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한국의 의료시스템은?②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
“치매, 국가책임제 아닌 국민·지역사회 함께하는 ‘국민책임제’돼야”
“치매 치료·관리에 일차의료 역할 빠져 있어…수가체계 개선 必”

2020년 전국 시군구 10곳 중 4곳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현 추세대로라면 2025년 한국 전체가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2018년 고령사회에 접어든 후 불과 7년만에 초고령사회로 넘어가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고령사회(1994년)에서 초고령사회(2005년)로 넘어가기 까지 11년이 걸렸음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속도다. 그럼, 초고령화 사회를 맞닥뜨리는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관련 학술단체 수장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펜데믹으로 치매환자 관리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치매 환자들의 인지능력 유지를 위한 교육과 치매환자 가족들의 숨통을 터주던 데이케어센터 운영 등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치매국가책임제’가 차기 정부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지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7년 9월 치매 환자와 가족의 고통·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치매국가책임제’를 추진했다. 치매 예방부터 돌봄, 치료, 가족지원 등 치매를 개별 가정이 아닌 국가 돌봄 차원의 전주기적 치매 관리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게 제도의 핵심이다. 최근에는 ‘4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을 세워 다양한 지역사회 자원을 연계해 돌봄 역량을 강화하고, 치매 환자 가족의 부담을 경감시키겠다고 했다. 2021년 현재 전국 256개 시·군·구에 치매안심센터가 설치되고, 치매안심병원 및 공립 치매전담형 노인요양기관이 설립되는 등 인프라 측면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기자와 만난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고려대안암병원 신경과)은 치매 관련 시설 수만 늘어났지 이를 담당할 전문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치매를 진료·치료하는 의사와 다른 의사를 교육할 만큼 치매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잘 아는 의사, 치매 환자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갖는 의사가 서로 협조하는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치매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고충이 커졌다면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박 이사장에게 코로나19 상황에서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이 처한 현실과 이들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들었다.

한편,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국내 노인 인구는 2017년 708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4%를 차지하는데, 이 중 추정 치매 환자 수는 같은 해 73만명에서 2020년 84만명으로 증가했다. 이대로라면 오는 2030년에는 치매 환자가 136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도 늘어 2019년 기준 치매로 인한 1인당 연간 의료비는 298만원이며, 장기요양비용은 약 1,400만원으로 추정된다.

지난 6일 고려대 의과대학에서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을 만나 국내 치매정책 방향과 치매의료시스템 개선점 등을 들었다.
지난 6일 고려대 의과대학에서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을 만나 국내 치매정책 방향과 치매의료시스템 개선점 등을 들었다.

- 코로나19 때문에 치매 어르신들의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려움들을 다 겪고 있다. 치매 환자는 운동을 안 하면 증상이 더 나빠지는데, 코로나19로 외부활동이 많이 줄었다. 또 인지능력 유지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회와의 상호관계다. 하지만 이 관계가 코로나19 때문에 다 끊어졌다. 그래서 치매 어르신들에게는 오늘이나 내일이나 모레가 다 비슷비슷한 하루가 됐다.

- 치매 어르신뿐만 아니라 치매 가족들도 고충이 클 것 같다.

치매 환자와 함께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긴 가족들은 환자의 소위 이상행동 증가로 고충이 커졌다. 데이케어센터가 낮 동안만이라도 환자를 돌봐주면 부담을 덜 수 있을 텐데, 코로나19로 문 닫은 곳이 많아서 그것도 어렵게 됐다. 환자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있어도 코로나19 때문에 가족면회가 힘들어져 가족들은 환자가 시설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이 어렵고 이로 인해 환자와 가족 모두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치료와 돌봄이 필요한 치매 어르신은 늘어날 텐데, 우리나라는 시설이나 인력, 서비스 등에서 준비가 충분하다고 보나.

(인력적인 측면에서) 요양보호사가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양적인 팽창만 있었지 질적인 깊이는 없다.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질적인 교육 수준을 끌어올려서 국민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시설적인 측면에선) 치매국가책임제의 일환으로 전국으로 퍼진 치매안심센터를 통해 치매를 관리하겠다는 계획 자체만으로 의미가 크다고 본다. 지역 내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어르신에 대한 인식 개선뿐만 아니라 그분들을 위한 여러 정책에도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센터 수만 늘어나고 이를 담당할 전문가가 없다.

결국, 인력이나 시설 면에서 준비가 충분해서 정책을 추진한 게 아니라 가야 할 목표를 먼저 정해놓고 지금부터 준비하는 단계라고 봐야 한다. 어떤 조직과 구조가 있다면 그것을 채워가는 것이 앞으로의 남은 몫일 것이다.

- 치매 어르신을 통합적으로 돌보고 치료하기 위해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어떻게 개선돼야 한다고 보나.

