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의대 강석민 교수, 심부전학회 회장 취임…5가지 중점목표 설정
“일반진료질병군인 심부전, 전문진료질병군으로 상향 조정해야”
다학제 연구·희소 난치성 심부전 유전자 질환 연구 등 활성화

세계적인 팝스타 조지 마이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영화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 역으로 잘 알려진 명배우 크리스토퍼 리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심부전’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심장은 매일 10만 번 이상 박동하며 산소와 영양분을 온몸에 전달하는 등 생명유지의 중추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기계도 오래 쓰면 잘 작동하지 않고 결국 고장이 나듯 무엇이든 나름의 수명이 있기 마련이다. 심장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수록 심장이 혈액을 짜내는 수축기능과 혈액을 받아들이는 이완기능이 감소한다. 심장에서 혈액을 잘 수급·공급하지 못하면 피로감이 증가하고 운동능력이 저하된다. 혈액이 순환하지 못하고 정체되면 부종 등이 생기는데 이는 심한 경우 사망으로 이어진다. 심부전이 ‘심장 질환의 종착역’으로 불리는 이유다.

심부전은 급성과 만성으로 나뉘는데, 만성 심부전의 경우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오랜 기간 앓으며 심장이 약해진 상태인 만큼 치료가 어렵다. 약제 상호작용으로 인한 부작용 위험성도 높다. 전문가들이 만성 심부전을 특히 경계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연세의대 심장내과 강석민 교수는 “그동안 정부 정책은 급성질환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이제는 급성질환자의 생존율이 증가한 만큼 대표적 만성질환인 심부전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관리·치료 대책이 절실하다”라고 역설했다.

강 교수는 “일반진료질병군으로 분류된 심부전을 전문진료질병군으로 상향 조정해서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인 치료관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대한심부전학회 회장으로도 취임한 강 교수는 2년 임기동안 대국민 홍보를 통한 심부전 인지도 향상과 심부전 질환의 다학제 중개 연구·희소 난치성 심부전 유전자 질환 연구 활성화 등에 나설 계획이다.

연세의대 심장내과 강석민 교수(대한심부전학회 회장).
연세의대 심장내과 강석민 교수(대한심부전학회 회장).

-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만큼 만성 심부전 환자도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 사회에서 심부전 질환 관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계를 오랫동안 사용하면 녹이 슬고 고장이 나듯이 유병률이 심장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심장기능이 나빠진다. 따라서 노인 환자에서 심부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50~60세는 유병률이 0.63%이지만, 65세 이상이면 10%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2020년 심부전학회에서 발표한 심부전 팩트시트(Factsheet)에 따르면 국내 심부전 유병률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내 심부전 유병률은 2018년 기준 2.24%로 보고됐다. 국내 고령화 상황을 고려하면 심부전 환자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고령의 심부전 환자들은 여러 질환을 동반하게 된다. 예를 들면,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부정맥, 만성 콩팥병, 암, 뇌졸중, 치매, 관절염 등이 있다. 즉, 이러한 질환 자체도 심부전을 유발시키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만성 심부전 환자들을 치료하기가 매우 어렵다. 심부전 환자들은 여러 치료 약제들을 복용하고 있기 때문에 약제 상호작용으로 인한 부작용 위험성도 높다. 또한 심부전 질환 특성상 반복적인 심부전 악화로 인해 심장기능이 계속 나빠지고, 이로 인해 반복적인 입원으로 삶의 질이 나빠지고 의료비 상승을 유발한다. 심부전은 진단 후 5년 내 40~50% 정도의 사망률이 보고됐다. 이는 폐암을 제외한 보통의 암보다 예후가 나쁜 것이다.

- 만성 심부전 관리를 위해 환자들에게 요구되는 게 있다면.

만성 심부전은 관리가 중요하다. 소수의 심부전 환자의 경우 수술이나 시술, 약물치료 등으로 완치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일생을 살면서 반복적인 심부전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규칙적인 약물 복용과 심장내과 전문의의 정기적인 진료가 필수적이다. 또한 환자 자신의 자가관리(self care)가 중요하다. 즉, 심부전 악화를 방지할 수 있는 저염식이, 규칙적인 운동, 체중 관리, 혈압 관리를 환자 본인이 모니터링 해야 하며, 심부전 증상이나 징후 등을 잘 파악해 주치의와 상의해야 한다.

- 만성 심부전 진료체계에 있어 개선점할 점이 있다면.

심부전을 동반하는 질환들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도 중요하지만, 환자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세심한 진료체계를 운영하는 것이 고령의 만성 심부전 환자들에게는 필수적이다. 현재 심부전클리닉을 운영하면서 심부전 전문 의사와 간호사가 환자들에게 질환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양사, 물리치료사를 통한 일상에서의 건강한 생활습관과 식사패턴 개선, 운동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등의 심부전 위험인자를 조절하고 금연, 절주, 저염 식사와 스트레스 관리 등도 적극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이처럼 다학제 진료체계 도입이 절실하다. 동네 병의원에서도 만성 심부전 환자들의 생활습관 개선을 위한 꾸준한 교육이 필요하다.

