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교과서를 새로 쓰는 성남시의료원…'최초'라는 수식어만도 몇개

조승연 원장 "외래 환자 놓고 개원가와 경쟁하는 병원은 되지 않겠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정로 171번길, 옛 성남시청이 있던 자리에 지하 4층, 지상 9층 규모로 지어지는 500병상 규모 성남시의료원. 지난 2013년 첫 삽을 뜬 성남시의료원은 지난 10일 성남시청 산성누리관에서 법인 창립이사회를 개최, 이사 임명, 설립취지문 채택, 정관 등을 승인하고 법인 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이날 창립이사회에서 초대 원장 겸 이사장으로 선임된 조승연 원장은 “성남시의료원은 앞으로 시민에 의해 만들어지고, 시민에 의해 운영되고, 시민을 위해 운영되는 진정한 공공의료를 수행하는 병원이 되도록 하겠다”고 피력했다.

조 원장은 특히 “성남시의료원은 여타 공공병원의 교과서가 되고 나아가 공공의료의 사관학교가 되는 어려운 일을 수행할 것”이라면서 “이는 어느 누구의, 원장과 이사진, 또는 시장이나 일부 시민의 힘이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시민을 위한 공공의료 필요성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창립이사회를 성공적으로 끝낸 지난 12일 대한민국 공공의료의 역사를 새로 써보겠다는 조 원장을 찾아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현주소와 오는 2017년 말 개원을 목표로 하는 성남시의료원의 포부를 들었다.

성남시의료원 조승연 원장


- 성남시의료원의 경우 시민 발의로 설립되는 종합병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성남의 경우 서울에도 인접해 있을뿐더러 이미 분당서울대병원, 분당차병원 등 대학병원은 물론 분당제생병원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규모의 대형 종합병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성남 시민들은 왜 종합병원 설립을 요구한 것인가.

성남시의 인구가 100만명인데 수정구, 중원구 등 구도시에 50만명, 분당구 등 신도시 5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분당서울대병원 등 대학병원급 종합병원은 모두 분당 쪽에 위치해 있다. 사실상 성남과 분당으로 완전히 분리돼 있다.

문제는 성남에는 시민들이 믿고 갈 만한 제대로 된 종합병원이 없다는 데 있다. 과거 인하병원과 성남병원이 있었지만 성남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취약지이다보니 민간병원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다. 결국에는 문을 닫기까지 했다. 있어도 공공병원이 아니다. 30분만 가면 대형병원들이 있지만 대학병원 타이틀 갖고 있는 순간 서민들에게는 담이 쳐진다. 바가지를 쓰는 건 아닌지 과잉진료를 하지는 않을지 믿지 못하는 것이다. 성남시의료원은 이러한 공공의료에 대한 성남 시민들의 열망으로 설립하게 됐다.

- 시민이나 주민들의 요구로 설립되는 공공병원은 성남이 처음인 건가.

진안군의료원처럼 군 단위는 있었지만 도시는 성남이 대한민국 최초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주민이 원해서 병원이 생긴 경우는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대전도 만들어지려고 하고 울산에서도 시민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성남시의료원이 성공한다면 대전은 물론 전국적으로 벤치마킹할 가능성도 있다. 그만큼 성남시의료원을 지켜보는 눈이 많다.

성남시의료원은 전국 최초로 두 차례에 걸친 주민발의 조례를 통해 설립되는 공공병원이다. 성남시는 공공병원 설립운동 10년 만인 지난 2013년 착공돼 현재 기초공사가 한창이다.

성남시의료원 설립 추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의료원 설립 준비 단계부터 관여해온 조승연 원장은 6년동안 몸 담아온 인천의료원을 지난달 29일부로 사직하고, 지난 5월 1일부터 초대 원장으로서 성남시의료원 설립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 시민발의로 지어지는 공공병원이라는 수식어답게 병원 운영에도 시민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선 이사회에 시민들이 추천한 위원들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서울의대 김창엽 교수나 이진석 교수 등은 지역의사회에서 추천했으며, 지역 소비자단체나 법조계 등에서 참여하는 분들도 있다. 그 분들이 실제로 병원 운영에 개입할 수 있는 규정도 만들고 있다.

