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응급의료 컨트롤타워 부재…코로나19 사망자↑
2급 법정감염병 전환으로 중증 발열환자 진료 살릴 방안 마련해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응급환자 정의…“필수의료 부합”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이 불을 지핀 ‘필수의료 분야’ 논쟁으로 의료계가 들썩이고 있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유행으로 붕괴 직전에 내몰린 응급의료 현장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반복되는 유행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 전무하다보니 발열 환자들은 음압격리실이 있는 응급실을 찾아 구급차를 타고 전전하는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중증환자들이 제 때 치료받지 못한 채 사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 80대 코로나19 환자는 재택치료 중 격리 해제까지 몇 시간을 남겨두고 증상이 악화돼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을 전전하다 결국 심정지가 일어나 사망했다.

코로나19 고위험군인 32주 산모도 고열로 응급실을 찾았지만 만석인 음압격리실 상황으로 인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고열로 산모는 물론 태아 상태도 위험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결국 산모는 1시간을 기다려 수액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게 의료진들의 증언이다.

현장의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논의 만큼이나 응급의료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해 늘고 있는 코로나19 사망자를 살리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26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2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응급의료 현장 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왼쪽부터 최석재 홍보이사, 김윤성 학술이사, 이형민 회장, 김태훈 정책이사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김윤성 학술이사는 26일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응급의료 상황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재난상태”라며 “119는 발열환자를 싣고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헤매다 응급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고 밤새 울리는 전화는 확진자인데 갈 곳이 없다는 연락”이라고 말했다.

김 학술이사는 “응급실 상황이 이러한데 정부는 대응여력이 충분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며 “지난 3년간 효과적이었던 응급의료정책은 한 번도 없었고 아직도 발열환자, 확진자에 대한 제대로 된 응급의료는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 아무런 대비가 없기 때문에 다음 유행이 와도 똑같이 사망자는 생길 것”이라고 했다.

이에 응급의학의사회는 코로나19의 법정감염병 등급을 현행 1급에서 2급으로 하향 조정해 코로나19 발열환자들이 제 때 적정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응급의료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김 학술이사는 “의미없는 확진자수 카운트를 중단하고 2급 법정감염병에 준하는 관리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코로나19 확진자를 일반병동에서 진료하라고 하지만 원내 감염을 우려해 대부분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정감염병 등급을 2급에 준해 관리체계를 전환하면 일반 응급실 병동에서 환자를 볼 수 있다”며 “가능하면 코호트 격리구역을 지정해 감염 확산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면 된다. 지금처럼 유지 된다면 열나는 코로나19 확진자는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응급의료 현장이 코로나19 유행 동안 붕괴 위기를 겪고 있는 이유로 ‘응급의료 컨트롤타워 부재’를 꼽았다.

이에 응급의료기관들을 지휘 감독하고 응급의료 관련업무 조정과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중앙응급의료센터를 국립중앙의료원 산하가 아닌 별도로 독립시켜 응급의료 전반을 아우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형민 회장은 “응급의료기관들의 혼란과 붕괴 위기는 단순히 필수의료 인력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시설과 장비, 관리, 시스템 등 전반적인 응급의료 인프라의 대응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고 응급의료 현장과 관리감독 기관의 의사소통 부재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응급의료시스템은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대응 뿐 아니라 중증응급환자와 외상환자의 적절한 응급처치를 위한 구조, 이송, 최종치료에 이르는 다양한 업무를 적절하게 수행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이런 응급의료의 특수성과 다양한 역할수행의 적절성을 위해 응급의료의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독립적인 컨트롤타워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응급의학과를 제외하고 제대로 된 응급의료 대책이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더불어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논의를 시작함에 있어 ‘필수의료’에 대한 전문가들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응급환자의 정의를 들어 응급환자를 적절하게 치료하는 게 필수의료 개념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응급환자는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않으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다.

김태훈 정책이사는 “필수의료는 의대정원만 늘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당장 현장 의료진들도 좌절과 탈진으로 현장을 이탈하고 있는데 의사정원을 확대해 먼 장래에 필수의료의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정책이사는 “필수의료에 대한 정의가 우선이며 최종목표 설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전문가 논의체를 즉각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또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응급환자에 대한 적절한 처치가 가능하도록 지원과 계획을 수립하는 게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당장 필요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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