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 '풍월당' 박종호 대표, <가운을 벗은 의사> 출간
가운 벗고 정치가·독립운동가·작가된 의사 18인 삶 다뤄
진로 고민하는 후배들 위해…"의사로서 도전 두려워 않길"

클래식 음반 전문점 풍월당 박종호 대표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다른 길'을 선택한 경험을 살려 최근 '가운을 벗은 의사들'을 펴냈다.
클래식 음반 전문점 풍월당 박종호 대표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다른 길'을 선택한 경험을 살려 최근 '가운을 벗은 의사들'을 펴냈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쓴 작가 아서 코난 도일, 몬테소리 교육법을 창시한 교육가 마리아 몬테소리, 세계적 명성을 누린 지휘자 주제페 시노폴리,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의사' 출신이라는 점이다.

국내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명소이자 문화공간인 '풍월당'의 박종호 대표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3년 클래식 음반 전문점을 열기 전 그는 부산의대를 나와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개원했다. 잘나가는 의사가 '가운을 벗었다'며 화제가 됐다.

"어릴 때부터 음악이 좋았어요. 특히 오페라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아버지 뜻으로 의대에 진학했지만 진료실에 앉는 것만으로는 성에 안 찼어요. '나도 뭔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클래식 시장이 위축되면서 음반점들이 하나둘 사라지니까 '이러다 내가 음반 살 곳이 없어지겠구나'하는 마음에 직접 가게를 냈죠. 그게 벌써 19년 전 일입니다."

청년의사와 만난 자리에도 박 대표의 책상에는 어김없이 클래식 음반과 공연 실황을 담은 영상물이 쌓여 있었다. 옆에 놓인 노트는 쉼없이 적은 기록으로 빼곡하다. 이제 박 대표의 업은 글쓰는 일이다.

병원 문을 닫은 뒤로는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 강의를 하고 글을 쓰고 책을 펴냈다. '풍월당 아카데미'가 성공하면서 사업에 작은 여유가 생겼지만 박 대표는 여전히 직접 강의를 준비하고 발로 뛰며 자료를 조사하고 원고를 쓴다. 이번에 펴낸 '가운을 벗은 의사들' 역시 18인의 삶을 직접 되짚어가며 집필했다. 그동안 섭렵한 자료를 총정리해 수록한 '부록'까지 보면 "나의 감성이 들어간 살아있는 글"이라고 칭하는 작가의 열정과 집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책은 그간 예술 분야에 집중했던 저서와 달리 박 대표가 '의사로서 의사를 다룬' 첫 책이다. 의대에서 공부 중인 학생들, 전공의와 젊은 전임의들, 복무 중인 공보의 등 후배들을 위해 썼다.

"풍월당을 만들고 일하면서 정말 많은 메일을 받았어요. 예전의 저처럼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이었죠.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 포기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미대에 가고 싶다…. 저의 답은 한결 같습니다. 그래도 의사가 되라고. 의사가 되기까지 겪은 그 많은 어려움과 고민, 경험이 '다른 일'을 할 때 얼마나 멋지게 쓰이는지 모른다고. 그리고 의사되면 이제 다시 '가운 벗는 일'을 두려워 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박종호 대표 신작 '가운을 벗은 의사들'.
박종호 대표 신작 '가운을 벗은 의사들'.

따라서 책 제목과 부제도 자연스럽게 "가운 벗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가 모르는 곳까지 날아갔던 새들"로 정해졌다. 소개된 18인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그들이 의학을 공부하고 가운의 무게를 알았기에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의사 중에 작가가 많은 것은 직접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관찰하며 진찰 기록을 써내려간 의사들의 오랜 전통이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다. "쓰는 것이야말로 의사의 일"이었다는 것이다.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가 올리버 색스의 작품 원천도 바로 이 기록이었다.

"의대생 시절 본 교수님들의 기록지는 정말 황홀했어요. 단어 하나, 문장 하나 허투루 쓰지 않고 빈틈없이 정확한 표현으로 써내려간 문장이 몇 페이지씩 이어졌죠. 색연필로 직접 색을 입힌 그림이 곁들여졌고요. 매일매일 써나간 그 기록들이 말하자면 하나의 작품이었던 거예요."

작가 만큼 정치인도 많다. 시대의 격랑 속에서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간 이들이다. '드레퓌스 사건'을 고발하고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 공화국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 대만의 국부로 일컫는 쑨원, 쿠바 혁명의 주역인 체 게바라 모두 의사 출신이다. 박 대표는 이들이 "의사였기 때문에 정치에 발을 들였고, 의사였기 때문에 이런 일을 더 잘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소아과 의사로 칠레 최초로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한 살바도르 아옌데는 빈민 환자의 삶을 보고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였다.

"아이들이 자꾸 병에 걸리는 거예요. 소아과 의사니까 더 크게 보였던 거죠. 아이들이 왜 자꾸 아플까. 당시 칠레는 수도가 낙후돼 빈민은 물조차 마음 놓고 마시지 못했습니다. 나라가 기간 시설을 정비할 여력이 없었어요. 이런 환경에선 부모가 아무리 애써 키우고 의사가 노력해도 병을 못 막아요. 그래서 그는 정치인이 됐습니다."

그들은 또한 누구보다도 치열한 삶을 살다갔다.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서재필은 사재를 털어 활동하다 돈이 떨어지면 진료를 보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다. 소련 정권을 비판해 활동이 금지된 우크라이나의 문호 미하일 불가코프는 투병 와중에 구술로 생애 마지막 작품을 완성했다. 불가코프 사후 26년만에 출간된 '거장과 마르가리타'다.

박 대표는 이렇게 '용감하게 여정을 떠난' 선배 의사들의 길을 함께하는 데는 꼭 위대한 꿈만 꾸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어릴 적 간직했던 꿈도, 취미를 조금 더 발전시키는 방향도 좋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언젠가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삶은 풍부하고 행복해져요. 그러니 시도해보세요. 가운을 벗는 것을 어려워하지 마세요. 이루지 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바로 그 꿈을 꿨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나는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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