또한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시민위원회라든지 시민참여를 위한 조직도 생길 것이다. 사회사업 분야라든지, 옴부즈맨이든지 병원 개선 사항들을 모니터링 할 수도 있고 하다못해 인사위원회에도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다.

- 이사회 구성안을 보니 원장으로서 병원을 운영하기에 제약이 많을 것 같다.

이사회가 총 14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사들 면면을 보면 시민단체 추천 이사들도 그렇고 기존 이사회처럼 거수기 역할이나 명예만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실제 일을 하고 의견을 내기 위해 참여하는 분들이구나 생각하게 될 것이다. 원장이나 시장이 뭐라고 한다고 해서 자기주장을 꺾을 분들이 아니다. 아마 합의가 되지 않으면 한건도 통과 안 될 수도 있다. 원장인 나로서는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

또 이사들 가운데 실제로 성남시민이 몇 명 없다. 이게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데, 장점이라고 하면 성남시의료원을 지켜보는 이들이 전국에 있다는 것이고, 단점이라고 한다면 성남시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정체성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남시의료원이 성남에 국한 된 곳이 아니라 대한민국 공공의료의 리더가 돼야 한다는 것을 이사회를 통해서도 확인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

- 원장으로서 병원을 운영하다보면 경영상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공공병원의 가장 큰 숙제가 바로 경영부분이다. 환자가 없어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그러다보니 재투자는 꿈도 꿀 수 없다. 열악해지더라도 정부는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진주의료원 사태를 계기로 공공의료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2010년부터는 예산이 많이 투입돼 현대화 작업이 이뤄졌다. 더욱이 착한 적자는 정부가 보전해줘야 한다는 개념에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공공병원의 적자 60%가 공익적 적자라는 정부 연구용역 결과도 있다. 그 정도만 정부가 보전해 준다면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들이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특히 성남시의료원의 장점 중 하나는 도심 한 가운데 자리한다는 데 있다. 의료원들이 갖고 있는 지리적 취약성을 극복한 것이다. 인천시의료원은 사람이 올 수 없는 공단 한 가운데 있다. 버스가 없어 자가용이 필수다. 적자가 당연하지 않겠나.

대부분의 지자체는 주민들이 공공병원을 지어달라고 하면 그린밸트 같은 지리적 여건이 좋지 않은 곳에 면피용으로 병원을 짓곤 한다. 서울의료원만 봐도 박원순 시장이라고 해도 별 수 없다. 물론 박원순 시장 이전에 결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구석에 세워져 있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성남이 가능했던 것은 시민사회의 요구와 이재명 시장의 의지가 결합됐기 때문이다.

- 시에서는 얼마나 투자하는 것인지.

무려 2,000억원이다. 성남시 1년 가용 예산이 3,000억원이라는데 3분의 2를 성남시의료원에 투자하는 셈이다. 대부분의 공공병원들은 BTL사업으로 추진되는데 이는 오로지 빚이다. 그러다보면 결국 병원은 빚을 갚느라 허덕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남시의료원의 경우 100% 성남시 예산으로만 지어진다.

- 의료인력 충원에도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성남시의료원의 목표는 제대로 된 지역 거점병원을 만드는 데 있다. 따라서 의료진들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공공의료적 마인드를 갖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또 사람들 대부분이 대학병원에 훌륭한 의사가 더 많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대우가 그만큼 따르기 때문이다.

공공병원이라고 해서 못할 것도 없다. 공공병원 의사라고 해서 월급을 적게 받을 이유도 없거니와 해외연수도 못하고, 토요일에도 나와 진료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 같은 곳도 의사들의 월급은 시장가로 지급한다. 노르웨이 국민 평균 월급이 500만원이라고 해서 그에 맞추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의사들이 미국으로 다 빠져나가버리기 때문이다.