감기에 걸렸으면 동네 병원에 가고, 폐렴 정도 되면 가까운 종합병원에 가고, 패혈증이 오면 대학병원으로 갈 텐데, 치매가 의심되면 어디에 갈까. 대학병원 신경과부터 찾을 것이다. 치매 치료·관리에 있어 일차의료 역할이 빠져 있다는 게 우리나라 치매의료시스템의 문제다. 이렇다 보니 치매는 의료보다 복지의 영역이라는 느낌이 들고, 치매는 의사가 볼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이다.

즉, 3차병원 이전의 중간단계(1·2차병원들) 역할이 중요한데 아무도 거기에 대해 관심이 없다. 관심을 유도하려면 결국 수가체계가 개선돼야 한다. 치매 환자는 이야기도 잘 이해 못하고 치료에 비협조적인 경우가 많은데 의사 입장에서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돈이 안 된다고 하면 누가 이들을 보려 하겠는가. 치매 환자를 보면 작은 이득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다. 지역의료기관들이 치매 환자를 보게 하기 위해선 유인요소가 있어야 한다.

일본도 동네의사가 치매 여부를 진단하지는 않는다. 근데 이 중에서 대학병원 의사보다 치매에 대해서 더 잘 아는 동네 치매 전문 의사가 있다. 대학병원에 온 환자가 치매가 의심되면 대학병원 의사는 이 전문 의사에게 환자를 봐달라고 의뢰한다. 또 이 의사를 중심으로 지역 치매의료시스템이 형성된다.

일본은 왕진시스템도 잘 돼있다. 대학병원 의사가 왕진을 가는 경우도 있지만 바빠서 잘 못 간다. 하지만 왕진 전문 의사가 있어 대학병원 의사가 이 의사에게 의뢰를 한다. 치매 어르신은 치매가 있지만 생명지표는 비교적 안정돼 있어 왕진의사가 찾아가는 빈도는 많지 않다. 대신 어떻게 지내는지, 살고 있는 주거환경이 환자에 맞는지, 가족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제대로 된 지역사회 도움을 받고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모자란 것들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앞으로 치매를 전문으로 진료·치료하는 의사와 다른 의사를 교육할 만큼 치매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잘 아는 의사, 치매 환자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갖는 의사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협조하는 체계가 돼야 한다. 이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

- 치매안심센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치매안심센터는 공공의료에 가깝지 치매와 관련된 모든 것의 중심이 아닌 민간병원과 가장 잘 협조하는 기관이 돼야 한다. 동네의원이 치매안심센터에 치매 환자 치료를 위해 도움을 요청할 때 서로 협조하는 체계가 돼야 하지, 반대로 치매안심센터가 의사들에게 지시하는 형태가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또 치매안심센터는 너무 높은 대학병원 치료 문턱을 낮추려고 만든 곳이다. 하지만 자꾸 그 역할을 잊어버린다. 치매안심센터가 치매 치료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 문재인 정권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정부 핵심 정책 중 하나였던 치매국가책임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이제는 치매국가책임제가 아니라 ‘치매국민책임제’가 돼야 한다. 국가에서 뭘 책임지겠다고 하면 손을 놓는 경우가 많고, 일정 상한선까지만 챙기고 그 이상은 내버려두는 경우가 많다. 국가는 국민들이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만 할 것이지 국가에서 뭘 그렇게 책임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국가가 아닌 가족들과 지역주민들이 치매 환자를 책임져야 한다. 4차 치매관리종합계획에도 국가와 민간과의 협조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이야기를 안 해 아쉽다.

- 차기 정권에 바라는 치매 정책이 있다면.

수가 개선과 치매 환자 가족 케어, 이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환자 치료보다 가족 치료가 더 빠르고 효과적인데 왜 여기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 바이오젠의 아듀헬름(아두카누맙)과 같은 치매 신약이나 초음파 뇌자극 등 새로운 치매 치료법들이 등장하고 있다.

아두카누맙은 치매 원인 치료에 가까운 약물로서 상당히 기대된다. 하지만 원인을 제거한다고 그 원인으로 인해서 이미 망가진 구조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아닌 것처럼 아두카누맙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두카나맙은 뇌 구조가 무너지기 전 아주 초기에 써야 효과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무너진 구조를 다시 쌓아올릴 수 있는 치료법들이 뒷받침돼야 한다.

- 올해로 치매학회가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향후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코로나19 때문에 학회 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학회로서 해야 하는 일들은 지속하려 노력했다. 몇 가지 성과로는, 2020년에 치매교과서 제3판이 8년 만에 나왔다. 이 교과서에 새 진료 가이드라인이나 최신 연구내용 등을 담았다. 또 작년 11월에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국제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특히 작년 국가치매정책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제4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이 발표됐는데 정책 마련에 많이 참여했다.

치매학회지를 SCI급으로 올리는 작업들을 하고 있고, 창립 20년이 지난 지금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국제적으로 영역을 넓히는 게 목표다. 또한, 정책 분야 리딩도 하지만 학문 분야 리딩도 할 수 있는 학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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