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PCR 진단시약 검출 유전자 개수 기준 삭제
美FDA, 한국과 반대로 다중 유전자 검출 권고로 가이드라인 개정
“유전자 1개만 검출하는 제품, 돌연변이 생기면 속수무책”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코로나19 검출 유전자 개수 권고 기준을 삭제한 ‘코로나19 체외진단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과 ‘고위험성 감염체의 성능 평가 가이드라인’을 지난 12일 공포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코로나19 검출 유전자 개수 권고 기준을 삭제한 ‘코로나19 체외진단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과 ‘고위험성 감염체의 성능 평가 가이드라인’을 지난 12일 공포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검사체계를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빠르게 진화하면서 많은 돌연변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RT-PCR 진단시약 제품이 검출하는 유전자 개수 권고 기준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지난 13일 ‘코로나19 체외진단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과 ‘고위험성 감염체의 성능 평가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코로나19 검출 유전자 개수 권고 기준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PCR 진단시약 제품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자 2개 이상을 검출하도록 권고했던 기준을 삭제한 것이다. 표적 부위 유전자가 1개여도 된다는 의미다.

식약처는 PCR 진단시약 기준을 완화하는 과정에서 질병관리청이나 대한진단검사의학회와는 논의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는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유럽 등에서 검출 유전자 개수를 별도로 제한하지 않은 점을 고려한 조치라고 했다.

하지만 PCR 진단시약이 표적하는 유전자 부위를 1개로 완화할 경우 해당 유전자에 돌연변이(target site mutation)가 생기면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한국 식약처와 반대로 가이드라인을 개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FDA는 14일(현지시각) 업데이트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다중 유전자를 검출하도록 PCR 검사를 설계하라고 권고했다. 그래야 오미크론 변이체가 PCR 검사 민감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 감염 여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검출 유전자 개수를 제한하지 않은 WHO 가이드라인은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지난 2020년 초에 제정된 것으로 변이 바이러스 출현을 고려하지 못한 기준이라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진단검사의학회 코로나19대응TF 간사인 홍기호 세브란스병원 교수는 식약처가 PCR 검사의 정확도마저 떨어뜨리는 조치를 취했다고 비판했다. 식약처가 개정한 가이드라인대로 PCR 진단시약을 설계하면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PCR 진단시약이 표적으로 삼는 N유전자에서 단일염기서열 변이(single nucleotide variant)가 발생해 PCR 검사의 민감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Annals of Laboratory Medicine’에 지난 1월 발표하기도 했다.

홍 교수는 “기존에는 PCR 진단시약이 유전자 2개 이상을 검출하기 때문에 표적 부위 중 한 곳에 돌연변이가 생겨도 다른 부위에서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식약처는 지금 이 같은 방식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개정된 기준대로) PCR 진단시약을 유전자 1개만 검출하도록 설계했는데 그 부위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바이러스 배출량이 많아도 잡아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기존에는 유전자 2개 이상을 검출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어서 정확도가 떨어지는 PCR 진단시약이 국내에 수입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단이 없어졌다”며 “유전자 1개만 검출하면 위양성 문제도 생길 수 있고 PCR 검사에 대한 신뢰도마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 교수는 “이제 와서 기준을 완화해도 실익이 없다. 신속항원검사도 다 풀었는데 PCR 검사마저 이런 식으로 가면 안된다. 잘못된 조치”라며 “WHO 기준보다 우리나라가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강조하더니 한순간 국제 기준에 맞추겠다며 완화했다. WHO 기준은 저개발국가에도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완화된 기준을 갖추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식약처가 코로나19 진단검사체계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진단키트나 시약을 개발하는 회사들은 유전자 검출 부위나 서열을 다 공개하지 않는다. 돌연변이가 해당 키트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다는 의미”라며 “결국 사용자가 성능이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다른 PCR 진단시약을 또 사용해보는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 식약처는 사후 평가나 검증체계도 갖추지 않고 있다. 미국 FDA처럼 제품을 수거해서 검증하지 않는다”라며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진단 제품을 수거해서 검증해보면 좋지만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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