좋은 의사 구하려면 대우를 그만큼 해주는게 맞다. 우리나라도 시장 가격이 있다. 맞춰야 한다. 의사라는 전문직종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은 해줘야 하지 않겠나. 좋은 의사 모셔오라고 하면서 왜 월급 많이 주냐고 이중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의사들에 대한 처우만큼은 박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성과나 이익을 위해 과잉진료하거나 환자에게 성실하지 않은 의사들은 제대로 평가해서 퇴출시키면 된다.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인격도 훌륭하고 실력도 좋고 진짜 없는 사람을 위해서 헌신하는 분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도 성남시의료원이 처음 해보는 일일 것이다.

- 성남시의료원 설립 초기 지역 개원의들이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역 개원의들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은.

성남 지역 개원의들이나 중소병원들이 성남시의료원 설립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 정확히 조사해본 것은 아니지만 50만 인구 중 RI 지역 친화도 개념으로 보면 70% 정도가 외부로 빠져나간다고 하더라. 믿을 만한 병원이 없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병원을 만들어 이들 중 상당수를 이 안에서 진료 받게 만들면 결국 의원과 의료원이 상생할 수 있다고 본다. 개원의 입장에서 자신의 환자에게 사고가 나거나 합병증이 발생했을 때 믿고 보내고 싶은 병원이 없어 3차병원에 전원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그 환자는 응급실에 눕는 순간 엄청난 병원비를 내야 한다.

언제든 믿고 전화해서 밤이라도 보낼 수 있는 병원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대학병원 수준 장비도 갖출 것이다. 필요한 검사가 있을 때 대학병원에 의뢰하는 것보다 싼 가격에 해주고 직접 와서 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지역 의사, 의료계가 반대할 이유 없다. 서로 협조하면 훌륭한 의료자치지구를 만들 수 있다.

- 가장 큰 반대 이유는 아무래도 환자를 뺏길 우려 때문 아니겠나.

의료원이 일차진료를 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100%를 안할 수는 없지만 최소화할 생각이다. 만성질환관리는 개원가나 보건소에서 하는 게 맞다. 성과평가를 할 때 만성질환자 진료 부분에 대해서는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의사 입장에서는 만성질환자를 많이 봤자 자신만 귀찮아 질뿐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개원가로 환자를 보내게 될 것이다.

다만 개원가에서 의뢰하는 환자들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진료를 해주고 결과를 의뢰한 의사에게 리퍼해주도록 할 것이다. 오히려 그런 부분을 높이 평가해주면 개원가나 의료원 모두 윈윈하는 게 될 것이다.

- 외래를 최소화하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입원 위주의 병원으로 운영하겠다는 건가.

당연하다. 어느 나라든 그렇게 가고 있다. 우리나라만 이상하다. 서울대병원하고 개원가가 외래환자를 놓고 경쟁을 하고, 심지어 원격의료로 부산에 있는 환자를 서울대병원에서 처방해주겠다고 나서고 있다.

만성질환은 개원가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검사나 합병증이 생겼을 때는 병원이 책임지고 봐주고 괜찮아졌을 때 다시 개원가에 안전하게 돌려주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이게 의료전달체계의 핵심이다. 의원과 경쟁해서 그 환자로 먹고사는 병원은 절대 안되게 하겠다.

성남시의료원은 2만4,711.3㎡ 대지에 지하 4층, 지상 9층의 517병상 종합병원으로 설립된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지역거점병원 필수 9개 진료과목은 물론 정형외과, 신경외과, 비뇨기과, 신경과 등 14개 진료과를 우선 배치하며, 특수건강진단 및 건강검진을 위한 직업환경의학과도 개설된다.

