진료 중개사업자들이다. 환자나 의료인이 아니라 중개사업자들이 비대면 진료의 '주인공'이 됐고 정부는 거기 보조를 맞추는 상황이다. 물론 이들이 무조건 악이고 의료진이 선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업자들은 사업자들대로 의료인은 의료인대로 제대로 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거다.

정환보: 가이드라인에서 비대면 진료 플랫폼 사업자가 아닌 '중개사업자'라고 명명한 이유는 의료의 참여자로서 책무를 더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로톡이나 배달의 민족 같은 플랫폼 업체와 달리 비대면 진료 분야는 생명과 직접 맞닿아 있다. 사업자들도 모 플랫폼 캐치프라이즈처럼 '오늘도 우리는 사람을 살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의 시선에서 더 깊이 들여다봤을 때 우려스런 지점이 많다.

한 예로 감염병 치료는 적시에 항생제를 투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비대면 진료를 하다보면 가끔 '약을 못 받았다'는 전화를 받는다. 의사로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큰일로 번지지 않았지만 자칫하면 패혈증이나 골반염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배송 사고는 중대한 위험이다. 의사가 환자 안전에 대한 책무를 지는 만큼 중개사업자들도 자신을 '의료 플랫폼'으로 명명하면서 져야 할 '생명의 무게'를 고민했으면 한다.

권후정: 의료 분야에 새로운 주체가 등장한 만큼 관계 설정도 새롭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윤리적 관점이나 시장 측면에서는 물론 법·제도적 측면에서 각 주체가 어떻게 관계를 설정할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닥터나우를 비롯해 비대면 진료 중개사업자들이 정체성과 역할을 스스로도 정의 내리지 못하고 있다. 광고 플랫폼인지 아니면 결제 대행업체인지,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자인지 정체성을 명확히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도 제시하지 못하는 상태다. 중개사업자들이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야 비로소 의사와 환자도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선명해진다. 이게 지금 중개사업자들이 고민해야 할 과제다.

가이드라인 발표로 연구회 시즌1 마침표

다양한 사회 구성원 포용해 시즌2로 발전

연구회는 이번 가이드라인 발표가 그간 비대면진료 논의에서 소외됐던 의료계 목소리가 사회적 공감을 사는 첫 단계가 되길 희망했다.
연구회는 이번 가이드라인 발표가 그간 비대면진료 논의에서 소외됐던 의료계 목소리가 사회적 공감을 사는 첫 단계가 되길 희망했다.

비대면진료연구회가 만든 가이드라인은 오는 17일 서울시의사회 원격의료연구회 세미나에서 첫 선을 보인다. 연구회는 이를 연구회 활동 '시즌1'의 마지막이자 '시즌2'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산하 젊은의사협의체와 만나 비대면 진료를 젊은 의사의 중요 의제로 다룰 생각이다. 오는 12월에는 한국보건의료포럼과 연계해 국회 토론회도 준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부·국회 등 정책입안자들과 직접 소통할 기회도 만들어간다는 구상이다.

정환보: 이번 가이드라인 발표를 우리 연구회 '시즌1' 마침표로 보고 있다. 현재 비대면진료 상황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의료계에서 표출되는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왜냐면 지금까지 비대면진료 논의에서 의료제공자인 의사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된 적도, 제시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 발표가 의료계 목소리를 듣는 매개체가 되길 바란다. 우리의 '마침표'가 비대면진료 논의의 시발점이 되면 좋겠다.

서연주: 가이드라인이 발표되면 찬반 논쟁부터 시작해 여러 논의가 본격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런 '논의'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 생각이 다 옳고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활동이 더 많은 사람이 이 주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새로운 문제를 탐색할 수 있는 계기이자 발판이 됐으면 한다.

김승범: 이를 위해 '시즌2'는 참여를 더 늘리는 방향으로 준비하고 있다. 연구회가 더 오픈된 커뮤니티 형식을 갖출 수도 있고 제한된 참여자를 구성원으로 받을 수도 있겠다. 어떤 방향이든 이전까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까지 폭넓게 다루도록 노력하겠다.

권후정: 결국 중요한 것은 의사들이 사회적 공감을 받고 목소리에 힘을 싣기 위해 더 다양한 주체를 포용하고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을 만들 때도 과연 대중에게 어떻게 비춰질 것인지 끊임 없이 검토했다. 변호사이자 '의료계 바깥 사람'인 제가 연구회에서 활동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의선: 마지막으로 비대면 진료의 참여자 모두 최우선 아젠다가 환자 안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했으면 한다. 단순히 플랫폼에 침해 당한 의사들 밥그릇 지킬 방법을 찾자는 게 아니다. 환자 안전이 얼마나 위험해졌는지 직접 봤기 때문에 현장의 목소리를 내자고 나선 것이다. 이때 '참여자'는 의료진이나 정부, 사업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환자 자신이 될 수도 있고 병원의 기술팀이나 환경미화팀이 될 수도 있다. 의료 참여자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더 쉽게 낼 수 있을 때 환자가 더 안전하고 질적으로 더 좋은 의료를 할 수 있는 세상이 이뤄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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