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재학 회장
산정특례·활동보조 등 개선 필요…환자들 계층 하락 위기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내건 탈모치료제 급여 공약화로 대선판에 탈모 치료 바람이 불었다. 이 후보에 이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까지 탈모 치료를 거론해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직접 만든 정책제안서로 대선판 문을 두드리는 희귀질환 환자와 그 가족들이다.

희귀질환자는 '희귀'해서 치료가 어렵고 지원이 어렵고 삶이 어렵다. 희귀함 때문에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누구도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당장 희귀질환자를 위한 현재의 제도조차 그 고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재학 회장은 "기존 (희귀질환 관련) 제도도 희귀질환자 관점에서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희귀질환의 특성을 반영해 제도의 안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샤르코 마리 투스병(Charcot Marie Tooth disease, CMT)' 환자로 지난 2005년 '희귀질환자'로 진단됐다. CMT 환자는 운동·감각 신경이 손상돼 팔다리 근육이 약화되고 감각소실 등이 일어나는 병이다. 삼성그룹과 CJ그룹 오너가 유전질환으로 '그나마' 알려진 희귀질환 중 하나지만, 지원이 활발하지 않고 완치가 가능한 '꿈의 치료제'도 없다.

다수의 희귀질환자들이 처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김 회장은 “단 한 명의 희귀난치성질환자를 위해서라도 일하는 단체가 되자"를 모토로 삼고 활동하겠다고 했다.

김 회장은 희귀질환자들이 낮은 사회적 인식과 제도의 사각지대라는 이중고에 놓여 있지만, '단 한 명의 환자'를 위해서라도 "(제도 개선을 위해) 계속 두드리겠다"고 했다.

김재학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장은 지난달 21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희귀질환자 제도 마련은 물론 기존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학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장은 지난달 21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희귀질환자 제도 마련은 물론 기존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대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장을 맡은 소감은.

사실 고민이 많았다. 잘 알고 있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내왔지만 잘 모르는 부분은 전혀 관여를 안 했다. 연합회장 자리를 맡았다가 모든 환자단체에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 컸다. 하지만 민폐가 아니라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인생에 의미 있는 한 걸음이 되리라는 생각에 회장직을 맡게 됐다.

앞으로 희귀질환과 연합회의 존재를 더 많이 알리는 일에 집중할 생각이다. 희귀질환 환자단체가 모여있지만 아직 연합회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환자단체도 많다. 작은 환자단체들이 연합회를 찾아 조금이라도 힘을 모으면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 백혈병·림프종 CAR-T 세포치료제 '킴리아' 급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하지만다른 초고가 희귀질환 신약들의 경우 급여 적용까지 난관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워낙 적어 치료제 개발이 힘들고 수익성 창출도 쉽지 않다. 약이 나와도 건강보험 급여 과정에서 환자가 피부로 느끼는 속도가 너무 더뎌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치료제가 건강보험제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면 웬만한 사람은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 그러니 '희망 고문'이 된다. 연합회에서는 약이 개발되면 가급적 빠른 시간 내 환자에게 적용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허가와 동시에 급여 절차를 같이 시작하는 '신속등재제도', '선등재 후평가'로 제약사와 정부가 경제적 부담을 함께 감당하는 구조를 만들었으면 한다.

-최근 정부가 ‘고가의약품 급여관리 포럼’을 열어 약가 사후관리제도 필요성에 공감하고 관련 정책 마련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노력하고 있음은 알고 있다. 그러나 '경제성평가면제제'나 '위험분담제(RSA)'처럼 이미 도입된 제도는 암과 관련된 중증질환에 집중돼 있다. 이런 제도에서조차 희귀질환은 한 번 더 소외된다. 희귀질환이라는 말 자체가 희귀, 즉 희소하다는 뜻이다. 희귀질환을 갖고 태어나면 완치제가 나오지 않는 한 평생 치료받으며 살아야 한다. 희귀질환자의 건강권, 치료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일이다.

-희귀질환 치료제 급여 등제 외 지원이 시급한 곳을 꼽으면.

유전질환 대물림 문제다. 자식에게 유전질환이 대물림되면서 자괴감을 느끼는 부모가 많다. 가정이 파손되고 서로 헤어지기도 한다. 처음부터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하지 않는 부부도 있다. ‘착상전 유전 진단법(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 PGD)’이면 희귀 유전질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착상전 유전자 검사부터 산모 자궁에 착상하는 과정까지 비용이 거의 지원되지 않는다. 희귀질환자는 일반인보다 PGD 비용이 더 들어간다. 한 회당 400만~500만원 선이다. 하지만 이것도 평생 희귀질환 치료로 들어갈 약재비에 비하면 훨씬 적은 수준이다. 이 부분을 지원하면 유전질환으로 인한 대물림을 차단하고 사전에 사회적 비용 소모를 방지할 수 있다.

