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내과 박성광 원장

말기 간질환, 심장질환, 폐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나 투석을 받고 있는 만성신부전 환자들에게는 뇌사자 장기이식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중환자실에서 신음하던 이런 분들이 장기이식을 받고 일이주일 만에 건강해진 몸으로 웃으며 걸어서 퇴원하는 것을 보는 것은 의사로서 큰 보람이고 마치 마술이나 기적을 보는 것 같다. 이식을 받고 병상에서 엄지척을 하고 로또 일등에 당첨된 것보다도 이제는 살게 되어 더 기쁘다는 환자도 있었다.

나는 이제까지 이십년 동안 뇌사가 의심되는 환자의 보호자 분들을 만나서 뇌사 상태와 장기기증의 절차에 대해서 설명하고 가족의 장기를 기증하여 이식수술밖에 희망이 없는 말기중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주시라고 권유하는 일을 해왔다. 전북대병원에서는 1998년부터 이제까지 232명의 뇌사자를 관리하고 총 822개의 장기를 기증받아서 말기중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선사하였다.

대부분의 뇌사자 장기기증자의 가족들은 말 그대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기증에 동의하신다. 얼굴에 아직 혈색이 돌고, 심장도 뛰고, 체온을 유지하고 있고, 소변이 펑펑 쏟아지고, 호흡기에 의존해서라도 숨을 쉬고 있으며, 따뜻한 체온이 유지되고 있는 자식, 형제 혹은 부모님을 뇌파가 평탄해서 뇌사에 빠졌고 만에 하나라도 회복할 희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믿고 덜컥 장기를 기증하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다만 이미 전혀 희망이 없다니까 죽어가는 다른 사람이라도 살리자는 숭고한 이타심에서 어렵게 기증을 결심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가족이 며칠 내에 사망해서 화장이나 매장을 하면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지만 그 심장, 폐, 간, 신장, 췌장, 소장, 각막 등이 죽을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고 그 누군가의 몸 속에 있으면서 이 땅위를 걸어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을 주기 마련이다. 나는 이제까지 수많은 가족들을 기증 전후에 만나 보았지만 그 때는 어렵게 결정을 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정말 기증하기 잘했다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 조금이라도 후회가 된다는 분은 만난 적이 없다.

장기기증을 권유하는 일은 20년을 넘게 해 왔어도 무척 어려운 일이다. 뇌사 환자의 가족들이 의사로부터 가장 듣기 원하는 말은 상태가 아무리 비관적이더라도 기적이라도 바라보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는 말이지 희망이 없으니까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살려달라는 소리는 전혀 아니다. 그래서 기증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화를 버럭 내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분도 있고 어떤 아버지는 아드님의 장기를 기증해 줄 수 없겠느냐고 하자 “박 교수가 지금 당장 장기를 기증하면 내 아들 장기도 기증하겠소” 해서 “저는 아직 살아있고 지금 장기를 기증하면 죽게 되는데요” 하니까 “그건 내 아들도 마찬가지요”라는 대답을 들은 적도 있었다.

장기기증 문화가 옛날보다 확산되기는 하였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부모님께 받은 신체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라는 전통적인 유교사상으로 인해 복부를 열고 장기를 기증한다는데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훨씬 어렵다.

얼마 전 전북대병원에 자택에서 의식저하와 사지 강직을 보인 61세의 남자환자가 구급차로 이송되었다. 누워있던 베개에 혈흔이 묻어있는 것을 아내가 발견하여 119에 신고했다고 했다. 사고 당일 지인과의 폭행 사건이 있어 피해자 신분으로 고소를 진행 중인 환자였다. 환자는 도착 당시 반혼수 상태여서 응급으로 두개골절제술과 혈종제거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의식의 회복이 없이 혼수상태가 지속되며 자발호흡이 없어 호흡기에 의존한 채 9일이 지나서 뇌파검사 상 평탄한 뇌파를 보여 뇌사로 추정되는 상태가 되었다.

