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C·잠실역환승센터·강남구청역에 개원한 의원들
종로3가·역삼역에 의원·약국 밀집한 메디컬존 구성
일반상가보다 시설 기준 엄격…“코로나19로 직격탄"

개원의 핵심은 입지라고 한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이용해 최적의 입지를 찾아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그만큼 새로운 입지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지하철역이 개원가 틈새시장으로 등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요 상권인 역세권이 아닌 지하철역 ‘안’이라는 색다른 장소에서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다.

'지하철 의원'은 이미 등장했다. 지난 2017년 서울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세워진 ‘아이엠유(IMU)의원’이다. 이를 시작으로 2호선과 8호선 잠실역에서 연결되는 잠실역환승센터 아이엠유의원, 7호선과 수인분당선의 더블 역세권인 강남구청역에 위치한 ‘강남365가정의학과의원’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 1호선 범어사역에도 ‘이주원내과의원’이 운영 중이다.

의사들이 개원지로 지하철역을 선택한 이유는 유동인구와 접근성이다. 지역상권의 중심인 역세권에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것처럼 지하철역 유동인구를 병원의 매출로 연결시키고자 했던 것.

강남구청역 역사 내에 위치한 '강남365가정의학과의원'
강남구청역 역사 내에 위치한 '강남365가정의학과의원'

서울교통공사도 사업을 확장했다. 지난해 12월 지하철역에 병원과 약국이 모여있는 의료밀집지역을 구성하는 ‘메디컬존’ 사업을 공고하고 의사·약사 면허를 가진 사업자를 모집했다.

첫 메디컬존이 들어설 역은 종로3가와 역삼역으로, 현재 계약이 완료돼 본격적인 개원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서울교통공사는 이 두 역을 시작으로 다른 역에도 메디컬존을 늘려갈 계획이다.

서울교통공사는 메디컬존을 통해 시민들이 야간과 주말·공휴일에도 병원과 약국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의료 접근성을 강화하고, 임대사업으로 재정난도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메디컬존의 장점은 ‘압도적인 접근성’이다. 평균적으로 지하철역의 이용객은 하루에 4만~5만 명에 육박한다”며 “또 한 공간에서 진료와 처방, 의료기기 구입 등의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메디컬존을 늘려가는 것이 1차 목표다. 이를 위해 입지 조건이 부합하는 장소가 있다면 최우선으로 메디컬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준비할 것”이라면서 “장소가 정해진다면 공사 자체적으로 적극적인 홍보 마케팅을 펼쳐 관심있는 의사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메디컬존을 비롯한 지하철역 개원은 개원시장의 구원투수로 떠오를 수 있을까? 현재 지하철역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들은 아직은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하라서 열악하다? “일반 개원과 똑같아…시설기준은 엄격”

지하철 의원의 장점이자 단점은 그 위치다. 지하철역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역 내에서 편리하게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환기가 잘 되지 않아 감염병에 취약할 수 있다는 편견도 있다.

하지만 지하철역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원장들은 일반 상가에서 개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부산 1호선 범어사역에서 ‘이주원내과의원’을 운영 중인 이주원 원장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하철을 이용하기 때문에 (역사에서도) 환기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역사 자체적으로도 대형 환기팬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기를 순환시키고 있으며 병원도 그 시스템을 같이 이용할 수 있어 감염병에 취약하다거나 환기가 잘 안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환자 입장에선 지하철 환경이 나쁜 것은 아니다. 실내이기 때문에 눈이나 비가 올 때도 편하게 진료를 볼 수 있다”며 “진료환경이 다른 의원보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환자 입장에서는 지하철역에서 나가지 않고 바로 진료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지하철 의원이 늘어나면 환자들에게는 더 좋을 것”이라고 했다.

상가에 개원한 병원과의 차이점으로는 까다로운 시설기준을 들었다. 지하철역이 공공시설인 만큼 안전·방화기준이 일반상가 건물보다 훨씬 엄격하다.

서울교통공사의 메디컬존 임대차계약서에 따르면 지하철역 의원을 지을 때는 도시철도건설규칙 제35조 3항에 따라 마감재로 불연재를 사용해야 한다. 이는 조립식 칸막이, 실내 장식물, 가판대 등의 편의시설에도 포함된다.

서울 강남구청역에 위치한 ‘강남365가정의학과의원’을 운영 중인 남상구 원장은 “시설 기준이 다른 곳보다 엄격하다. 의원뿐 아니라 지하철 상가 내 건물들이 그렇다”며 “마감재도 국산 불연재를 써야하기 때문에 인테리어 비용만 해도 2배 이상으로 들어갔다. 자체적인 검사도 진행하며 한 달에 한 번씩 공무원이 점검하러 방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지하철역 의원의 경우 안전을 위해 인테리어를 변경할 때 허가받는 과정도 복잡하고, 병원 구조도 신경을 써야 할 부분들이 있다”고 했다.

지하철역 개원 ‘대박’?…그들도 ‘내과 박 원장’

지하철 의원 원장들은 '색다른 장소'에서 개원 시장에 도전장을 냈지만 그들도 다른 개원의들처럼 ‘내과 박 원장’의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남 원장은 “개원 입지로 유동인구를 보고 들어왔지만 코로나19로 의료상황이 좋지 않아 내원하는 환자가 별로 없다”며 “밤 늦게까지 운영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재택근무자가 많아지고 사람들도 일찍 퇴근하기 때문에 야간에 진료를 보러 오는 내원객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남 원장은 “메디컬존 사업이나 지하철역 의원이 성공할지에 대해선 ‘퀘스천 마크’다. 코로나19 시국에 전반적으로 개원가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지하철 의원만 특수를 노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 원장은 “(서울에는) 개원한 곳이 3군데 밖에 없기도 하고 역의 위치도 다 달라 판단하기 어렵다”며, “지하철역에 오픈한 병원들은 주로 호흡기 질환 등을 보는 과들이기 때문에 코로나19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코로나19가 지나고 나서 의료환경이 좀 더 정상적으로 될 때까지 지켜봐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도 “대부분의 병원을 보면 지하철역 근처에 있기 때문에 지하철역 안에 개원한다면 접근성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하지만 생각보다 환자에게 노출이 덜 되는 것 같다. 지상에 있는 병원의 경우 사람들이 길을 지나다니며 간판을 보겠지만 지하에 있다 보니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는 환자에게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원장은 “의사 입장에서는 지하라는 다소 생소한 환경에서 개원하는 것에 선뜻 나서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지하철역은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만약 개원을 한다면 잘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양가감정은 있을 것 같다”며 “개원시장이 워낙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블루오션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선은 지하철 의원이 잘 되는 선례들이 많이 쌓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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