-회원지 ‘엔젤스푼’ 최근호에선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을 다루면서 산정특례의 제도적 한계를 지적했다. 신약 접근성 외 산정특례를 받는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희귀질환이 산정특례 대상이라도 늘 혜택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CMT의 질병적 특성으로 인해 보행 중 넘어져 골절을 입은 경우, 골절상을 합병증으로 판단해 산정특례로 치료하는 의사가 있는 반면, 별개 질환으로 보고 산정특례 적용을 하지 않는 의사도 있다. 때문에 병원에 갈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환자들이 많다. 의사와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또 응급상황에서 희귀질환자가 가까운 병원을 찾아도 원래 진료받던 병원으로 전원을 권하거나 아예 진료를 거부하는 예도 있다. 의료진도 들어본 적 없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장애판정제도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모든 희귀질환이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지 않다. 장애 등급 판정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이 상태에서 멈추느냐 아니면 질환이 계속 진행돼 상태가 나빠지느냐가 기준이다. 휠체어를 타거나 중증으로 진행하면 영구장애판정을 받지만, 외적으로 봐서 그렇지 않거나 휠체어 대신 보조기를 차고 보행이 가능한 환자는 (장애)등급 판정이 잘 나오지 않는다. 기준이 모호해서 담당자마다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된다. 의사 처방이나 자료를 제시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기준으로만 판정하는 경우가 많다. 희귀질환 장애 판정 절차의 매뉴얼화가 필요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장애판정위원회에 매뉴얼이 있지 않나.

공단 장애판정위원회 매뉴얼은 일반 장애 기준이지 희귀질환에 대한 기준이 아니다. 희귀질환 특성을 반영한 별도 트랙이 없다. 그래서 희귀질환자가 힘들다. 지난 2015년 희귀질환관리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많은 내용이 개선돼야 한다. 법 자체에 허술한 부분도 있고 살을 붙여야 하는 숙제도 많다.

-앞서 희귀질환자는 응급상황에도 바로 찾을 만한 병원이 없다고 지적했는데, 이에 질병관리청이 희귀질환 권역별 거점센터를 확대하고 의료인을 육성하겠다고 했다. 이러한 계획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보나.

거점센터 필요성과 활성화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다. 희귀질환 각각에 대해 신뢰와 믿음을 주는 의료진이 많고 가까운 곳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면, 환자 입장에선 당연히 좋은 일이다. 지금도 희귀질환을 다루는 의료진이 워낙 제한적이라 환자들끼리 추천 아닌 추천을 하게 돼 한쪽으로 몰리는 형국이다. 때문에 지역 거점센터 의료진의 전문성이 확보돼야 한다. 또 체계적으로 의료인을 양성한다는 계획은 좋지만, 양성된 의료인이 지역 거점센터를 선택하도록 만드는 고민도 함께 이뤄져야 하겠다.

오히려 지역 거점센터를 재활센터로 특화하고 재활센터 기능에 집중하는 것이 예산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질환 특화 병원을 육성하는 방법도 있다. 특화 병원이 희귀질환자 임상 데이터를 계속 쌓아가는 것이다. 현재는 이런 데이터가 없어서 외국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상황이지 않나. 중요한 점은 이런 병원은 정부 지원이 있어야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희귀질환 진료는 수익성이 없어 병원이 적극적으로 환자를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 의사가 희귀질환 상담을 오래 하니까 시간을 줄이라고 압박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보다 나은 희귀질환자 치료 환경을 위해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꼽으면.

'돌봄' 문제를 들 수 있다. 특히 희귀질환 아동 돌봄 문제가 크다. 현재 희귀질환자 활동보조사업에선 직계 가족이 활동보조인으로 등록하지 못하게 돼 있다. 많은 부모가 아이를 직접 돌보길 원하는데도 불가능하다. 부모가 지원금만 받고 아이 돌봄에 안 쓴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구멍'을 우려해 많은 사람이 혜택 받을 기회를 막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희귀질환 가정끼리 서로 활동보조인 등록을 하고 지원 받는 경우도 있다. 제도가 편법을 조장하는 셈이다.

활동보조가 필요한 이유는 활동보조인이 아이를 보는 동안 부모가 경제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가정이 희귀질환 때문에 경제적 계층 하락 위기에 처한다. 직계 가족도 활동보조인이 되고 그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이뤄지면 안정적인 돌봄은 물론 경제적 안전망도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제도에 반영되지 않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편법이)허용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고령 희귀질환자 지원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나.

고령 희귀질환자는 일반인과 장애인 사이 애매한 경계선에 서 있다. 복지관 이용만 해도 쉽지 않다. 고령 희귀질환자를 위한 별도 시설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공간을 함께 이용하는 방향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비단 희귀질환자뿐만 아니라 고령층 장애인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장애인이 65세 이상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로 전환되면 활동지원제도 같은 서비스가 중단되는 아이러니칼한 상황이 발생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힘들어지는데 65세가 넘으면 정책적 지원이 끊기고 노인요양시설에 갈 수밖에 없다. 정부가 꾸준히 정책을 개발하고 지원하지 않으면 이들의 삶은 보장받지 못한다.

사회가 희귀질환과 희귀질환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희귀질환자 수가 아무리 적더라도 그 고통에 대한 사회적 공감은 커지길 바란다. 갈 길은 멀고 어려움 많겠지만, 그래도 계속 두드려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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