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외과 의사이자 타투이스트인 조명신 원장
간호사·간무사로 문신 시술 허용 범위 확대 주장
“소비자들만 피해…의사들, 타투에 관심 없지 않나"
“의협, 의사 영역을 잃는다는 위기의식으로 반대”

'문신사(타투이스트) 합법화'에 반대하는 여론이 강한 의료계에서 드물게 '찬성' 목소리를 내는 의사가 있다. 성형외과 전문의이면서 타투이스트인 빈센트의원 조명신 원장이다.

조 원장은 지난 1999년 병원을 찾은 환자가 지워달라고 부탁했던 장미 문양 타투(문신)를 보고 처음으로 타투의 매력을 느껴 타투이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행법상 타투는 의사면허 소지자만 할 수 있다. 조 원장은 몇명 되지 않는 '합법적인 타투이스트'인 셈이다. 조 원장은 백반증 환자 피부를 살색으로 덮거나 흉터를 타투로 가리는 '메디컬 타투'를 하기도 한다.

조 원장은 타투를 '시술'이라고 했지만 비의료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해 타투이스트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했다. 비의료인 타투이스트가 대부분인 현실을 방치하면 오히려 소비자들만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당장 비의료인으로 확대할 수 없다면 타투 시술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간호사나 간호조무사로 확대해야 한다는 게 조 원장의 주장이다.

의사이자 타투이스트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조 원장을 만나 타투이스트 합법화 문제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의사이자 타투이스트로 활동하는 빈센트의원 조명신 원장을 만나 타투이스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타투이스트 합법화 문제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어봤다.
의사이자 타투이스트로 활동하는 빈센트의원 조명신 원장을 만나 타투이스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타투이스트 합법화 문제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어봤다.

- 타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지난 1999년 안양에서 성형외과를 개원했을 때, 한 환자가 장미 모양의 타투를 제거하고 싶다고 내원했다. 전에는 ‘착하게 살자’ 같은 타투만 봤는데 장미 타투를 보고 처음으로 타투가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그 환자에게 물어 오산 미군부대 앞에서 타투이스트로 활동하는 사람을 알게 됐고, 그에게 타투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배우다 말겠지 했는데 너무 재밌더라. 4년 정도 배우면서 타투를 시술하다 2003년 본격적으로 타투를 배우러 미국에 갔다. 디트로이트에 있던 타투 스쿨이었는데, 내가 유일한 외국인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약 2주 동안 미국 전역에서 온 타투이스트들과 함께 공부하고 타투 머신 조립법 등도 배웠다.

미국 타투스쿨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부터 타투 시술하고 돈을 받기 시작했다. 전에는 내 실력을 모르는 상태에서 남의 몸에 영구적인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미국에서 공부하며 전문적으로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 타투이스트 활동을 시작했을 때 동료 의사들의 반응은 어땠나.

다들 어처구니없어했다. '성형외과로 잘 나가는 사람이 왜 타투를 하느냐'는 얘기도 들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아내도 타투이스트는 ‘사탄의 괴수’라면서 귀가할 때마다 옷을 벗기고 몸에 타투를 했는지 검사하기도 했다.

타투 행위 자체도 의료법상 의료행위고, 의사만 할 수 있는데 동료 의사들은 의사가 할 일이 아니라고 하고, 또 비의료인 타투이스트들은 왜 의사가 이런 걸 하냐고 묻더라. 아이러니했다. 그럴수록 내가 타투를 시술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더 귀담아들었다.

- 타투를 해준 사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함께 타투를 받았던 부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살 정도 된 아들이 병원에서 타투를 받겠다고 하자, 아버지가 타투를 하는 의사가 어딨냐며 아들과 함께 내원했다. 그 때 아버지가 진짜 의사인지 물어봐서 면허증도 보여드렸다.

