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임상유전체의학과 개설…지난해 6월부터 외래 진료
임상정보와 연계된 유전체 정보들 모아 ‘SNUH바이오포탈’ 구축

미국의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Memorial Sloan Kettering) 병원은 종양학 지식 데이터베이스인 OncoKB(Oncology Knowledge Base)를 통해 암에 대한 임상정보를 모으면서 암 분야를 선도하는 병원이 됐다. OncoKB에는 무려 682개 암 관련 유전자와 5,600개 이상 유전체들의 임상 및 생물학적 효과에 대한 데이터들이 들어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에도 임상정보와 연계된 유전체 정보들을 한데 모으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대병원이다. 국내 최초로 정밀의료센터와 희귀질환센터를 통합해 임상유전체의학과를 개설한 서울대병원은 병원 내 쌓인 각종 암 및 유전체 데이터를 한데 모아 ‘SNUH바이오포탈을 구축하고 있다. 그동안 서울대병원 정밀의료센터나 희귀질환센터 등을 통해 축적된 임상 데이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임상유전체의학과를 이끌고 있는 박경수(내분비내과) 과장의 설명이다.

국내 유전체의학을 선도하는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박경수(내분비내과) 과장과 채종희(소아청소년과) 교수를 만나 임상유전체의학과의 개설 의미 및 역할, 그리고 ‘SNUH바이오포탈의 향후 운영방안 등 대해 들었다.

박경수 임상유전체의학과장은 이날 "기존 의료 시스템에서 소외됐거나 진료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던 분야에 대해 임상유전체의학과가 개인맞춤형 진료를 제공하겠다""유전체의학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암, 희귀질환, 만성질환 등 폭넓은 분야에서 정밀의료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은 국내 최초로 병원 내 진료과로 임상유전체의학과를 개설했다. 박경수(사진왼쪽)과 채종희 교수가 임상유전체의학과의 개설 의미 및 역할, 그리고 ‘SNUH바이오포탈’의 향후 운영방안 등에 설명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국내 최초로 병원 내 진료과로 임상유전체의학과를 개설했다. 박경수(사진왼쪽)과 채종희 교수가 임상유전체의학과의 개설 의미 및 역할, 그리고 ‘SNUH바이오포탈’의 향후 운영방안 등에 설명하고 있다.

- 서울대병원에 국내 최초로 임상유전체의학과가 설립됐다. 임상유전체의학과를 개설한 이유는 무엇인가.

박경수 : 오래 전 병원에 유전학과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전혀 작동을 안했다. 의생명연구원에 바이오마크센터를 만들어 오믹스 등의 정보를 연구하는 정도라고나 할까. 이후 정밀의료센터와 희귀질환센터가 만들어지면서 유전체의학, 정밀의료를 임상에 적용하는 게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밀의료를 구현한다고 하면서도 당장 환자들이 들고오는 유전자 분석결과를 해석할 수 있는 의사가 많지 않았다. 온콜로지스트를 빼면 의료인들에 대한 교육 등이 제대로 안됐던 것이다. 의과대학에서 배울 수도 없는데 될 수 있었겠나. 체계적으로 인력을 양성하고, 그에 발맞춰 연구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클리닉, 센터와 달리 학과라고 했을 때는 단순히 진료만 하지 않는다. 진료 외 교육과 연구까지 삼박자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 진료과를 새로이 개설한다는 게 쉽지 않다고 하던데.

박경수: 임상유전체의학과의 경우 진료과목으로 정식 인정된 과가 아니기 때문에 전공의를 받지 못한다. 진료를 하더라도 청구코드가 없어 각자 소속된 과에서 진료비를 청구하는 방식이다. 환자를 진료하더라도 임상유전체의학과 수입으로 잡히는 게 아니다보니 과에 인력을 더 배치해달라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따라서 병원장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전임의의 경우 지난해보다 1명이 늘어 올해에는 풀타임으로 근무할 수 있는 인원이 2명이나 됐다.

- 임상유전체의학과는 어떻게 구성이 됐으며, 어떻게 운영을 하게 되나.

박경수: 임상유전체의학과에서는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유전체검사 및 진료를 체계적으로 시행하게 된다. 이를 위해 미진단 희귀질환 클리닉(소아·성인) 착상전·산전 유전검사 클리닉 가족성 내분비대사질환 클리닉 유전상담 클리닉 가족성 암 클리닉 등 5개 클리닉을 개설했다. 클리닉은 앞으로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우리 과의 장점 중 하나는 유전질환 등에 특화돼 있는 인력들이 서포트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임상유전체의학과에는 내과, 소아청소년과, 신경과, 진단검사의학과 등 5명의 교수와 전임의 1, PhD3명이 있어 다학제 진료도 가능하다. 클리닉에 온 환자를 혼자서 보는 게 아니라 스페셜리스트 그룹이 서포트 해주게 된다.

- 환자들 입장에서 바로 임상유전체의학과로 오게 되나, 아니면 해당 과에서 보고 임상유전체의학과로 전원을 하게 되나.

채종희: 신환의 경우 바로 임상유전체의학과로 오지는 못한다. 우선 진료협력센터에서 1차로 환자를 스크리닝 하게 된다. 코디네이션이 필요하겠다고 하면 임상유전체의학과로 오게 된다. 다른 병원과 달리 서울대병원 진료협력센터에서는 비전문가가 아닌 간호사가 직접 신환을 트리아지 해주기 때문에 환자들이 어느 과를 가야할지 혼란스러워 하지 않는다. 인력도 대폭 늘렸다.

