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모든 응급실서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처방 조치
일부 응급실 문의 전화에 코로나19 환자 내원 늘어
응급의학의사회 “경증 환자 진료까지 수행할 여력 없다”

질병관리청은 추석 연휴인 9일부터 12일까지 모든 응급실에서 먹는 코로나19 치료제를 처방하도록 했다. 이에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응급실 기능을 무시한 조치라는 반발이 나왔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질병관리청은 추석 연휴인 9일부터 12일까지 모든 응급실에서 먹는 코로나19 치료제를 처방하도록 했다. 이에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응급실 기능을 무시한 조치라는 반발이 나왔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방역 당국이 발표한 추석 연휴 기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인해 응급의료 현장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먹는 코로나19 치료제인 ‘팍스로비드’와 ‘라게브리오’를 응급실에서 처방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는 8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추석 연휴 동안 한시적으로 모든 응급실에서 입원 환자와 외래 환자에 대해 먹는 치료제 처방이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먹는 치료제 처방은 보건소에서도 가능하며 당번약국도 지정해 운영한다.

단, 응급실 내원 쏠림 방지를 위해 비응급 환자는 호흡기환자진료센터(원스톱진료기관)를 우선 방문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이미 응급실에는 먹는 치료제 처방 문의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먹는 치료제를 처방받기 위해 응급실을 찾는 코로나19 환자도 늘고 있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현장을 무시한, 일방적인 조치라며 반발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이날 긴급 성명서를 내고 “응급실은 24시간 열려 있다고 해서 의료 편의점은 아니다”라며 응급실 먹는 치료제 처방 방침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명절 연휴를 앞두고 긴장감이 높아가는 응급의료 현장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더 많은 업무를 응급실에 강제로 떠넘기는 전형적인 관치행정”이라며 “벌써부터 일부 응급실은 (먹는 치료제) 처방이 가능하냐는 문의 전화와 처방을 요구하는 환자들과 실랑이가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입원이 필요한 중증 환자는 응급실에서 먹는 코로나약 처방이 필요하지 않다. 경구 약을 응급실에서 처방해야 하는 환자는 경증으로 귀가할 환자인데 이런 환자들은 원래 보건소나 1차 의료기관에서 담당할 환자”라며 “명절 기간 응급실은 경증 코로나19 환자 진료까지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응급실은 임시 외래 진료실이 아니라 응급환자를 위한 공간이라며 이번 조치로 응급진료 지연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정부와 정책 당국은 왜 먹는 치료제 처방을 많은 의료인이 주저하고 어려워하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먼저 고민해 보길 바란다”고도 했다.

또한 현장 의료진과 그 어떤 논의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시행됐다고 비판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최소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이야기라도 들어야 하는 것이 적절한 순서”라며 “말로는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을 줄이자고 하면서 정작 붐비는 명절에는 경증 환자까지 보라고 강요하는 게 적절한 대책이냐”고 반문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이러한 잘못된 결정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응급의료진과 응급환자들”이라며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응급실에서 감당하지 못할 업무를 연휴를 앞두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질병청과 보건복지부의 강압적 태도에 좌절과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응급의료체계는 더 이상 쥐어짠다고 나올 것이 없다. 보건소와 공공의료자원을 총동원해 최대한 응급의료체계에 부담을 덜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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