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부산대병원 양유진 교수, 1~2년 내 지방 완전 붕괴 경고
인력 63% 수도권 대형병원 집중…지방 소아혈액종양 의사 소멸
“상처투성이로 병원을 떠나는 동료들…국가 차원에서 지원 필요”

양산부산대병원 소아혈액종양클리닉 양유진 교수는 소아암 환자를 지키려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산부산대병원 소아혈액종양클리닉 양유진 교수는 소아암 환자를 지키려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이 나는 소아암 환자를 직접 돌보지 못하고 서울로 보내는 일이 늘고 있다. 보호자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치료받길 원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지만 소아암 환자 한명을 더 진료할 여력이 없다.

양산부산대병원 소아혈액종양클리닉 양유진 임상부교수의 일상이다. 얼마 전에도 갑작스런 발열로 응급실을 찾은 소아암 환자를 서울로 보냈다. 보호자는 항암치료는 서울 소재 의료기관에서 받더라도 응급상황이 발생하거나 수혈 등 부수적 치료는 거주지와 가까운 양산부산대병원에서 받길 원했다.

양 교수도 미열에도 쉽게 부서지는 소아암 환자이기에 어떻게든 진료하려 했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못했다. 인력은 부족하고 병상은 꽉 찼다. 양 교수는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고, 그 환자는 그날 밤 서울로 발걸음을 돌렸다.

양 교수도 두 아이의 엄마지만 병원에 있는 아픈 아이들을 돌보느라 '내 아이'에게는 많은 시간을 내주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산타클로스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병원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마 말고 우리를 사랑하는 엄마"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의사들이 밥 그릇 지키려고 싸운다거나 환자를 상대로 돈을 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속상하다고 했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병원에서 근무하다 양수가 터져 바로 분만실로 향해야 했다.

그럼에도 양 교수가 여전히 현장에서 환자 곁을 지키며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환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게 하고 싶어서다." 양 교수는 "소아혈액종양 의사들에게 우선은 환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지켜온 의료 현장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부족이 세부·분과전문의 부족으로 이어지면서 소아암 환자를 진료할 의사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부작용은 의료 현장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양 교수는 "의사의 신념과 소명감에만 기대서는 바뀌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2022년 현재 전국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분포(자료제공: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2022년 현재 전국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분포(자료제공: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 따르면 현재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67명 중 46.3%가 10년 내 은퇴를 앞두고 있다. 더욱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인력의 62.7%가 집중되면서 지방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소멸 직전에 놓였다.

부·울·경 지역 가운데 동아대병원과 인제대백병원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있지만 소아암 환자 입원 치료까지 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하다. 해운대병원과 울산대병원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은퇴 후 후임을 구하고 있다.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3명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7명이 있는 양산부산대병원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나, 지역 내 발생하는 소아암 환자들을 모두 품을 수는 없는 형편이다. 더욱이 소청과를 지원하는 의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조만간 4년차 전공의 2명이 의국을 떠나면 인력은 더 준다.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3명 중 1명은 정년을 2년 남겨두고 있다.

양 교수는 “지방 대학병원 중 전공의도 아예 없고 전문의도 소수인 심한 곳들도 있다. 전공의가 없으니 일주일에 2~3번 당직을 서야 하고 외래로 온 환자 50~60명을 진료해야 한다”며 “뿐만 아니다. 소아암 환자는 365일 24시간 콜을 받는다. 환자안전을 지키며 목숨을 살리려면 담당하는 환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부산에 사는 환자가 지역 대학병원에 진료예약을 해도 그곳에서 입원 치료를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며 “소아암 환자를 진료 할 의사들이 하나 둘 줄면서 지방 환자들은 서울로 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양 교수는 “환자 안전을 의사인 내가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이미 왔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이라며 “이미 지방은 1차 방어선이 무너졌다. 양산부산대병원도 오래 버틸 수 없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2차 방어선이 무너지면 서울로 올라가는 환자는 더 많아지고 그로 인해 서울도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모든 걸 쏟아 부었는데 남은 건 민원과 민사소송 뿐

인력 수급이 절실하지만 중증 진료를 할수록 적자가 발생하는 수가 구조 때문에 지원은 더 주는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현장 상황은 열악해지고 있다. 남은 인력을 '갈아 넣어' 겨우 버티고 있지만 문제가 터지면 쏟아지는 민원과 송사에 오히려 현장을 떠나는 의사가 늘고 있다는 게 양 교수의 전언이다.

양 교수는 “소아 백혈병 환자가 5일 동안 입원해 치료를 받는 수가와 소아폐렴 환자나 장염환자가 같은 기간 입원해 받는 수가가 비슷한 수준”이라며 “그러니 병원 입장에서는 소송도 없고, 100% 완치될 수 있으면서 병상 가동률도 높은 질환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로 이 병원에 온 지 8년차인데 그간 소아혈액종양 분야를 전공하겠다는 의사가 한 명도 없었다”며 “오히려 같이 일하던 동료와 후배들이 '모든 걸 쏟아 부었는데도 돌아오는 건 민사소송밖에 없다'며 상처투성이로 병원을 떠났다”고 했다.

양 교수는 인력 수급을 위한 즉각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의사인력 증원이나 공공의과대학 신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정부를 향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살릴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양 교수는 “급여나 근무조건을 파격적으로 올려서라도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며 “하지만 공공의대 설립이나 의대정원 증원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환경은 바뀌지 않았는데) 소아과 의사가 없으니 관련 분야 인력을 양성하는 의대를 만든다고 누가 지원하겠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하는 논리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소아암 생존율은 80%가 넘는다. 3~5세 백혈병 아이를 2~3년 잘 치료해 주면 이 아이는 100세까지 살 수 있다. 소아암 환자 10명 중 8명이 살아서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다"며 "낳으라고만 할 게 아니라 태어난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게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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