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후두개염 진단한 전공의, 집유
재판부 “응급상황 대비했어야" 지적
의료계 "형사처벌까지 내려야 하나"

출처: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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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당직을 서던 대학병원 전공의가 급성후두개염으로 진단한 응급 환자를 응급실까지 혼자 가도록 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환자는 외래 진료실에서 후두 검사를 받은 후 응급실로 혼자 이동하던 중 기도가 막혀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며 병원 도착한 지 3시간여 만에 사망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번 판결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법조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은 지난달 16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의사 A씨에게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건은 6년 전인 2016년 6월 18일 새벽에 발생했다. 당시 A씨는 부산대병원 이비인후과 전공의 1년차로 혼자 야간 당직 근무를 서고 있었다. 이날 자정 급성후두개염이 의심되는 환자 가 부산대병원으로 응급 이송됐다. 이송 당시 환자의 체온과 맥박, 심전도는 모두 정상이었다.

A씨는 이비인후과 외래진료실에서 환자의 후두를 검사했고 급성후두개염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환자를 응급실로 혼자 돌려보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외래진료실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걸리는 응급실로 이동하던 환자가 호흡 곤란으로 쓰러진 것이다. 이 환자는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결국 급성후두개염으로 사망했다.

재판부는 “후두경 검사로 환자의 상태가 심각한 것을 인식했고 응급실까지 이동하는데 5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이 경우 응급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 의료진이 피해자와 동행해야 한다”며 “피해자에 대한 CT 검사 영상, 전원 경위 등을 전달받았기 때문에 응급상황에 대한 대비를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A씨가 사건 당시 전공의 1년 차였고 혼자 당직 근무를 하고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시스템 한계를 의사 개인에게 책임지워선 안돼"

의료계는 이번 판결에 우려를 표했다. 의사 개인에게 너무 과중한 책임을 묻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시스템을 보완해야 하는 문제를 전공의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의협 박수현 대변인 겸 홍보이사는 “응급실 인력 등이 제한돼 있어서 모든 환자를 동행하기 어렵다. 시스템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시스템적으로 한계가 있는데 의사 개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전공의가 다른 환자를 놔두고 동행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다른 환자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는가”라며 “의사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끝낼 게 아니라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민사소송을 해서 증거를 모은 뒤 형사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다반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사건도 부산대병원을 대상으로 한 민사소송부터 제기됐었다. 유족은 부산대병원에 4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병원이 60%의 배상 책임을 지웠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경희대병원)은 “환자 치료 결과에 대해서는 의사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해 책임질 수는 없지 않은가”라며 “형사처벌까지 받아야 하는 잘못인가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어떻게 보면 의사들에게 가혹하사 싶은 판결이 늘었다. 사회분위기와도 연관돼 있는 것 같다”며 “이런 판례가 늘면 생명을 다루는 필수의료 분야는 더 어려워진다.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중환자나 위중한 응급환자를 보려고 하겠느냐”고 했다.

이 회장은 또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민사소송을 해서 증거를 모은 뒤 형사소송을 하는 게 공식처럼 돼 가고 있어서 우려된다”며 씁쓸해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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