외래는 1차 의료기관에서 의뢰하는 환자나 응급실 등을 통해 내원하는 환자들을 위해 최소한으로 운영하고 대부분은 입원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특히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신생아중환자실, 격리병동(음압격리병상 12병상 포함), 호스피스병동, 정신과병동 등을 통해 100만 성남 시민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의료안전망 구축에 나선다.

- 성남시의료원이 중점적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응급의료와 입원 위주, 공공적인 진료가 필요한 부분들이 될 것이다. 신생아중환자실이라든지, 응급실, 호스피스, 재활치료 등 돈이 안돼 민간에서는 하지 못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운영해나갈 계획이다. 그게 바로 공공병원인 지역거점병원의 역할이다. 관절이니 척추 수술 같은 것은 돈은 잘 벌 수 있겠지만 거점병원이 할 일은 아니다.

표준진료를 통해 지역주민들이 믿고 갈 수 있는 병원, 교과서적으로 앞서갈 수 있는 공공병원을 만드는 게 최대의 목표이다.

- 특별히 성남시에서 성남시의료원에 요구하는 게 있는지 궁금하다.

성남시로서는 시 의회도 있으니 경영부분도 걱정일 것이고, 진료의 질에 대해서도 우려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초기에 위탁경영을 할 것인지, 직영으로 할 것인지 논쟁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처음 조례가 만들어질 때는 대학병원에 위탁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하지만 지역의 모 의료원의 경우 그 지역 대학병원이 위탁운영 하다가 직영으로 바꾸고 나서 환자들은 늘고 지역주민 만족도가 올라갔다. 이는 위탁이 직영보다 좋다는 근거가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위탁운영을 하게 되면 수탁기관의 경영 논리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수탁기관이 제대로 된 공공병원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자칫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꼴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세금으로 민간병원 도와주는 것밖에 안된다. 개인적으로 어설픈 직영 개념이 아니라 정말 대학병원과 경쟁할 만한 병원을 만드는 게 목표라면 위탁보다는 직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인천의료원을 6년 동안 운영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어떻게 성남시의료원에서 펼쳐나갈 생각인가.

공공의료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맞도록 성남시의료원도 운영하게 될 것이다. 공공병원 원장으로 쌓아온 경험을 성남시의료원에서도 적용해볼 테지만 재정적으로나 위치적인 여건 때문에 못했던 부분들은 이곳 성남시의료원이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인천의료원 6년 동안 가장 못해본 게 바로 시민참여 부분이다. 성남시의료원의 경우 시민발의로 설립된 병원이라는 점에서도 그것을 추진해보기 최적의 조건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공공병원 의사로서 목표의 반 정도를 이뤄냈다면 성남시의료원에서 남은 목표의 반의 반 정도는 이뤄내고 싶다.

- 원래 원장을 이렇게 일찍 뽑나.

이것 역시 처음이다. 대개는 병원을 다 지어놓고 임명권자가 원하는 원장을 선임하곤 한다. 그러나 병원을 다지어놓고 원장을 뽑게 되면 그곳에 오는 사람도 책임감 없이 운영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지은 것도 아닌데 뭘’ 이런 맘이 들게 되는 거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개인병원들은 건설부터 인테리어, 운영 모두 혼자서 다하지 않나. 초대 원장이 건설부터 운영까지 책임지는 것이야말로 책임경영제의 기본이며 이때 필요한 게 이게 바로 주인의식이다. 성남시의료원이야말로 주인의식이 있는 병원인 셈이다.

병원 건물 자체도 설립이념에 맞게 지을 수도 있다. 건물은 건물이고, 사람은 사람이고, 원장은 원장, 시장은 시장 이렇다면 우리는 발전할 수가 없다. 주인의식 없는 사람들이 다 결정해놓고 그러니 병원도 저 산꼭대기에 지어놓고 하는 것 아닌가. 성남시의료원이야 말로 그런 모순을 깰 수 있는 최초의 병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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