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의대 김도경 교수, 국내 최초 ‘하이브리드 해부학 강의’
3차원 가상공간에서 반복 학습, 다양한 시뮬레이션 가능
"교수 노력에 따라 메타버스 이용한 학습 효율 달라진다"

경희의대 해부학 실습실에서는 색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학생들은 실제 카데바(cadaver)를 해부하기 전, ‘VR(Virtual Reality)’ 장비를 착용하고 가상 현실에 구현된 카데바를 먼저 해부한다.

이는 국내 의대 최초로 시행된 ‘하이브리드 해부학 강의’로, 새로운 기기에 익숙한 MZ 세대 학생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하이브리드 해부학 수업을 기획한 사람은 경희의대 해부학·신경생물학교실 김도경 교수다. 새로 나온 VR 프로그램을 먼저 체험해 왔던 김 교수는, 지난 2019년 경희대 교육혁신사업단에 참여하면서 해부학 수업에 VR을 접목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지난 2020년부터 경희대 지원으로 VR 수업에 적합한 시스템을 구축해왔고, 2021년 해부학 실습부터 적용했다.

김 교수는 “VR이나 ‘메타버스(metaverse)’가 주목받기 전부터 새로 나온 기기를 써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며 “특히 VR 게임이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경험해봤다. 그래서 교육혁신사업단에서 의대 수업에 대한 개선안을 제안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VR을 접목한 교육을 제안했다”고 했다.

경희의대 해부학·신경생물학교실 김도경 교수는 청년의사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전국 의대 최초로 '하이브리드 해부학 강의'를 진행한 이유와 효과에 대해 이야기했다(사진제공: 경희대 커뮤니케이션센터).
경희의대 해부학·신경생물학교실 김도경 교수는 청년의사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전국 의대 최초로 '하이브리드 해부학 강의'를 진행한 이유와 효과에 대해 이야기했다(사진제공: 경희대 커뮤니케이션센터).

2차원 교재보다는 VR 통한 3차원 실습이 효과적

김 교수가 하이브리드 해부학 강의를 제안한 이유는 수업에 사용하는 교보재의 한계 때문이다. 해부학 실습의 핵심은 인체를 3차원 구조로 이해하는 것인데, 기존 교재는 동영상·PPT 등 2차원적이었다.

실습에 사용되는 카데바의 상태가 기증자의 사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김 교수는 “해부학에서 실습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의학과(본과) 1학년생이라고 해도 카데바를 처음 접해보는 학생들에겐 허들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그 전에 아무리 좋은 자료나 영상을 제공하더라도 2차원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실습을 진행하며 교보재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실습에서 사용하는 카데바의 경우 기증자가 고령이거나 기저질환으로 사망한 경우가 많다”며 “ 때문에 있어야 할 장기가 없기도 하고, 여러 근육이 압착돼 해부할 때 한 번에 붙어서 나올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러던 중 김 교수는 지난 2019년부터 경희대 혁신사업단에 참여해 해부학 실습에 VR을 접목하는 강의를 제안했다. 이후 경희대는 지난 2020년 ‘첨단 테크놀로지 콘텐츠 설계 및 교육적 활용 TF’를 출범하고 VR 기기 구입 등을 위한 예산을 편성했다. 김 교수는 약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지난 2021년 하이브리드 해부학 강의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김 교수는 “혁신사업단에서는 메타버스·VR·AR 등을 활용한 교육안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나는 VR을 이용한 해부학 실습을 제안했다”며 “이후 해부학 VR 콘텐츠를 찾아보고 이를 어떻게 교육에 버무릴지 고민했다”고 했다.

김 교수는 “VR기기와 프로그램으로만 바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일단 해부학 VR 프로그램을 가동시킬 수 있는 고성능의 컴퓨터가 필요하며, 이를 노트북 디스플레이에 연결할 수 있는 선도 골라야 한다. 학생들이 VR을 사용하며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며 “이를 구축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지난해 처음 선보인 하이브리드 해부학 수업은 의학과(본과) 1학년생 100명을 대상으로 카데바 12구를 이용한 실제 실습과, ‘오큘러스 퀘스트2’ VR 장비를 이용한 VR 실습으로 진행됐다.

김 교수는 해부학 실습 기간 VR 실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은 VR 실습에 대해 반복 학습이 가능하고, 질병 모델링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반면 VR이라는 한계로 인해 실제 카데바와 이질감을 느끼는 것을 단점으로 지적했다.

김도경 교수가 진행한 '하이브리드 해부학 강의' 풍경(사진출처: 대한의학회 e-뉴스레터)
김도경 교수가 진행한 '하이브리드 해부학 강의' 풍경(사진출처: 대한의학회 e-뉴스레터)

VR 카메라로 실습 환경 360도 촬영해 교재로 사용

그렇다면 VR 해부학 실습 외에 김 교수가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콘텐츠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VR 카메라’를 이용해 학생들이 시신을 해부하는 것을 촬영하고 이를 유튜브에 업로드해 수업 교보재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VR 카메라는 360도를 모두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로, 이를 VR에 연결하면 실제 그 자리에 있는 것과 같은 현장감을 준다.

김 교수는 이를 활용해 학생들이 VR만 착용하면 다른 학생들이 진행한 해부학 실습을 간적접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VR 실습에 더해 기존에 2차원으로 제공되던 교보재 영상도 VR로 대체할 계획이다.

김 교수는 “올해는 VR 카메라로 학생들이 시신을 해부하는 모습을 촬영해 내년에 해부학 실습을 앞둔 학생들에게 제공할 것”이라며 “학생들은 VR만 착용하면 선배들이 한 실습을 라이브로 볼 수 있다. 12구의 시신을 해부하는 모습을 전부 볼 수 있어 미리 해부학 실습을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제공하는 영상자료들은 해부할 부위를 확대해서 촬영한 것인데, 사실 그렇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며 “학생들이 미리 VR을 통해 해부학 실습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체험하고 오면 학습 효율이 더 좋을 것”이라고 했다.

"교수자 노력 여부에 따라 메타버스 활용도 달라진다"

해부학 수업에 VR이 접목된 것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2년 동안 비대면 수업이 이어져 오며 메타버스가 새로운 교육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메타버스 교육이 자리잡기 위해선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김 교수는 메타버스가 교육분야에 도입되겠지만 대면 수업을 전면으로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때문에 메타버스가 학습자에게 의미있는 교육공간이 되기 위해 교수자가 가상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해부학 VR 실습에는 메타버스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며 “VR을 사용할 때 학습자와 교수자는 각자의 화면만 볼 수 있는데, 현재는 학생이 보는 풍경을 빔 프로젝트로 연결해서 피드백을 주고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가 도입된다면 교수자가 직접 학생에게 시연을 보여줄 수도 있고 한 번에 여러 학생의 진행 상황을 볼 수도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메타버스가 대면 수업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실습의 경우는 더 그렇다. 때문에 교수자가 메타버스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학습의 효율이 달라질 것”이라며 “시각·음향적 효과 등을 이용해 가상의 공간 자체가 교육적인 부분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교수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교수자가 제일 피곤할 수밖에 없다. 교수자가 VR 기기나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에 대해 학습을 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재작년부터 교수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면서 VR 기기 등을 추천하고 있는데, 일부는 관심을 갖고 있지만 아무래도 새로운 기술이다 보니 진입장벽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계속 신기술을 접하고, 또 좋은 콘텐츠가 나오면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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