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안암병원, 중독사고 상담·예방하는 서울시 ‘중독관리센터’ 위탁운영
WHO 인증 획득이 목표…중독질환 예방·대처 위해서는 DB 구축이 중요
이성우 센터장 “실시간 모니터링 시 심각한 중독사고 예방”
“아이들 중독 사고 많아…연령에 맞는 교육·정책 이뤄져야”

실험실에서 독성물질에 노출됐지만 방독면을 쓰고 있어서 당장의 증상은 없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나중에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몰라 걱정된다. 과연 이 사람의 걱정과 고민은 어디서 해소해줄 수 있을까?

그곳은 바로 ‘서울시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이하 중독관리센터)다.

지난해 10월 서울시 조례로 중독관리센터가 설립됐다. 중독관리센터는 고려대안암병원에서 위탁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독성물질 정보제공 홈페이지와 상담콜센터를 오픈하면서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라돈침대 파문 등 생활 속 유해물질 노출사고가 증가함에 따라 독성물질 중독 예방과 안전에 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이에 중독관리센터는 독성물질 DB(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중독상담 콜센터를 운영하며 중독사고 예방 관련 교육·연구를 수행하며, 수집된 중독 상담 정보를 분석해 중독사고 감시체계를 확립한다는 방침이다.

무엇보다 2023년 말까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규정한 중독관리센터 가이드라인을 충족해 국제인증센터로 거듭난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현재 약 100개 국가에서 WHO 인증 중독관리센터를 운영 중이나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무하다. 서울시 중독관리센터가 WHO 인증을 획득할 경우 국내에서 유일한 국제적 수준의 중독관리센터가 된다.

최근 기자와 만난 서울시 중독관리센터 이성우 센터장(고려의대 응급의학과)은 “독성물질에 노출됐지만 정보를 얻지 못해 우왕좌왕하거나 과도한 불안감에 휩싸였을 때 또는 증상이 있어서 병원에 갔지만 원인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되지 않을 때 중독질환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바로 중독관리센터”라며 “일본, 동남아시아, 심지어 아프리카에도 있는 중독관리센터가 그동안 한국에는 없었다. 아직은 오픈 초기이지만 센터를 점차 확대·강화해 더욱 고도화된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 이성우 센터장은 중독질환을 예방하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보제공이 중요하다며 DB 구축을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수집된 독성물질 노출 정보의 관리·분석을 거쳐 ‘서울시 중독감시지표’를 만들 예정이다. 최종목표는 WHO 국제 인증을 획득해 국제적 수준의 중독관리센터가 되는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서울시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 이성우 센터장은 중독질환을 예방하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보제공이 중요하다며 DB 구축을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수집된 독성물질 노출 정보의 관리·분석을 거쳐 ‘서울시 중독감시지표’를 만들 예정이다. 최종목표는 WHO 국제 인증을 획득해 국제적 수준의 중독관리센터가 되는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중독질환 올바른 정보제공 위해 DB 구축 필수

전 세계마다 운영방식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중독관리센터의 가장 큰 역할은 ‘중독질환에 대한 올바른 정보제공’이다. 이를 위해선 정보제공의 토대가 되는 DB 구축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화학물질 및 제품, 의약품, 농약, 천연독 등의 중독물질 데이터가 정부 각 부처에 분산돼 있어 정보 습득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현재 센터는 26만5,000건 정도의 DB를 확보했다.

이 센터장은 “중독질환을 관리하고 예방하기 위해서 가장 핵심적인 기능이 상담기능이다. 제대로 된 상담을 하려면 중독물질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할 텐데, 각 정부부처가 구축한 오픈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에는 중독물질 이름만 나오고 흡입·섭취 시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등은 찾기 힘들다”며 “아무리 DB를 잘 구축해도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센터는 DB를 완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닌 곳곳에 흩어진 정보를 한 곳으로 모은 뒤 만들어진 DB를 잘 활용해서 시민이나 의료진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며 “우리나라에 없는 독성물질 정보들도 잘 축적해서 감시체계화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DB를 일원화하면 119구급서비스 이용이 줄고 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도 내다봤다.

이 센터장은 “바른 정보만 제공된다면 불필요한 의료기관 방문을 줄이고, 시민들의 막연한 불안감도 없을 것”이라며 “어떤 연령대가 이런 물질에 노출되기 쉽다고 상담정보가 쌓이다보면 어느 상황이라도 대처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한정된 의료자원을 더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어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센터 운영은 이롭다”며 “나아가 정보들을 다른 나라와 공유하게 된다면 중독물질에 대한 전 세계의 공동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중독관리센터-권역응급의료센터-중독분석실로 이뤄진 협력체계 유지도 필요하다고 했다.

전 연령대 아우르는 중독감시지표 만들어져야

현재 미국은 응급실 기반의 손상감시시스템을 활용해 중독환자 발생추이를 수집하고 있고, 중독감시체계를 수립해 중독환자 발생양상을 관리하고 있다. 또한 미국독극물통제센터(AAPCC)를 통해 국가독극물데이터시스템(NPDS)을 구축하는 등 중독정보시스템을 통합 운영하고 있다.

NPDS처럼 한국의 중독감시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이 센터장의 최종 목표다. 이를 위해 우선 전화, SNS, 홈페이지 등 다양한 상담채널을 통해 수집된 독성물질 노출 정보의 관리·분석을 거쳐 ‘서울시 중독감시지표’를 만들 예정이다.

서울시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 이성우 센터장(가운데)과 연구원들이 센터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 고려대안암병원)
서울시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 이성우 센터장(가운데)과 연구원들이 센터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 고려대안암병원)

이 센터장은 “중독 발생 연령대, 위험도, 발생경로, 원인물질 분포 등을 차곡차곡 모으다 보면 그게 중독감시지표가 되는 것”이라며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해져 인과관계를 빨리 파악할 수 있게 되면 가습기살균제 사건처럼 심각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센터장은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중독감시지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도 했다. 특히 안전취약계층인 어린이의 경우 의약품, 의약외품, 가정용 청소 및 세탁용품 등에 의한 가정 내 비의도적 중독 사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가정 내 독성물질 노출 예방을 위한 활동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센터장은 “미국은 10대 이하가 중독질환자의 50%를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0%도 안 된다”며 “부모들이 아이들을 엄격하게 교육해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단순 조사방법의 차이다. 미국은 AAPCC에서 이뤄진 전화상담을 포함한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통계를 낸다. 우리도 이 점을 참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 어디서나 중독질환 발생은 아이들한테서 가장 많기 때문에 부모와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모자보건센터 교육 일정에 중독관리센터 교육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식으로 교육을 진행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중독관리센터의 존재 가치를 알린다는 계획이다.

이 센터장은 “처음 성과와 과정이 미약할지라도 모두가 관심 갖고 홍보하고 활용해줬으면 좋겠다”며 “단기적인 성과목표에 치중하지 않고 좋은 결과들을 쌓아서 장기적으로 센터의 가치가 실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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