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실화탐사대’ 결핵·NTM 권위자인 고 교수의 죽음 다뤄
“도와달라는 불안·초조 보여”…“환송회에서 모멸감 느꼈을 것”

MBC '실화탐사대'는 지난 6월 30일 고원중 교수의 죽음을 다룬 '버려진 의사'를 방송했다(사진: MBC 방송 화면 재구성).
MBC '실화탐사대'는 지난 6월 30일 고원중 교수의 죽음을 다룬 '버려진 의사'를 방송했다(사진: MBC 방송 화면 재구성).

결핵·비결핵항산균(NTM) 분야 권위자인 고원중 교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다시 공론화됐다.

고 교수는 18년 4개월 동안 몸담았던 삼성서울병원을 떠나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던 지난 2019년 8월 21일, 호흡기내과 의료진과 환송회를 가진 뒤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관련 기사: 결핵·비결핵항산균 권위자였던 故고원중 교수의 ‘외로움’).

결핵과 비결핵항산균 분야에서 굵직한 업적을 많이 남겼던 고 교수가 숨졌다는 소식에 의학계는 큰 별이 졌다며 애도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환자와 동료들이 고 교수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다.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의사들도 많다.

MBC 시사프로그램 ‘실화탐사대’가 지난 6월 30일 고 교수가 당시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를 다룬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송 제목인 ‘버려진 의사’처럼 고 교수는 주 80~100시간을 근무하면서 환자를 진료하고 뛰어난 연구 업적을 남겼지만 삼성서울병원을 떠나야 했다.

고 교수가 사직서를 제출하며 병원장과 호흡기내과장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니 괴롭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위드유정신건강의학과 김선주 원장은 “그만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조금 도와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좀 안되겠느냐는, 불안과 초조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고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힘들어했다. 고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에서 결핵과 비결핵항산균 환자를 진료하면서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규모로 코호트를 구축한 상태였다.

호흡기내과 동료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했다는 내용도 다뤄졌다. 국내에서 ‘메르스(MERS)’가 유행했던 지난 2015년 분과장이었던 고 교수는 외래 진료를 중단하라는 지침을 교수들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일부 교수가 이를 거부하고 외래 진료를 하겠다고 하면서 고 교수와 충돌했고 과 내 분위기도 더 냉랭해졌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지난 2019년 8월 21일 있었던 고 교수 환송회로도 이어졌다. 고 교수는 예정된 시각에 맞춰서 환송회 장소에 도착했지만 동료들은 없었다. 동료 교수들은 10분 정도 후부터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지만 이후 진행된 환송회에서도 분위기는 싸늘했다고 한다. 고 교수만을 위한 환송회도 아니었다. 계약 만료된 행정직원에 대한 환송회도 겸하는 자리였지만 고 교수는 이를 몰랐다고 한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호흡기내과 전경만 교수는 사회를 맡은 동료 교수가 고 교수에게 공로패를 준 뒤 아무런 얘기도 듣지 않고 바로 행정직원 환송회를 하겠다고 했다며 “고 교수는 자리에 앉지도 않은 상태였다. 만감이 교차하지 않았을까. 내가 18년 동안 열심히 살아서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조직에서 나를 이렇게 대한다는 것에 아쉬움과 속상함,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전 교수는 “(환송회를) 준비했던 당사자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왜 그렇게 했는지, (고 교수가) 정말 귀찮은 존재였는지”라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고 교수는 이날 환송회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 바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고 교수의 죽음에 대해 실화탐사대는 삼성서울병원 측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관계자 모두 거절했다.

방송을 본 고 교수의 부인 이윤진 씨는 1일 청년의사와의 통화에서 “(고 교수가) 버려진 의사이면 누군가가 그를 버렸다는 것 아닌가. 버린 의사가 방송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며 “호흡기내과에서 저 정도 수준으로 갈등과 마찰이 있었다는 사실을 다른 과에서는 몰랐을 것”이라고 했다.

이 씨는 “방송은 시간제한이 있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이 다 담기지 못했다”며 “남편(고 교수)은 환자 진료와 연구에만 집중하고 싶어 했다”고도 했다. 이 씨는 “남편을 잊지 못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도 했다.

고 교수에게 진료를 받았던 환자들도 방송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비결핵항산균 환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카페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난다”,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마음까지 어루만져 준 교수님이 그립다”, “아버지를 치료해주시고 항상 상냥하셨다” 등 고 교수를 애도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한편, 고 교수 유족은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에 청구한 직무상 유족보상금이 부결되자 지난 6월 사학연금공단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고 교수가 ‘직무상 재해’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인정받기 위해서다(관련 기사: 故고원중 교수 유족, 힘들고 긴 ‘싸움’ 시작…“직무상 재해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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