아들의 타투 시술이 끝난 후, 아버지가 자기도 예전부터 타투를 하고 싶었다면서 자기도 도전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몇 번에 걸쳐서 아버지의 등에 타투를 했는데, 시술 마지막 날 아버지가 고맙다고 하더라. 알고보니 아버지가 시술을 받고 집에 돌아갈때마다 아들이 등에 연고를 발라주며 아프지 않았냐고 물어봤다더라. 타투를 계기로 속 깊은 대화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한 타투가 부자 관계를 개선하는 의미있는 계기가 됐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다.

- 타투를 하러 온 사람 중 ‘메디컬 타투’를 받는 환자가 제일 많다고 들었다. 메디컬 타투가 무엇인가?

메디컬 타투는 백반증, 혈관종 등 난치성·색소성 피부질환 부위를 티가 나지 않게 살색으로 덮거나 흉터 등을 타투로 덮는 시술이다. 메디컬 타투를 시작한 계기는 백반증을 앓던 환자의 부탁이었다.

예전에 내원한 백반증 환자가 질환 부위를 살색 타투로 덮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런 타투를 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사양했다. 그러자 그 환자가 여기저기서 백반증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다며 흉터라도 가리고 싶다고 사정했다.

그래서 시도해봤는데 환자가 굉장히 만족해하더라. 그 때부터 상처를 가리는 목적의 타투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꾸준히 해왔다. 현재는 질병이나 화상, 부상 상처나 흉터를 타투로 가리려는 메디컬 타투 환자들이 가장 많이 찾아온다.

- 의료법상 타투 시술은 의사의 의료행위지만 대다수의 타투이스트는 비의료인이다. 그리고 이들은 현행법상 불법 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99.9%의 소비자가 (비의료인 타투이스트에게) 불법 시술을 받는데 의사만 합법적으로 시술할 수 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잘못된 법으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소비자가 받는다. 어차피 불법이니 걸리면 도망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직업윤리가 없는 타투이스트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량한 타투이스트들도 불법으로 취급되면 소비자들은 옥석을 가릴 수 없게 된다.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다. 불법이라는 이유로 고소당하고 자살하는 타투이스트들도 있다.

- 타투 시술이 가능한 의료인의 범위를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까지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타투이스트 합법화가 당장 어렵다면, 적어도 타투 시술이 가능한 의료인의 범위를 넓혀 더 많은 사람이 합법적으로 타투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간호사 35만명과 간호조무사 85만명을 합치면 100만명이 넘는데, 이들 중 타투이스트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다. 그리고 타투이스트가 1년만 투자해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딴다면 합법적으로 타투이스트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타투이스트의 자격을 확대하다보면, 비의료인 타투 합법화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 의료계가 비의료인의 문신 행위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가 감염관리 문제다.

감염관리 문제는 타투이스트를 교육하고 훈련시키면 해결된다. 아무런 규제도 없고 관리 감독도 되지 않는 상황을 걱정해야 한다.

의료계는 타투 시술이 위험하니 비의료인의 타투를 합법화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99.9%의 불법 시술을 방치하자는 뜻과 다름없다. 정작 의사들은 타투 시술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의사 입장에서는 자신의 전문 진료과가 있는데 굳이 경쟁력과 수익성이 낮은 타투에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가 비의료인 타투이스트 합법화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위기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의사의 영역을 하나 둘 다른 분야에 뺏기다 보면 나중에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의협은 타투 시술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의사가 타투 시술을 해야 하는 명백한 이유나 논리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매년 똑같은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저러다 말겠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협은 감염 우려를 들어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을 반대하는데, 의료 행위 중에도 감염이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렇다고 의사들의 모든 의료 행위를 일절 금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 비의료인 타투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예전보단 나아졌다고 하나, 아직까지 국민 대부분이 타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타투이스트 합법화를 늦추는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국민 여론을 우호적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하는 메디컬 타투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신이 꼭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흉터나 상처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다.

타투이스트들도 공익적인 캠페인에 눈을 돌려봤으면 한다. 타투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한다면, 의사가 아닌 일반인도 교육받으면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타투를 할 수 있다는 여론도 더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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