- 국가 차원의 만성 심부전 관리·치료 정책이 필요한 이유와 그 방향은.

국내에서 환자들은 A군(전문진료질병군), B군(일반진료질병군), C군(단순진료질병군)으로 나뉘며, 이중 심부전 환자는 B군으로 분류돼 있다. 이는 4년마다 심사되는 상급종합병원 선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그러나 심부전 환자의 임상 경과와 예후를 고려하면 전문진료질병군(A군)으로 상향 조정해서 국가적 차원의 치료와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

국가 입장에서도 (심부전 환자를 이대로 두면) 고령의 심부전 환자들이 반복적으로 입원하거나 다양한 동반 질환으로 자주 치료를 하게 된다면 건강보험 지출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심부전으로 입원한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약 3.1배 증가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심부전 다학제 진료체계가 잘 확립돼 중증의 심부전 환자들의 치료 성적이 좋은 병원에는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 국가적인 재정 지원 시스템이 있다. 따라서 고령화 사회인 우리나라도 향후 심부전 질환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에 대비,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를 통해 환자의 의료비 부담도 줄이고 건강보험 재정 부담도 줄여야 한다.

현재 국내 의료체계에서 단 몇 분만의 외래진료로는 동반질환이 많은 심부전 환자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치료계획을 세우기 힘들다. 의사 개인의 능력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시대는 갔다. 이제는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협력진료 시스템으로 환자의 만족도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궁극적으로 사망률을 감소시킬 수 있는 의료 환경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 정책은 급성질환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하지만 이제는 급성질환자의 생존율이 증가한 만큼 심부전에 대한 국가적인 관리·치료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의 대표적인 기저질환에 심부전 질환이 있다. 만성 심부전 환자의 코로나19 예후는 어떤가.

당연히 매우 나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고령의 만성 심부전 환자들은 감염에 취약하고 사망률이 높으며, 심지어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비율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19 감염 초기에 요양병원에 입원한 고령의 심부전 환자들이 체계적인 관리 없이 코로나19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많은 환자가 사망해 사회적인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심부전을 포함한 고령의 심혈관 질환자들은 심혈관 질환 자체의 악화로 인한 사망보다는 세균성·바이러스성 감염 등에 의한 폐렴, 패혈증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

- 코로나19 환자가 회복 후 ‘롱코비드’로 불리는 코로나 후유증(long-term complication)으로 심부전 위험이 70% 증가했다는 미국 연구도 있다. 코로나19 회복 환자의 심부전 모니터링이 중요할 것 같은데.

맞다. 아직 코로나 후유증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코로나19 감염 후 회복 환자들에 대한 장기 모니터링을 통해 코로나 후유증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당연히 심혈관계 합병증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 만성 심부전 인지도 향상을 위한 심부전학회의 계획이 있다면.

심부전 질환에 대한 대국민 인지도 향상을 위해 심부전학회에서 대국민 캠페인, 홍보대사 선정과 인지도 향상을 위한 교육 강좌 등을 개최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단발성으로 끝났고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했다. 앞으로 심부전학회는 기자간담회, 각종 언론매체와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심부전 인지도 향상을 위한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제시할 예정이다.

- 심부전학회 회장 임기 동안 추진할 중점목표나 사업계획이 있다면.

심부전학회장 임기 동안 5가지 핵심 아젠다를 두고 국내외 현황을 검토하고 이에 따른 전략을 수립·추진하려 한다.

첫 번째는 대국민 심부전 인지도 향상을 위한 홍보 강화다. 일반 국민이나 환자는 물론 정부, 매스컴, 심지어는 의료인조차 심부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심부전학회는 캠페인을 통해 이런 현실을 다소 변화시킬 수 있었다.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활동을 통해 ‘심부전 바로 알기’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두 번째는 심부전 질환의 대정부 중증 질병코드 등록 추진이다. 심부전은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게 되면 중증의 임상경과가 따르게 되고, 치료비 부담이 높으며, 급사하거나 사망의 위험이 매우 높은 질환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심부전 중증 질병코드 등록 즉, 전문진료질병군(A군)으로의 상향 조정을 위해 대정부 활동을 하겠다.

세 번째는 심부전 질환의 다학제 중개 연구 활성화다. 심부전은 다양한 동반 질환을 갖는 심장질환인 만큼 여러 분야와의 협력 연구가 가능하다. 다학제 연구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네 번째는 희소 난치성 심부전 유전자 질환 연구 활성화다. 가족성 확장성 심근병증, 심장 아밀로이드증, 파브리병 등 각종 유전성 심부전 질환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다양한 임상 연구를 지원하고 활성화하겠다.

마지막은 최신 심부전 치료제 적응증·급여화 추진과 신의료기술 도입 활성화다. 심부전 환자들의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우수한 최신 심부전 치료 약제나 신의료기술 도입을 위해 학회 차원의 정책적인 대정부 활동을 추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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