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교육 속 인문학 높게 평가한 성균관의대 이주흥 학장
“질병만 바라볼 게 아니라 인간 존재를 성찰하는 게 의학”

최첨단 기술의 도입과 더불어 급변하는 의료 환경에 발맞춰 의학교육도 변화가 시작됐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나는 임상 의사이면서 IT 기술을 활용해 의료데이터를 연구하는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환경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성균관의대도 지난해 초 ‘데이터융합미래의학교실’(미래의학교실) 문을 열고 본격적인 융합 인재 양성에 나섰다. 의과대학 학생들은 미래의학교실에서 파이썬을 접하고 코딩을 배우는 등 연구방법을 체계적으로 습득하며 미래 인재로 발돋움 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에도 성균관의대는 미래 의사 양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라고 강조한다. 시대가 바뀌고 의료 환경이 변하더라도 의사로서, 의학자로서 가져야 할 소양은 변함없이 인간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성균관의대는 의학교육에 있어서 인문학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인문학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인문학에 뿌리를 둔 성균관대의 전통을 이어 받아 의학교육에 전승시키겠다는 의지도 담겼다.

성균관의대 이주흥 학장은 “그렇지 않아도 인생은 고단하고 고통스럽다. 그 길을 더 고독하게 만든 질병만 바라볼 게 아니라 이로 인해 망가지고, 소외되고, 고립되는, 또 존엄을 상실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목표로 하는 게 의학”이라고 말했다.

이 학장은 의학의 본질은 ‘질병의 이해’가 아닌 ‘인간 이해’에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래의 의학교육을 향해 발돋움 하고 있는 성균관의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이 학장은 올해 1월 신임 학장으로 임명됐다.

성균관대 이주흥 의과대학장은 최근 청년의사와 인터뷰를 갖고 의학교육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성균관대 이주흥 의과대학장은 최근 청년의사와 인터뷰를 갖고 의학교육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 성균관의대의 의학교육에서 인문학이 중요한 이유가 있나.

성균관대는 우리의 모체다. 성균관대라는 보금자리 속에 의대가 둥지를 튼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를 고민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착안점이 될 수 있다. 성균관대는 60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곳이다. 세계적 대학평가기관인 ‘THE’(Times Higher Education)가 2016년에 발표한 ‘THE 세계 대학 순위’(THE World University Rankings)에서 25개 대학을 선정했는데 그 안에 성균관대가 포함됐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대학들은 인문학에서 태동했다. 인간 존재와 인생은 무엇인지, 또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를 다뤄왔다. 그렇다면 인문학의 산실인 성균관대에 의대는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할까. 의대는 의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의학의 본질을 질병 연구와 치료법 개발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여기서 그친다면 우리가 양성하는 사람들은 의료기술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최종적인 목표로 하는 것이 의학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는 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하기 때문에 인문학이 의학의 본질적인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 의학교육 속에 인문학을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의학에 인문학적인 부분을 강조해야 한다는 점은 세계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학 속 인문학을 강조하기 위해 단순히 인문학 강좌를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는 것은 몰이해 속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한다. 공부 잘 하는 의대생들은 외워서 시험 보는 것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갖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단순한 가르침에 의해 달성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학습자의 주도적인 배움에 의해서도 이해하기 힘든 영역이다. 통찰 안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핵심을, 본질을 들여다보는 것은 가르침이나 배움을 통해 얻기 어렵다. 결국 성찰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사건에 대한 ‘직면’이라는 경험을 통해서만 성찰이 있고, 성찰을 통해서만 통찰이 생긴다. 그래서 많은 경험의 환경 속에 이를 제공해 줘야 하는데 사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일들이 병원 안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0시간 이상 진통을 겪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참아가며 엄마가 아이를 낳는다. 정말 놀라운 과정이다. 내가 진통제를 지금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촉진제를 어떻게 써야 하나. 이는 너무나 기술적인 영역이다. 물론 기술적인 영역을 갖추지 못하면 의사가 될 수 없겠지만, 분만장에서 이뤄진 생명의 탄생을 기술적인 앵글로만 보지 않으면 된다. 인생의 모든 생로병사의 희로애락이 병원 안에서 24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사람에 대한 통찰, 의료 기술적인 부분 모두 상호보완적이어야 하지만 우리가 너무 기술적인 부분들, 지식적인 부분들에 너무 치우쳐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지 않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다.

- 의과대학 학사제도를 통합 6년제로 개편하기 위해 논의하고 있다. 성균관의대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사실 이전부터 준비를 해왔다. 어떻게 보면 교육과정에서 가르칠 것들이 많아서 본과 4년으로는 부족하고 6년까지 써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에서는 6년제를 찬성하지 않는다. 가르쳐야 될 지식이 너무 많아 이런 식으로는 다 가르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벌써 100~200년 전이다. 기본적인 지식의 틀만 만들어 준다면 의사로서 필요한 부분은 찾아서 평생 공부를 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더 담기 위해 6년이 필요하다기 보다는 어떤 직면과 성찰, 통찰의 과정들은 훈련이 필요한 부분이라 속성으로 완성할 수 없다. 많은 직면을 통해 내재화되고 어떤 훈련과 과정,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 직면과 성찰, 통찰의 과정들을 교육을 통해 가르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를 의대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은 없나.

실제로 어떻게 의대 교육과정에 적용할 것인지 고민이 크다. 간병체험도 성균관의대가 고민하고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사지가 마비된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했는데 며칠 간 쓰다 보니 계속해서 환자가 설사를 한다. 옷과 침대는 엉망이 되니 그걸 갈아줘야 한다. 환자는 환자대로 힘들고, 갈아줘야 하는 사람도 힘들다. 간병체험을 통해 의사가 처방을 결정하고 검사 하는 가장 높은 단계에서의 케어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가장 낮은 단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된다는 거다. 이를 본과 5~6학년 때 체험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환자의 옷을 갈아입히되 그 사람의 존엄을 어떻게 지켜줄 것인가부터 어떻게 다치지 않게 할 것인지 등 여러 이슈들을 직면하면서 나에게 체화되고 또 훗날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본과 1~2학년은 하다못해 식물이나 동물을 1년 동안 키워보면서 그 속에서 교감이나 관계, 아픔 등 생명과 상호작용 하는 것들을 교과목에 포함한다면 훨씬 더 큰 의미 있는 체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무엇을 자꾸 가르치기보다 좀 덜어내서 의대생들이 그 속에서 고민하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성균관의대가 ‘절대평가제’를 시행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 성균관의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성균관대가 THE에서 상위에 랭킹 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의대의 활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부분은 더 높아지고, 더 강해지고, 더 넓어지는 게 아니라 더 깊어지고, 단단해지고, 성숙해지는 것이다. 성균관의대에서 교육을 받고 세상으로 나가는 의대생들이 인간 삶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있는 인재들로 양성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균관대라고 하는 인문학의 산실 또는 의학이라는 인간 이해를 목표로 하는 학문의 특성 이 두 개가 합쳐졌을 때 방향성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다고 본다.

물론 현실 속에서 성과 없이 갈 수는 없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성과에만 치중하고 그것만이 다인 것처럼 집중한다면 결국 성과지향적인 의사들과 의과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성과지향적인 의사들이 이미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고, 환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나. 능력은 뛰어난데 너무나도 환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의사들이 계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 부분들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의대 교육의 방향성이 본질을 바라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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