의료진으로부터 환자 상태가 회복이 불가능하고 며칠 새에 사망하실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듣고 장기를 기증하기 원하는 가족들의 동의를 받아 하루에 걸쳐 뇌사판정 및 장기기증 절차를 진행하였고, 뇌사판정위원회에서 최종 뇌사로 판정을 받아서 우리 병원과 타병원에 간과 신장을 수혜 받을 환자들이 학수고대하던 이식수술의 희망을 가지고 입원하였다. 이 후 환자분의 사인이 병으로 인한 것이 아니고 외인사여서 야간에 응급으로 전주지검에 검시 전 적출 승인을 요청하였으나 환자가 형사사건의 피해자로 사망과 범죄행위의 인과관계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고 향후 부검이 필요하여 적출이 불가하다는 통지를 받았다. 이 통지는 최후통첩의 성격을 띤 것이고 이제껏 재심의를 요청한 적도 없어서 담당 코디네이터는 어렵게 장기 기증을 결정한 뇌사자의 가족들과 장기 이식대상자로 선정되어 수술만을 기다리다 낙망할 대기 환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가 막막하여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새벽 1시에 다급한 마음에 내가 전주지검에 달려가서 당직 중인 여검사님을 만났다. 죄진 것은 없어도 평생 처음으로 검찰에 가니까 왠지 주눅이 들고 검사님이 무서운 분으로만 생각이 되었는데 내 명함을 드리니까 수고가 많으시다고 하며 소파에 앉으라고 하고 차를 권해서 마음 놓고 사정 얘기를 했다. 간장을 기다리는 환자는 수술을 못 받으면 죽을 수밖에 없고, 기증자도 혈압이 감소하여 승압제로 혈압을 유지하고 있는 응급상황이라 오늘이라도 사망할 수도 있으며, 환자의 사인은 뇌출혈이고, 기증할 장기는 사인과 관계가 없는 간과 신장이기에 만약 가능하다면 복부를 절개하여 장기적출 수술을 시행한 후에 부검을 진행해주시면 좋겠다고 간청하였다. 다행히 검사님께서 상황을 이해하시고 가족들에게 향후에 장기적출에 동의한 문제, 상해사건 본 건 협의문제가 불투명해지더라도 장기기증에 동의한 부분에 크게 의의가 없다는 확인서를 요구하여 서둘러서 작성, 서명하여 제출하니 바로 부검 영장 신청을 내주셨다. 환자가 촌각을 다투기에 아침에 법원 민원실에 달려가서 담당자에게 급한 사정을 말씀드렸고 그 자리에서 영장담당 판사님께 전화를 걸었는데 당시 재판을 진행중이시라서 다른 부장 판사님께 찾아가게 되었고 급한 사정을 또 한 번 말씀드리자 검토하고 바로 영장을 발부해주셔서 다시 검찰에 가니 검사님께서 즉시 장기적출 승인을 해주셔서 바로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를 통하여 타 병원 수술 팀에게 연락하고 서둘러 적출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다.

환자의 간장은 복막을 열어본 결과, 수술 전에 초음파 검사로 확인한 것보다 심한 간경화가 있어서 적출하지 못했고, 2개의 신장과 2개의 각막을 적출 한 후에 뼈, 심장판막, 혈관 그리고 피부 등 조직까지 적출을 했는데 이 조직들은 냉장보관을 했다가 필요시에 뼈암 환자나 화상 환자 등 필요한 수많은 환자들에게 이식되게 된다. 조직기증까지 끝난 후에 1시간 정도에 걸쳐 부검이 실시되었고 이후 가족들에게 시신이 인도되어 무사히 장례를 치룰 수 있었다.

검찰에서 합당한 이유로 적출승인이 불가하다는 통지를 받으면 번복하기가 매우 어렵고 설사 번복되었다 해도 부검 영장이 신청되면 접수해서 판사님께 배당하여 검토되어 발부되는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환자의 사건을 담당하셨던 전주지검의 검사님, 전주법원의 부장판사님을 비롯한 직원들이 절박한 상황에서 생명이 꺼져가는 환자들의 입장을 헤아려서 적극적으로 신속하게 처리해주셨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장기기증을 할 수 있었다.

장기 구득을 하기 위해서는 수술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심장이 멈추기 전까지 최소한 3-4시간 정도가 필요한데, 승압제를 투여하며 겨우 심폐 기능을 유지하고 있던 환자는 수술실로 이송한 지 한 시간 정도 되었을 때 갑작스럽게 심장이 멈추는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여 간신히 맥박이 돌아와 긴박하게 수술이 진행되었다. 다행히 환자는 신장 2개, 각막 2개를 기증하여,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 선정한 환자들에게 성공적으로 이식되었다. 만약 검찰과 법원에서 적출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한 시간이라도 더 늦어졌더라면 기증자가 사망하여 수술이 불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뒤 신장과 각막 이식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다행히 경과가 좋아져서 퇴원하였다.

