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 중심 수련 교과과정 전환·지도전문의 양성 위한 CTFM 등 추진
조비룡 수련이사 “국민에게 신뢰받는 주치의 양성 위해 수련제도 강화”

올해를 주치의제 시행 원년으로 선포한 대한가정의학회가 양질의 일차의료인 양성을 위한 체질개선에 나섰다.

역량 중심 수련 교과과정으로 전공의 수련 과정을 표준화했다. 특히 역량 중심 수련 교과과정으로 전환하기 위해 총 12개의 신뢰가능한 전문 역량(EPA, Entrustable Professional Activities)을 확정했다. 현실적인 일차의료 수련을 위해 일차진료의사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필수수련질환군을 선정했다.

전공의 수련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 지도전문의를 양성하기 위해 CTFM(Committee for Teachers of Family Medicine)도 꾸렸다. 또 전문의 시험에 대비한 CPX(Clinical performance exam) 형성평가를 통해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늘릴 계획이다.

가정의학회가 이처럼 전공의 수련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손질에 나선 데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다. 가정의학과의 위기는 전공의 지원율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수년째 가정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3차 병원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나 2차 병원은 전공의들의 발길이 끊긴 곳들도 있다.

이에 가정의학회는 주치의제 도입을 기회로 삼고 전공의 수련 강화를 통해 양질의 일차의료인을 배출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무엇보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이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교육적·제도적 환경을 만드는 게 목표다.

가정의학회 조비룡 수련이사(서울대병원)는 “일차의료 의사들이 일할 수 있는 제도적인 여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10년 전부터 노력해왔지만 변하지 않는 게 수련이었다”며 “가정의학과 전공의 수련을 받고 나면 전문의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가정의학과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말이 가정의학회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전공의 지원율이 지난 2020년 역대로 낮았다. 그 때 굉장히 놀랐다. 올해는 조금 나아졌지만 그것도 주로 3차 병원 위주고, 2차 병원은 변화가 거의 없다. 일차의료를 담당할 의사를 좀 더 많이 만들어야 하고 전문의는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왔는데 막상 전공의들이 지원을 안 하는 거다. 정원도 채우지 못하니 할 말이 없다. 이건 우리 잘못이다. 그래서 원인을 살펴봤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의 소득이 여전히 다른 과에 비해 낮다. 그렇다면 의사로서의 사명감은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가정의학과 개원의들은 새벽같이 나와 주말할 것 없이 밤새도록 일하는 상황이니 모든 면에서 여유가 없다.

그런데 환자들의 니즈는 변하고 있다. 삶의 질을 중시하게 되니 나를 자세히 들여다 봐 주고 책임져주는 의사가 필요한 거다. 환자의 니즈에 따라 변하려고 보니 우리나라 수가가 발목을 잡았다. 환자 1명을 3분을 보나, 10분 보나 수가는 동일하다. 그러니 의료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없는 거다. 이런 제도를 바꾸자는 게 최근 10년간 일차의료 개혁의 큰 변화였다. 일차의료 만성질환 시범사업을 통해 제도적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바로 ‘전공의 수련’이었다.

- 가정의학과 전공의 수련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나.

가정의학과 수련을 마친 전문의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자문도 해보고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설문도 해보니 우려가 더 커졌다. 2차 병원에서는 소위 가정의학과 의사로서 배워야 할 부분들은 가르쳐주지 않고, 3년 동안 응급실 당직에 허드렛일만 하고, 외과에 가서 도와주는 일만 하다 보니 수련을 마쳐도 만성질환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일도 생겼다. 가장 큰 문제는 병원마다 수련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전공의 수련제도를 표준화 하는 방안을 고심했다.

- 전공의 수련은 물론 지도전문의 교육지침도 내용이 달라졌다고 들었다.

2차 병원이든, 3차 병원이든 어디서 수련을 받아도 가정의학과 전문의라고 하면 만성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환자 교육하는 부분까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진료역량을 정리했다. EPA가 총 12개로 확정됐다. 수련 기간 동안 12가지를 할 수 있어야 수련이 완성된다. 역량이 충분한지를 CPX를 통해 평가할 계획이다. 3~6개월 마다 한 번씩 CPX를 보고 모니터링 및 피드백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CPX 시험을 보려면 비용이 든다. 비용적인 부분은 학회에서 마련하고 CPX를 통해 전공의들이 평소 부족했던 점을 피드백 받으며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도전문의 역량도 강화돼야 한다. 전공의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평가하고, 잘 키워야 이들이 그만두지 않고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수련지도전문의위원회(CTFM)를 구성했다.

-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은 2차 병원이다. 2차 병원 전공의 지원율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학회에서도 내시경이나 초음파, 술기 등 기술에 대해 시뮬레이션센터라고 해서 실습할 수 있는 교육시설을 만들고 있다. 지역마다 시뮬레이션센터를 둬서 일차의료 전공의들이 수련을 할 수 있도록 학회가 지원을 해 줄 계획이다. 2차 병원이 할 수 없는 부분들은 학회가 표준화된 교육 프로그램으로 초음파 등 어려워하는 부분들을 가르쳐주려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센터는 3차 병원이 맡게 될 예정이다.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더라도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센터를 통해 기회를 제공하려고 한다.

- CPX 등 평가가 늘면 오히려 전공의 지원율이 떨어질 거라는 우려도 있다.

사실 의대생들이 참 힘들다. 평가를 더 하겠다고 하면 지원이 떨어질까 그게 고민이다. 하지만 정말 양질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의사로 트레이닝 하겠다는 것이지 전공의들을 탈락시키거나 힘들게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수련을 잘 받으려면 수련 받는 사람들이 스트레스가 없어야 하고 사기 충만 해야 한다. 좋은 지도전문의라고 하면 단순히 의학지식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전공의들에 대한 배려,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때문에 이런 것들에 대해 우려하지 않도록 기획하고 있다는 점도 꼭 이야기하고 싶다.

- 양질의 일차의료인을 키우더라도 정작 주치의로서 활약할 무대가 없다.

제도적인 변화도 필요하다. 양질의 일차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수가나 인센티브도 중요하다. 주치의제 원년으로 삼았지만 시간이 걸릴 거라고 본다. 또 일차의료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 필요하다. 수가가 만들어지더라도 신뢰 부족으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안 될 일이다. 많은 의료비가 엉뚱한 곳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국민들도 건강을 위해 들어가는 비용으로 쓰이면 인식도 좋아질 것이라고 본다. 국민들의 건강이 좋아질 때 주치의들에 대한 보상도 좋아지는 제도가 필요하고 그런 전문가들을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에 가정의학회도 국민들에게 전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는 주치의를 양성하기 위해 수련제도 강화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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