환자를 보다보면 다른 과의 도움이 필요한 때가 있다. 임상유전체의학과는 환자정보를 관련 있는 의료진들에게 보내 의견을 취합하는 역할을 한다. , 임상유전체의학과 의료진이 지휘자가 되는 셈이다. 환자들은 눈은 A병원이 잘한다고 A병원, 귀는 B병원이 잘한다고 B병원, 이처럼 찢어 다니는 경향이 적지 않은데 서울대병원에서는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의료진들이 희귀질환으로 내원한 환자에게 다학제 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의료진들이 희귀질환으로 내원한 환자에게 다학제 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 유전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사실 의료진들에게도 유전의학은 아직도 생소하고 어려운 학문이다. 특히 희귀 및 유전질환 환자들은 처음 만나는 의사에 따라 정확한 진단이 내려지는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의료진에 대한 교육이 매우 중요할 것 같다.

박경수: 물론이다. 서울대병원에서는 내과의 경우 메디컬그랜드라운드’, 신경과는 뉴롤로지그랜드라운드처럼 과별로 학술모임을 하고 있다. 그러한 각과별 학술모임에 1년에 한두 번씩 참여해서 환자 사례를 보여주고 어떻게 접근하면 되는지 알려주고 있다. 또한 우리 과에서 정기적으로 유전체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어 환자 사례를 직접 올리도록 하고 임상유전체의학과 교수들과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유전자검사방법, 결과 분석, 변이 여부 판정 등을 논의한다.

채종희: 유전체 전문가 자문회의는 임상유전체의학과가 주체가 되어 학원 선생님처럼 정리해서 알려주는 학술모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유전체 전문가 자문회의는 크게 암과 비암 분야로 나뉘어 있는데 원내 의료진들끼리 컨센서스를 모으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 임상유전체의학과 개설로 그동안 각각 운영돼 왔던 정밀의료센터와 희귀질환센터가 통합됐다.

채종희: 임상유전체의학과에서는 유전체의학, 정밀의학에 관련된 병원 내 역량들을 모으고 있다. 유전학을 기반으로 개인연구를 하고 있는 교수들은 많다. 하지만, 각각 자기 소속 과에서 움직이다보니 그 역량이 하나로 모이기란 쉽지가 않다. 그 중심 역할을 임상유전체의학과가 하게 된다.

박경수: 과가 생기기 전에는 서울대병원은 연구중심병원으로서 정밀의료센터, 희귀질환센터 등을 운영해왔다. 그런데 모든 과에 유전체의학을 기반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들이 갖고 있는 데이터를 모아봤더니 어마어마 했다. 그걸 다 모아 환자 데이터와 연결하면 A변이가 있는 사람들이 그 전에는 무슨 치료를 받았는지, 반응은 어땠는지, 이런 것들을 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SNUH바이오포탈'을 구축하기로 했다. 미국 Memorial Sloan Kettering 병원의 ‘OncoKB’‘라고나 할까. Memorial Sloan Kettering 병원은 OncoKB를 통해 암에 대한 각종 정보를 모으면서 세계적인 병원이 됐다. SNUH바이오포탈 구축에만 50억원이 투입된다. 이미 모듈도 준비돼 있다. 2년 안에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SNUH바이오포탈, 정부 빅데이터 구축사업과 시너지 기대

- 정부에서도 빅데이터 구축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

채종희: 임상정보와 연계된 유전체 정보들은 조금씩 있으면 파워가 없다. 그런데 모아져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은 정밀의료의 시대다. 하지만 정밀의료는 유전체 의학에 대한 데이터가 없이는 사실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부 빅데이터 구축사업이 시너지를 내는데도 SNUH바이오포탈이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 SNUH바이오포탈에 쌓인 데이터들을 서울대병원만 아니라 다른 병원 연구자들에게도 공개할 생각인가?

박경수: 물론 다른 병원에도 오픈할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만 갖고 있을 이유는 없다. 따라서 유연성과 확장성을 고려해 외부 데이터가 들어오더라도 잘 돌아갈 수 있게 준비 중이다. 다만 다른 병원 의료진들도 SNUH바이오포탈에 데이터를 넣어줘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전체의 데이터가 어마어마하게 나올 수 있다.

채종희: 유전체 정보는 그동안 연구영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환자들의 임상양상이 변할 때마다 기존에 쌓여있던 유전체 정보들이 업데이트 되어야 에비던스로서도 의미가 있다. 우선 서울대병원에서 검증절차를 거치려 한다. 쌓인 데이터들을 검증해보고, 정말 널리 확대해도 되는지 판단하겠다. 이는 국가중앙병원인 서울대병원의 목적에도 부합한다.

- 유전체 정보를 분석해주는 곳이 많은데 유전의학 전문가들로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채종희: 유전체 정보를 해석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유전체 정보는 충분히 훈련이 되어 있는 전문가들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 개입하면 잘못된 해석으로 병이 아님에도 유전병으로 오인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을 수 있다.

박경수: 트레이닝 없이 정보들만 보고 판단을 하면 안된다. 훈련을 잘 받아야 의미 있는 정보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능하고, 병적인 중요도가 있는 건지 알 수 있어야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 마지막으로 정책이나 제도가 바뀌었으면 하는 게 있나.

채종희: 유전상담에 대한 인식개선이 시급하다. 유전상담은 희귀질환자 치료과정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지만 필요성이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유전상담 필요성이 인정되면 수가신설도 가능할 것이다.

박경수: 유전체 검사의 경우 고가의 검사인데다 남용할 가능성도 있어 조심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잘 몰랐던 유전질환이 발견되고 치료법이 개발될 수도 있어 무조건 검사를 많이 하면 안 된다고만 할 수도 없다. 밸런스가 중요한 이유다. 어떤 환자에게, 어떤 경우에, 어떤 검사를 하게 할 것이냐의 원칙을 잡아주는 게 임상유전체의학과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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