본래 상해사건에서 부검이 필요한 경우에는 부검 전에 사체가 손상되면 정확한 부검에 지장이 있을까 봐 장기기증을 못하는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4명의 말기 환자분들과 조직을 받은 수많은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얻게 해주신 유족들과 담당검사님을 비롯한 검찰관계자 분들, 부장판사님을 비롯한 법원관계자 분들 그리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듯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여 합력해서 선을 이룬 수많은 의료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현행법에는 혹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하여 장기기증자 가족과 기증받은 환자가 서로 알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가끔 장기기증을 받고 새 생명을 얻은 환자들이 기증자 가족들에게 보내는 감사 편지나 조그만 감사선물을 우리병원 장기이식센터에 가져오시는 일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먼저 기증자 가족에게 이식자로부터 받은 편지를 전해드려도 좋을지 전화로 여쭈어보는데 대개 대답이 그렇지 않아도 우리 애의 장기를 받은 환자분이 건강하게 회복이 되셨는지 지금까지 잘 살고 계신지 궁금했었는데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그 후에 우리가 이식 환자분의 이름은 지우고 우편으로 기증자 가족에게 보내드린다. 기증자 부모님들은 편지를 받았을 때 기증한 자식을 만나는 듯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고 반가워하시면서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시라는 답장을 수혜자에게 보낸다. 장기이식센터가 우체부 역할을 함으로써 뇌사자 장기기증 가족들에게 적게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 또 기증을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더욱 확산되길 바란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이식의료기관들이 저마다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좀 더 노력하고, 장기기증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되어 뇌사자 장기기증이 활성화가 되어서 더 많은 말기 환자들이 새 생명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글을 쓰면서 삼가 장기를 기증하신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가장 거룩한 생명의 보시인 한 번 만난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말기 중환자들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어렵고도 숭고한 결정을 해준 가족 여러분들에게 새 생명을 수혜 받은 수많은 환자들을 대신하여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기증자와 유가족 분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애써주시는 많은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수상소감> 박성광 함께하는내과 원장
박성광 원장
박성광 원장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제까지 글짓기 상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수상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다른 병원의 후배 의사들 중에 이 귀한 일을 담당해 줄 의사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뛸 듯이 무척 기뻤다.

몇 달 전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의사라는 직업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으로 강의를 했다. 한 학생의 “오랜 의사생활에서 가장 보람이 있었을 때와 가장 실망했을 때는 언제입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뇌사자 가족들을 설득하여 어렵게 기증 승낙을 받아 이식외의 치료법이 없는 말기환자들이 새 생명을 얻었을 때 가장 보람이 있었고 설득에 실패했을 때 가장 실망이 컸다”고 대답했다.

41년 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아니었으면 사망했을 환자를 살렸다”라고 말할 수 있는 환자는 많지 않았다. 내가 아니어도 나보다 더 훌륭한 다른 의사가 살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증을 생각하지도 않았거나 망설이는 가족들을 설득해 기증받은 장기로 새 생명을 얻게 된 얼굴도 모르는 환자들은 내가 살리는데 큰 도움을 줬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나중에 내가 죽어서 하나님이 나에게 “너는 죄가 이렇게도 많은 데 혹시 무슨 선한 일을 한 적이 있으면 말해 봐라” 하고 물으실 때 “저는 뇌사자 가족들에게 가끔 심한 욕을 얻어먹기도 했지만 장기를 기증하도록 끈질기게 설득하여 말기환자들이 새 생명을 얻게 하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려 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40년 동안 옆에서 도와주면서 글을 쓰도록 독려해 준 ‘Soulmate’인 아내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이 글에 나오는 백수진 검사님과 강두례 판사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 시간에도 내 뒤를 이어 뇌사자 가족들을 만나서 기증을 설득하고 있는 전북대학교병원 이식센터장 이식(李植) 교수님을 포함한 이식의료진들과 신경외과 교수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리고 상금은 전북대학교병원에 기증하여 도움이 필요한 이식환자들의 진료비로 사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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